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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925
한자 康允玉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734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강창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3년연표보기 - 강윤옥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7년 5월 16일 - 강윤옥 정의면 청년회 씨름대회 사건 참여
출생지 강윤옥 출생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734번지 지도보기
성격 항일 활동가
성별
대표 경력 정의면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서 활동

[정의]

일제 강점기 정의면[지금의 성산읍] 청년회 씨름 대회 사건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개설]

1925년에 고은삼(高殷三)의 영향 아래 활동하던 정의면 중앙청년회는 제주성내청년회·모슬포청년회와 함께 제주도 내 여타 청년회보다 민족주의적이고 잘 단합되었다. 특히 성산포 일대는 일본과 가까워서 일본배가 자주 노략질을 해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강한 상태였다.

1927년 5월 16일 정의면 중앙청년회가 주최한 정의면 체육대회가 개최되어 고성리에 있는 모래판에서 씨름대회가 벌어졌다. 마침 청어 잡이 원양 어업을 하던 일본인 선박이 성산포 포구에 정박 중이었는데 그 선원들이 씨름구경을 하다가, 그중에 한명이 지역주민과 대전을 요청하여 대전이 이루어졌는데 선원이 패하였다. 이에 씨름에서 패한 일본 선박의 선원이 판정에 불복하여 재 대전 요구를 하였는데, 심판을 보던 박규언이 대회 규칙을 들어 거절하자, 심판의 빰을 때려 폭행하였다. 정의면 청년들이 이를 항의하자, 일본인 선원들까지 합세한 2백여 명이 죽봉·각목 등을 동원하여 싸움을 걸어 왔으며 결국 지역 청년 5백여 명이 싸움에 가담하여 일본인 선박 선원들과의 패싸움으로 번졌다. 이 사건으로 선원 김명선과 일본인 1명이 사망하고, 성산포 주민 4명과 일본인 11명이 중상을 입었다.

일제 당국은 이 사건을 '성산포 소요 및 상해치사 사건'이라고 규정하여 전남경찰부의 병력을 출동시켜 임시 검사국을 설치하였다. 같은 해 5월 23일까지 혐의자 혹은 선동자라고 하여 92명을 체포, 그 중에 52명을 재판에 회부하였다. 그러나 일본 선원들에 대한 처벌은 전혀 없었다

[활동 사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면 오조리 734번지에서 태어난 강윤옥(康允玉)은 청년회 씨름대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1927년 12월 1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요상해 및 상해 치사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미결기간 옥고를 치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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