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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계록』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514
한자 耽羅啓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문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 1997
성격 장계집|보고서
편자 이원조

[정의]

1841년(헌종 7) 제주목사이던 이원조(李源祚)가 재임 시 조정에 올렸던 장계(狀啓) 모음집.

[개설]

『탐라계록(耽營啓錄)』은 1841년 윤3월 13일부터 1843년 5월 22일까지 마정(馬政), 환곡(還穀), 포폄(褒貶), 군액(軍額), 삼읍에서 올라 온 첩보(牒報)에 대한 보고 등이 수록되어 있어 19세기 후반 서귀포 지역의 당시 상황을 살필 수 있다.

[서지적 상황]

1책의 필사본으로 크기는 40.0×26.0㎝이다.

[구성/내용]

『탐라계록』은 제주 3읍 및 각 진에 하달한 전령(傳令)과 감결(甘結) 등의 내용을 다시 보고 받아 중요한 일만 조정에 올린 장계 모음집인 점에서, 전령(傳令)과 감결(甘結)등을 수록한 『탐영관보록(耽營關報錄)』과 차이가 있다.

내용은 3읍의 보리[麰麥] 농사와 각종 곡식의 작황상태, 공마(貢馬)와 귤과(橘果)의 봉진(封進), 다른 나라에 표도하였던 제주도민의 표류 경위와 생환과정 등이 주를 이룬다. 이외에 현성(縣城)과 군기(軍器)의 보수, 기우제의 실시, 병마도시(兵馬都試)와 승보초시(陞補初試)의 실시와 합격자 보고, 국행제사의 거행, 산마감목관(山馬監牧官)의 교체와 방호소(防護所) 조방장(助防將)과 제색장관(諸色將官)을 포폄(褒貶)한 일, 환곡(還穀)과 진휼(賑恤) 등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중요한 진상품은 각종 귤과와 공마등의 진상인데, 일일이 수효를 파악하고 그 상태까지 낱낱이 기재하였다. 또한 군기의 수선과 현성의 개축, 여장(女墻)의 보수에 따른 자세한 사항이 후록(後錄)되어 있다.

서귀포시 지역에 대한 내용은 삼 읍의 작황상태, 산마감목관의 교체, 국행제의 거행, 포폄 등에 대한 보고에서 보인다. 이원조 목사 재임 시 작황이 가장 좋지 않았던 곳은 대정현이었다. 또 이원조 목사는 산마감목관으로 헌마공신 김만일의 후손을 계속 추천하여 임명하였으며 수산소(水山所), 서귀소(西歸所), 모슬소(摹瑟所), 성장(城將) 등에 대해 포폄을 하고 임명자에 대한 이름을 수록하였다.

국행제사의 경우 정의현과 대정현은 제주목과 달리 한라산제, 둑제, 풍운뢰우제를 거행하지 않았고 사직대제, 석전제, 성황발고제, 여제만을 지내고 있었다. 아울러 정의현성의 동ㆍ서ㆍ남을 개축함과 동시에 여장도 신축하였다. 1842년에는 대정현 관아에 불이 나 호적과 병부(兵符) 등이 소실되었던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탐라계록』은 19세기 중반 서귀포 지역의 작황 상태, 현성의 규모, 국가제사 거행 등에 대해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12.03 내용 수정 내용 및 참고문헌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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