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473
한자 1918年法井寺抗日運動
이칭/별칭 보천교의 난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한금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18년 10월 7일연표보기 -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발생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3년 11월 12일 - 무오법정사항일운동발상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1-1호로 지정
발생|시작 장소 법정사 - 서귀포 도순리
무오법정사항일운동발상지 - 서귀포시 도순동 산 1번지하원동 산 1-1번지 일대지도보기
성격 항일운동
관련 인물/단체 김연일|강창규|강수오|강춘근|박주석|김봉화|김두삼

[정의]

1918년 10월 7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도순리법정사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일으킨 무장 항일운동.

[개설]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은 법정사 승려들이 중심이 되고 도순리 인근 마을 주민 700여명이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하여 참여한 제주도 내 최초, 최대의 항일운동이다. 참여자들은 화승총과 곤봉 등으로 무장하고 6개월여 전부터 거사를 준비하였다. 일본인을 제주도에서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시키겠다는 거사 목적을 격문으로 알리고, 참여 주민들과 함께 중문 경찰관 주재소를 불태우고 일본인을 때리는 등의 행동을 실천하였다. 법정사 항일운동은 1918년 10월 7일 실행되어 3·1운동보다 5개월여 먼저 일어났는데, 일제는 법정사 항일 운동의 파급을 걱정하여 3·1운동 참여자들보다 무거운 형을 언도하고, 목포로 이송하여 사건을 처리하였다.

[역사적 배경]

제주도민들은 1898년 방성칠의 난과 1901년 이재수의 난 그리고 1909년 제주의병항쟁 등에서 이미 외세의 횡포에 대항하였던 적이 있다. 일제는 1906년 제주부를 제주군으로 개편한 이후 행정을 장악하고 경제적 수탈을 강화해 나갔기 때문에 1918년 경 제주도민들은 일제의 횡포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1918년 법정사 항일운동 시기에도 제주도민들은 일제의 행정 장악과 경제적 수탈에 의한 피해를 직접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경과]

법정사 주지 김연일(金蓮日) 등은 1914년 법정사 활동에서부터 일본의 국권 침탈의 부당함을 신도들에게 설명하여 항일의식을 심어주었다. 거사 실행 6개월여 전부터는 조직을 구성하였고, 독립을 위해 일본인 관리와 상인을 제주도에서 쫓아내겠다는 요지의 격문과 곤봉, 깃발 등을 사전 제작하고 화승총을 준비하였다. 계획적인 사전 준비 끝에 1918년 10월 7일 거사가 실행되었다.

법정사 예불에 참석하였던 34명의 선봉대가 중문리에 이르렀을 때에는 인근 마을에서 동조하여 참여한 주민이 700여명이었다. 선봉대장 강창규(姜昌奎)의 지휘 아래 전선과 전주를 절단하고, 일본인 일행을 몽둥이와 돌멩이로 때렸으며 중문리 경찰관 주재소를 불태웠다. 총으로 무장한 서귀포 경찰관 주재소 기마 순사대의 공격으로 참여자들은 흩어지게 되었다. 참여자 중 66명이 검거되고 법정사는 불태워졌다.

[결과]

주모자인 김연일이 징역 10년형을 구형 받는 등 법정사 항일운동 참여자 46명에게 소요 및 보안법 위반죄로 형이 선고되었다. 국권회복과 일본인을 제주도에서 몰아낸다는 것을 거사의 목표로 내걸었을 뿐 아니라 사전 계획에 의한 조직 구성과 무기를 준비한 무장 항일운동인 법정사 항일운동을 일제는 심각하게 인식하였다. 그리하여 일제는 항일 독립운동의 제주도 내의 파급 확산을 우려하여 경찰의 수사단계를 건너뛰고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검사분국에서 사건 처리하였다. 재판 전 가혹한 조사 과정에서 강수오강춘근이 사망하였고, 박주석·김봉화·김두삼 등 3명은 수감 중 옥사하였다. 김연일정구용 등은 수감생활 후 출신지인 경상북도에서 불교활동과 항일운동을 지속하였고, 강창규는 제주도에 서산사를 창건하여 불교활동을 지속하였다.

사건이 종결된 후에도 일제는 법정사 항일운동의 파급을 우려하여 항일 독립운동의 목적을 사교도의 혹세무민으로 매도하였고 참여주민의 숫자도 700여명에서 300여명으로 축소 보도하는 행태를 보였다.

[의의와 평가]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은 지역주민 700여명이 참여한 제주도 내 최초이며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으로써 그 의의가 크다. 조직을 구성하고 무기를 준비하는 등 6개월여의 사전준비 기간에도 발각되지 않았고, 주도자들이 오랜 기간 동안 은신이 가능하였을 정도로 지역 주민들의 호응이 있었던 무장 항일운동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항일운동으로 평가된 이후 김연일법정사 항일운동 참여자 28명에게 건국훈장이 추서되고,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는 2003년 11월 12일 제주도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1-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의열사를 건립하여 법정사 항일운동 참여자를 추모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