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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리 독서회 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477
한자 西歸里讀書會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승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34년 - 서귀리 독서회 조직, 야학 개설
발단 시기/일시 1935년 3월 28일연표보기 - 서귀리 독서회 사건 발생
성격 사건
관련 인물/단체 송순혁, 송달오, 변성현, 강원화

[정의]

1934년부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송순혁 외 3명이 서귀리 독서회를 조직하여 계몽활동을 벌이다 검거된 사건.

[역사적 배경]

1920년대 제주에서의 청년운동은 일제의 청년동맹에 대한 감시와 탄압으로 말미암아, 점차 지하운동으로 그 성격이 바뀌어 갔고, 1920년 말부터 1930년대 초에 이르면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하는 해방운동이 가장 왕성하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제주의 경우, 일본 특히 오사카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아 이 지역에 일시 거주하거나 유학한 학생들에 의해 유입된 사회주의 사상에 의한 항일운동이 많이 전개되었다. 또한 당시에는 각 지역별로 독서회 유형의 비밀 결사가 조직되었고, 이를 통한 항일운동이 상당히 일반화되었는데 송순혁·송달오와 같은 인물들이 바로 이 시기 제주 서귀면 서귀리에서 독서회를 조직하고 야학 활동을 통해 항일운동을 펼쳤다.

[경과]

1934년부터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하면서 서귀리 등지에서 독서회를 개설, 청소년들에게 계몽활동을 벌인 주요 인물이 바로 당시 서귀리 출신의 송순혁[24세]·송달오[27세], 법환리 출신의 변성현[22세]·강원화[25세]였다.

송순혁은 1927년 3월 서귀공립보통학교 제4년을 졸업하였는데 1931년 6월 경 이도백·안군오의 지도교양을 받아 사회과학에 관한 책을 탐독하여 공산주의에 물들게 되었다. 송달오의 경우는 1931년 3월 국민학교 졸업 후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동아고무공장 직공으로 일하다가 귀향하였다. 송달오송순혁과 마찬가지로 이도백 등에게 지도교양을 받아 사회과학에 관한 책을 탐독하였고, 이에 1932년 1월부터 홍순성·윤태석·강봉주 등에게 마르크스주의 화폐론 등의 사회과학 서적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변성현은 1931년 3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집에서 농사에 종사하고 있다가 1933년 경 이후 김춘지의 지도교양을 받아 사회주의와 진화론 등의 사회과학에 관한 책을 탐독하면서 점차 공산주의에 뜻을 두게 되었다.

강원화의 경우는 1930년 12월부터 1934년 7월까지 몇 차례 일본을 왕래하면서 오사카의 고무공장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1934년 7월 경, 병으로 제주에 귀향하여 집에서 요양하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와중에 강원화는 그간에 마르크스주의 강좌 등 사회주의에 관한 책을 탐독하였기 때문에 사회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었다.

이렇게 송순혁·송달오·변성현·강원화는 당시 일제의 조선인에 대한 차별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사회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여 서귀리를 중심으로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이들은 우선 마을 청소년들에게 공산주의[사회주의] 의식을 전파하고, 계몽하고자 했기 때문에 1934년부터는 야학강습소에서 야학을 실시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35년 3월 28일 양원득의 집에서 야학생이었던 강정생 외 24명을 불러 “부자집 자식은 보통학교에 다니며 낮에 편안히 공부할 수 있는데 이에 반해 너희들은 밤 어두운데 등불 밑에서 공부하고 있으니 결국 너희들은 돈이 없는 까닭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돈이 없고 가난한 학생들은 야학소에 다니는 것이 옳다고 하면서 일제에 대한 계급적 저항 의식을 강조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결과]

이 사건을 계기로 전남 경찰부 노경부(盧警部)의 지시를 받은 제주경찰서는 1935년 8월 18일 서귀리를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벌이던 송순혁 외 40여 명을 검거하고 3개월 동안 조사한 결과 송순혁, 송달오, 변성현, 강원화 4명을 기소하였다. 이에 1937년 6월 4일 광주지법 목포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각기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모두 옥고를 치렀다.

[의의와 평가]

서귀리 독서회 사건은 1930년대 제주도 사상운동 가운데서도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전개된 사건 중의 하나였다. 이 사건의 주동자였던 송달오강원화는 일본 오사카에 일시 거주하면서 그 당시 유입된 사회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인물들이었고, 결국 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제주도민의 의식을 계몽하기 위한 운동으로 전개되었던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서귀리 독서회 조직원들은 지역의 청년 가운데 주로 학력이 뛰어난 계층을 대상으로 비밀리에 조직되어 활동했고, 이 조직은 지역의 선진 활동가를 양성하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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