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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845
한자 玄中和
이칭/별칭 소암,소암우인,조범산방주인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법환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규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7년 7월 4일[음력]연표보기 - 현중화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3년 - 현중화 서귀포공립보통학교 졸업, 제주공립농업학교 1학년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32년 - 현중화 와세다 대학 정경학과 전문부 2년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37년 - 현중화 마쓰모도 호오수이에게 사사받음
수학 시기/일시 1940년 - 현중화 쓰시모도 시유우에게 사사받음
활동 시기/일시 1946년 - 현중화 동경 다이쇼 중학교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55년 - 현중화 일본에서 귀국, 제주사범학교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57년 - 현중화 서귀중학교 재직, 제6회 국전에 출품한 작품 ‘십오야망월(十五夜望月)’ 입선
활동 시기/일시 1960년 - 현중화 제9회 국전 추천작가로 ‘금강산헐성루(金剛山歇惺樓)’ 출품
활동 시기/일시 1965년 - 현중화 영주연묵회 창립
활동 시기/일시 1981년 - 현중화 제주소묵회 창립
활동 시기/일시 1989년 - 현중화 「소암 현중화 서집(書集)」 발간
활동 시기/일시 1994년 - 현중화 소암현중화서예전 개최
몰년 시기/일시 1997년 12월 3일연표보기 - 현중화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7년 - 현중화 탄생 100주년 기념전 개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8년 - 소암기념관 개관
출생지 현중화 출생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법환동 248번지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현중화 수학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607번지
묘소 현중화 묘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동홍동
기념관 소암기념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 157-2번지 지도보기
성격 서예가|교육자
성별
본관 연주(延州)
대표 경력 일본 서도원 대의원, 제주대학 윤리학 강사, 국전 심사위원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법환동 출신의 서예가이자 교육자.

[가계]

본관은 연주(延州). 호는 소암(素菴)·소암우인(素菴迂人)·조범산방주인(眺帆山房主人).

[활동 사항]

현중화(玄中和)는 1907년 7월 4일에 서귀포시 법환동에서 한학자이며 의생으로 초대 서귀읍장을 지낸 해암(海菴) 현지준(玄至濬)과 모친 강씨(姜氏)의 5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엄격한 훈도 아래 한학과 서예의 기초를 익힌 현중화는 서귀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1925년 오사카(大阪)의 영국 미션 스쿨인 사립 모모야마(桃山)중학교 3년을 수료하고, 이후 1932년 와세다(早稻田)대학 정경학과 전문부 2년을 졸업하였다.

이후 현중화는 일본에서 일본 서도계의 대가 마츠모토[松本芳翠]와 간사이 지방의 대가 쓰시모토[汛本史邑]의 문하로 들어가 사사받는다. 특히 쓰지모토 시유우[辻本史邑] 문하에서 사사받은 8년 동안 육조체(六朝體)와 해서·행서·초서·전서·예서 등 각 서체를 배우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광복이 된 이후에도 현중화는 일본에서 많은 공모전에 출품하여 상을 받았는데, 그의 나이 39세인 1945년 매일전(每日展)에 연 3회 수상, 전일본서도전(全日本書道展)에 1회 수상, 기타 민전에 출품하여 여덟 차례나 상을 받았다. 이 시기에는 주로 예서(隸書) 위주로 작품을 출품하였다. 1946년에는 동경 다이쇼(大正) 중학교에 재직하며 일본 서도원 대위원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1955년 2월에 비로소 귀국한 현중화는 제주사범학교에 교사로 재직하면서 제주대학 윤리학 강사로 출강하였다. 서귀중학교 교사로 이직하던 해인 1957년의 제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예서작품 십오야망월(十五夜望月)로 입선하는 등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 1960년과 1961년에는 제 9, 10회 국전에 추천작가로서 출품하였고, 57세가 되던 1963년에는 제12회 국전에 심사위원이 되었다. 1965년과 1966년에 열린 제14회·제15회 국전에서는 추천작가로 활약하였다. 그리고 이때 영주연묵회(瀛州硏墨會)를 발기하였고, 목포에서 제1회 개인전도 개최하였다.

서귀중학교를 퇴임하던 1967년에는 제16회 국전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제2회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이듬해인 1968년에 제 17회 국전에 추천작가와 제3회 개인전을 광주(光州)에서 개최하였다. 1969년에는 제18회 국전 추천작가로서 ‘처세훈(處世訓)’을 출품하여 제주도문화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그는 국전활동을 중단한 1980년까지 총 5회의 국전 초대작가와 4회의 국전 심사위원으로서 국전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1972년에 창립하여 지도하던 제주소묵회(濟州素墨會)와 다양한 국제전을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그의 나의 83세이던 1989년 8월에는 소묵회의 문하생들에 의해 『소암 현중화 서집』이 발간되었고, 세상을 떠난 1997년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였는데, 1992년과 1993년에 2번의 소암현중화 서예전을, 1994년에는 ‘소암 현중화 소품 소장전(素菴玄中和小品所藏展)’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1997년 11월 11일에는 ‘제3회 의재 허백련 예술상’을 받아 『소암선생 기념집』이 발간되었다. 그리고 그 해인 1997년 12월 3일 타계하였다.

그의 장례는 서귀포시 사회장으로 거행되었고, 서귀포시 동홍동의 가족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그가 사망한 지 10년이 지난 2007년에 서울 서예박물관에서 ‘소암 현중화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열렸고, 같은 해 11월 30일에 서귀포시에 소암기념관이 건립되었다. 2008년에는 주 일본 대한민국 대사관 한국문화원에서 ‘소암 현중화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개최되었고, 그 해 10월에는 소암기념관이 개관되었고 개관기념전이 열렸다.

[묘소]

서귀포시 동홍동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45년 매일전(每日展)에 연 3회 수상, 전일본서도전(全日本書道展)에 1회 수상, 기타 민전에 출품하여 8회 수상하였고, 1957년에 제6회 국선에서 입선, 1989년 8월에 「소암 현중화 서집」 발간, 1992년과 1993년에 ‘소암 현중화 서예전’, 1994년에는 ‘소암 현중화 소품 소장전’ 개최, 1997년 11월 11일에 ‘제3회 의재 허백련 예술상 수상과 소암선생 기념집 발간’, 2007년과 2008년 ‘소암 현중화 탄생 100주년 기념전’ 개최, 2008년 10월 4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 157-2소암기념관이 개관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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