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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225
한자 衣貴里
이칭/별칭 옷귀,옫뀌,옥귀,옥뀌,옥기,옥끼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상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1946년 -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면 의귀리로 개편
1980년 -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면 의귀리에서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읍 의귀리로 개편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6년 -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읍 의귀리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로 개편
소재지 의귀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지도보기
성격 행정구역
인구(남, 여) 1,114명[남자 573명, 여자 541명]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의귀리에서는 탐라 전기의 토기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1,000여 년 전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약 450년 전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의귀리의 전 농토가 감귤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며 대다수의 주민이 감귤 재배에 종사하고 있다.

[명칭 유래]

의귀리의 옛 이름은 옷귀[옫뀌], 옥귀[옥뀌], 옥기[옥끼]라 하였다. ‘의귀(衣貴)’는 ‘옷귀’의 한자 차용 표기이다. 의(衣)는 옷의 훈가자 표기이며, 귀(貴)는 귀의 음가자 표기이다.

이름에 대한 설화로 임진왜란 당시 김만일(金萬鎰)이 국난의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헌마(獻馬)한 뒤로 그의 후손이 어의(御衣) 한 벌을 받은 데서 ‘옷귀’라 불렸다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형성 및 변천]

의귀리는 1416년(태종 16) 정의현이 설치될 때 정의현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450여 년 전부터 마을이 커졌다고 한다.

1895년 전국 23부의 지방제도하에 제주부 정의군 서중면 의귀리가 되었으며, 1914년 제주군 서중면 의귀리가 되었다가 1935년 4월 1일부터 서중면이 남원면으로 개칭되어 제주도 남원면 의귀리가 되었다.

1946년 제주도제가 실시될 때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면 의귀리가 되었으며, 1980년 남원면이 남원읍으로 승격되어 남원읍의 관할하에 있게 되었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남제주군이 서귀포시에 통합되어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 월산동·산하동·중앙동이 있다.

[자연 환경]

의귀리는 비교적 평탄한 지형의 중산간 마을로, 기후가 온화하여 감귤 재배의 최적지이다. 동쪽으로는 신흥 2리, 서쪽으로는 한남리와 남원2리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태흥 1·2리, 북쪽으로는 수망리와 접해 있다. 마을 동쪽에는 서중천이 흐르고 있다.

의귀리 사무소 앞 냇가 성류변에는 물이 깊고 크기가 박만 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박데기소’가 있으며, 그 주변에는 옛날 삼나무밭에 현씨가 물을 구해 먹었다는 ‘선데기소’가 있다. 의귀리 중앙에는 넉시오름[옷귀오름]이 위치해 있다.

[현황]

2012년 2월 현재 의귀리의 인구는 427가구, 1,114명으로, 남자가 573명, 여자가 541명이다. 중산간 도로남조로가 마을을 통과하며 교차하는 교통이 편리한 지역이다, 전체 면적의 약 75%가 과수원으로, 전 농토가 감귤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주요 시설로 마을회관·경로당·목장·청년회관·학교·의료시설이 있으며, 마을 단체로는 노인회·부녀회·청년회·영농회·작목반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김만일 묘역[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65호]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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