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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915
한자 趙夢九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찬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8년연표보기 - 조몽구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8년 - 조몽구 와세다대학 전문부 정치과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31년 - 조몽구 일본노동조합 전국협의회 화학노동조합 오사카시지부 책임자로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31년 - 조몽구 노동운동 관련 일본 경찰에 검거됨
활동 시기/일시 1948년 - 조몽구 월북
활동 시기/일시 1951년 9월 - 조몽구 부산에서 체포됨
활동 시기/일시 1953년 3월 5일 - 조몽구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아 수감됨
몰년 시기/일시 1973년 12월 15일연표보기 - 조몽구 사망
출생지 조몽구 출생지 -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872번지 지도보기
성격 항일 노동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일본노동조합 전국협의회 화학노동조합 오사카시지부 책임자|제주도 인민위원회 표선면 위원장

[정의]

일제강점기 서귀포 출신의 사회주의 계열 항일 노동운동가.

[가계]

본관은 풍양. 1908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872번지에서 조동권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복 후 초대 표선면장을 역임한 조범구의 아우이다.

[활동 사항]

조몽구(趙夢九)는 경성공립제일고등보통학교 4학년 때 반일투쟁으로 동맹 휴학을 선동하여 퇴교 처분을 받았다. 21세 때인 1928년 8월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전문부 정치과에 입학하여 수학하다가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중퇴하였다. 이후 오사카의 공장 노동자로 있으면서 오사카 조선노동조합에 가입하여 줄곧 항일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1929년 12월 14일 재일본 조선노동총동맹 대표자회의가 오사카에서 개최될 때 김문준과 더불어 오사카 조선노동조합의 대표로 참석하여 재일본 노동총동맹을 해체하고 일본노동조합 전국협의회[전협]에 가맹하기로 결정하였다.

1931년부터 전협의 화학노동조합 오사카시지부 책임자로 취임하였고, 같은 해 6월 하순부터 전국 산업별 노동조합 오사카시지부 협의회의 책임자가 되었다. 이와 같은 활동으로 인해 1931년 7월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죄로 징역 6년형을 언도받았다. 이후 징역 5년으로 감형되어 토쿠시마(德島)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다가 해방 직후 출소하여 제주도로 강제 송환되었다.

해방 후 제주도에서 제주도 인민위원회 표선면 위원장, 남조선노동당 제주도당의 조직부장,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4·3사건이 일어났을 때 무장투쟁에 반대했지만 뒤에 한라산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1948년 8월 제주도를 탈출하여 북한으로 넘어갔다. 6·25 전쟁 때 남한 출신 의용대장으로 남파되었다가 부산에서 활동 중 1951년 9월 경찰관에 의해 체포되었다.

1953년 3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뒤 고향 성읍리로 돌아와 살다가 1973년 12월 15일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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