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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226
한자 泰興里
이칭/별칭 펄개,펄깨,개,깨,벌포,보한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상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1946년 -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면 태흥리로 개설
1980년 -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면 태흥리에서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읍 태흥리로 개편
2006년 - 주도 남제주군 남원읍 태흥리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로 개편
소재지 태흥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지도보기
성격 행정구역
면적 1.54㎢
가구수 985가구
인구(남, 여) 2,525명[여자 1,302명, 남자 1,223명]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태흥리는 고려 말 경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해, 조선 후기에 현재의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면적은 좁으나 수산 자원이 풍부하여 수산 양식의 적지이다.

[명칭 유래]

태흥리(泰興里)는 한자의 뜻 그대로 크게 흥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새로 붙인 것이다. 태흥리는 전에 펄개[펄깨] 또는 개[깨]라 하여 벌포(伐浦)로 표기하였다. ‘펄’은 ‘뻘’의 제주도 방언이며, 포(浦)는 ‘개’의 훈독음 한자로, 곧 ‘뻘로 이루어진 개’라는 데서 이름 붙여졌다.

19세기 중반부터는 봉한이·봉안이·봉한잇개 일대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보한리(保閑里)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보한리와 동보한리를 병합하여 태흥리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태흥리는 1416년(태종 16) 정의현이 설치될 때 정의현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850여 년 전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해, 조선 후기에 해안가로 옮겨와 살면서 현재의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1895년 전국 23부 지방제도하에서 제주부 정의군 서중면 보한리가 되었으며, 1935년 4월 1일 서중면이 남원면으로 개칭되어 남원면 태흥리가 되었다.

1946년 제주도제가 실시될 때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면 태흥리가 되었으며, 1980년 남원면이 남원읍으로 승격되어 남원읍의 관할하에 있게 되었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남제주군이 서귀포시에 통합되어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가 되었다. 행정리로 태흥1리와 태흥2리, 태흥3리가 있으며, 법정리로 태흥리를 관할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태흥1리의 진은동·가원동·서소동·이엄동, 태흥2리의 금성동·뒤못동·무도동·조치명동·가시물통, 태흥3리의 삼덕동이 있다.

[자연 환경]

태흥리의 서쪽으로는 남원1리, 북쪽으로는 의귀리와 접해 있으며, 태흥1리와 태흥2리 사이에 서중천이 흐르고 있다. 중산간 지역이 거의 없이 해안 지역에 위치하여 지형이 비교적 평탄하고 기온이 온화하다. 해안 지대를 넓게 끼고 있고 기온이 온화해 감귤 재배의 적지이며, 감귤원이 전체 면적의 64.7%를 차지하고 있다.

해안가에는 속칭 ‘갱이왓모살’이라는 포구 형태의 넓은 공유 수면이 있다.

[현황]

2012년 2월 현재 태흥리의 인구는 985가구, 2,525명으로, 남자가 1,302명, 여자가 1,223명이며, 면적은 1.54㎢로서 남원읍에서 가장 작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주요 시설로 마을회관·경로당 등이 있으며, 마을 단체로는 영농회·노인회·청년회·부녀회·어촌계가 있다. 주로 농업에 종사하면서 감귤 재배와 판매를 주 소득원으로 있다. 수산 자원이 풍부하여 육상 양식장이 많이 위치하고 있다.

제주올레 4코스[표선 당케포구 잔디광장~남원포구]가 태흥리 해안도로와 태흥리 쉼터를 지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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