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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856
한자 朴周錫
이칭/별칭 박처사,박명수(朴明洙)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한금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4년 2월 17일연표보기 - 박주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8년 - 박주석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으로 체포, 투옥됨
몰년 시기/일시 1921년 7월 24일연표보기 - 박주석 목포감옥에서 옥사
추모 시기/일시 1995년 - 박주석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활동지 박주석 활동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 산1번지 지도보기
추모각 의열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 산1번지 지도보기
성격 항일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모사

[정의]

1918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법정사 항일 운동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개설]

1918년 법정사 항일 운동은 일제강점기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독립운동 중 최초이자 최대의 무장 항일 운동이다. 법정사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신도들과 인근마을 주민 등 700여명의 시위대는 사전 치밀한 준비를 거쳐 1918년 10월 7일 일본인을 제주에서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목적을 내걸고 곤봉과 화승총 등으로 무장하여, 도순리 법정사에서 출발하여 중문리까지 진출하였다. 시위대는 전선과 전신주를 잘라 통신을 끊고, 경찰관 주재소에 불을 지르고, 일본인을 집단 구타하는 등 일제에 조직적으로 저항하였다.

박주석은 태을교(太乙敎)[일명 선도교] 지도자로 1918년 제주 법정사 항일 운동에서 도대장(都大將)의 역할을 맡아 활약하였으며, 이 일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형집행 중 사망하였다.

[가계]

박주석은 출생지가 『수형인명부』에는 진도군 동면 상리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허구의 주소이고, 유족은 경상북도 안동 사람으로 증언하고 있는데, 아버지 박경림(朴京林)과 어머니 이씨 사이에서 1864년 태어났고, 딸은 박학춘이다

[활동 사항]

박주석법정사의 승려이던 방동화의 제안을 받아 법정사 항일 운동에 참여할 것을 결심하고 법정사에 머무르며 법정사 항일 운동 조직의 모사(謀師)로서 항일 운동 준비 단계부터 참여하였다. 1918년 4월부터 준비에 착수하여 법정사 신도들과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항일 의식을 심어주고 곤봉과 깃발, 격문 등을 미리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인 1918년 10월 7일에는 새벽에 법정사에 모여 있던 34명의 선봉대와 함께 출발하여 선봉대장이던 강창규와 함께 현장의 대중을 이끌었다. 처음에는 서귀포를 향해 나아갔으나 처음에 예상한 수를 참여시키지 못하자 박주석강창규와 의논하여 원래의 목적지였던 서귀포 습격을 중지하고 중문리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하기로 예정을 변경하였고 강창규·김상언 등이 중문리 경찰관 주재소에 불을 지르고 기물을 파괴하였다. 오전 11시경이 되자 서귀포 경찰관 주재소의 기마 순사대가 총으로 무장하고 공격해오자 참여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박주석은 현장에서 체포되어 소요 및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7년형을 선고 받고 목포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1년 7월 24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박주석은 1918년 법정사 항일 운동에 참여한 공훈으로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고,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동에 있는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戊午法井寺抗日運動發祥址)에 건립된 의열사에 영정이 모셔져 독립운동의 뜻이 기려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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