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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448
한자 耽羅時代
이칭/별칭 탐라국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고대/고대
집필자 김경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유적지 구억리 바위그늘 집자리, 신도리 고인돌, 일과리 유물산포지, 일과리 석기유물 채집기, 동일리 고인돌 1~4호, 창고천 바위그늘 집자리, 창고천 고인돌 1~2호, 화순리 유물산포지 2지구, 창천리 고인돌 1~4호, 창천리 유물산포지, 하모리 고인돌, 가파도 유물산포지, 가파도 고인돌군 -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 일대지도보기
유적지 신례리 고인돌 1~2호, 신례리 바위그늘, 신례리 유물산포지,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의 하례리 유물산포지 1~2지구,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2리의 태흥2리 유물산포지, 태흥3리 유물산포지 - 서귀포시 남원읍 지역
유적지 신산리의 신산리 고인돌, 성산읍 신풍리의 신풍리 고인돌, 성산읍 신천리의 신천리 마장내 고인돌, 성산읍 성산리 성산리 유물산포지, 성산읍 온평리 혼인지의 온평리 유물산포지 3지구, 온평리 동굴유적, 성산읍 온평리 연혼포 전설지 - 서귀포시 성산읍 지역
유적지 안덕계곡 바위그늘 집자리 1~2,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지역의 하례리 바위그늘 유적 1~2,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의 한남리 바위그늘 집자리 - 서귀포시 대정읍 지역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3~10세기 무렵에 해당되는 역사 시대.

[개설]

탐라시대는 제주도에 특정 지배 계층이 등장하여 지배 계층이 정치 체계화되는 단계의 역사와 문화를 형성하는 시대 용어에 해당한다. 고고학적으로는 대규모 노동력이 동원되는 상위 계층의 무덤 축조를 기준으로 설정할 수 있다.

탐라국은 삼국 시대에 들어와서는 백제·고구려·신라와 각각 교역한 것으로 『삼국사기』 등에 나타나고 있다. 특히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660년에 백제가 멸망한 직후에는 바다 건너 일본과 당나라와도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변천]

탐라시대는 교역의 중심적 주체에 따라 전기와 후기로 크게 구분된다. 전기는 마한과 지속적인 교역이 이루어지던 시기이며, 후기는 마한이 백제에 병합되면서 교역 주체가 백제로 전환된 기원후 6세기 중반 이후에 해당한다.

탐라시대 전기[기원후 3~6세기]는 지배층에 의해 마을간 상호 위계가 형성되면서 계층 분화가 가속화된다. 즉 경계 석축을 축조하고 외부로부터의 방어와 함께 내부 통제력을 더욱 강화해 나간다. 전기 탐라 사회의 주된 교역 대상은 전라남도 지역을 거점으로 근거했던 마한 세력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 발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마한토기[양이부호, 이중구연호, 조족문토기] 등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제주 지역 토기인 곽지리식 토기가 매우 성행한다.

탐라시대 후기[기원후 6~10세기]는 마한 세력과 이루어지던 교역 체계가 백제 및 통일 신라로 바뀌는 단계에 해당한다. 즉 후기의 탐라 사회는 마한 잔여 세력이 백제에 병합되면서 백제와의 신속 관계를 유지하는 6세기 중반 이후를 획기로 삼을 수 있다.

최근의 고고학적 연구 성과를 참고하면, 마한 세력은 6세기 중엽경에 백제의 직접적인 지배 체제에 편입된다. 탐라 역시 이쯤에 백제에 예속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후기에는 백제의 새로운 토기 제작 수법이 도입되고 선진 문물이 유입된다.

[유적과 유물]

현재 서귀포시 지역에서 탐라시대 전기 유적이 발굴된 곳으로는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 일대 등의 구억리 바위그늘 집자리, 신도리 고인돌, 일과리 유물산포지, 일과리 석기유물 채집기, 동일리 고인돌 1~4호, 창고천 바위그늘 집자리, 창고천 고인돌 1~2호, 화순리 유물산포지 2지구, 창천리 고인돌 1~4호, 창천리 유물산포지, 하모리 고인돌, 가파도 유물산포지, 가파도 고인돌군 등이 있다.

서귀포시 남원읍 지역에서는 신례리 고인돌 1~2호, 신례리 바위그늘, 신례리 유물산포지,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하례리 유물산포지 1~2지구,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2리의 태흥2리 유물산포지, 태흥3리 유물산포지 등이 있다.

서귀포시 성산읍 지역에서는 신산리신산리 고인돌, 성산읍 신풍리의 신풍리 고인돌, 성산읍 신천리신천리 마장내 고인돌, 성산읍 성산리 성산리 유물산포지, 성산읍 온평리 혼인지의 온평리 유물산포지 3지구, 온평리 동굴유적, 성산읍 온평리 연혼포 전설지 등이 있다.

한편, 서귀포시 지역에서 탐라시대 후기 유적이 발굴된 곳으로는 서귀포시 대정읍 지역의 안덕 계곡 바위그늘 집자리 1~2,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지역의 하례리 바위그늘 유적 1~2,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의 한남리 바위그늘 집자리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탐라시대 이전의 사회는 대외 교류를 통해 얻어진 선진 문물을 재분배하는 과정에서 성장한 지배층에 의해 통제되는 시스템으로 전환된다. 따라서 수장층의 역할은 이전 시기보다 더욱 중요시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특수 계층의 무덤이 출현하게 된다. 무덤의 축조는 많은 노동력과 외부의 선진 문물에 대한 절대적인 장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유적과 유물은 탐라시대 수장층의 권력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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