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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663
한자 猊來洞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예동 966
시대 선사/철기
집필자 김경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8년 5월 19일연표보기 - 예래동 유적 발굴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0년 6월 30일연표보기 - 예래동 유적 발굴 조사 종료
현 소재지 예래동 유적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예동 966번지 일원지도보기
성격 유적지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예동 일대에 있는 초기철기시대 마을 유적.

[개설]

예래동 유적은 초기철기시대에 마을이 조성되었던 유적으로 당시의 집터와 다양한 시설이 확인되었다. 예래동 마을유적은 제주 서북부지역인 삼양동과 용담동 일대에 유행하던 송국리형 취락이 서남부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조성된 유적에 해당한다. 출토유물을 보면 대체로 삼양동 유적과 시기를 같이하거나 다소 늦은 단계의 토기와 다양한 석기류가 확인된다.

[위치]

예래동 유적은 서귀포시 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예동 966번지 일원에 해당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예래동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상예동 일대에 74만4205㎡ 규모의 예래 휴양형 주거단지를 2015년까지 조성하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문화재조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발굴조사는 2008년 5월 19일부터 2010년 6월 30일까지 제주문화유산연구원에서 진행되었다. 조사결과 주거지 263동, 굴립주(掘立柱)['박이기둥'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주춧돌 없이 그대로 땅에 박아 세운 나무기둥을 말한다.] 건물지 16동, 수혈 유구 2,099기, 소토 유구 24기, 야외 노지 2기, 구상 유구 16기, 환구 시설 7기, 집석 유구 3기, 이형 유구 2기, 수로 1기, 배수 및 집수 유구 49기, 매납 유구 3기, 폐기장 1기 등이 확인되었다.

[형태]

예래동 유적은 주거지를 비롯하여 다양한 시설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세대단위가 확인된다. 따라서 주거지와 수혈유구 및 각종 시설물을 축조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중심지역이 변화하고 있다. 특히 지형이 비교적 낮고 배수가 원활한 중앙부에는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배수시설이 축조되어 있으며, 이는 마을 주민들의 식수 및 생활용수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배수시설을 중심으로 양단의 비교적 지형이 높은 구릉상에 주거군이 집중적으로 배치되고 있다.

[출토 유물]

예래동 유적은 발굴조사 결과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토기류를 살펴보면, 우선 신석기시대의 고산리식 토기와 덧무늬토기[융기문토기]가 해안변 근처에서 출토되어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생활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마을이 가장 번성했을 당시에는 적갈색 경질토기 중 삼양동식 토기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다시 마을이 축소되는 시기에는 고내리식 토기와 통일신라토기가 확인된다. 또한 석기류는 공이돌·돌화살촉·돌도끼·돌대패·굽은옥·숫돌·갈돌 등이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청동거울 등 동제품과 다양한 형태의 옥제품이 확인되었다.

[현황]

예래동 유적은 해안변에서 한단 올라온 구릉에 형성되어 있으며, 발굴조사 전에는 과수원과 경작지로 활용되고 있었다. 유적의 양쪽으로는 대왕수천과 예래천이 위치하고 있어 외부와 단절된 지리적 입지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고 해안변과 맞닿아 있어 해상교통의 우월한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또한 주변에 산재한 하천에서는 마르지 않는 용천수가 흐르고 있어 당시 사람들의 음용수로 활용되었다.

[의의와 평가]

예래동 유적은 제주도에 유입된 청동기시대 후기의 송국리문화가 삼양동과 용담동 등 제주시 지역에서 성행하다가 서남부지역인 화순리예래동으로 확산되는 단계에 해당한다. 따라서 삼양동유적에 비해 시기적으로 늦은 단계에 해당한다. 예래동유적은 주변의 화순리, 대평리 유적과 함께 제주 서남부지역 최대의 마을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이러한 마을이 상호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제주 서북부지역 및 남해안 일대의 다양한 집단들과 교류를 통해 발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제주 지역에 송국리문화가 유입된 후 변화해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고 주변에 위치한 마을유적과의 연관성을 파악하기 위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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