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684
한자 羔屯果園-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강정동 2012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강만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고둔과원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신시가지 서남쪽 강정동 2012번지 일대지도보기
성격 과원|과수원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강정동에 있는 조선시대 과원 터.

[개설]

고둔과원은 조선 시대 제주 지역의 감귤을 중앙정부에 진상하기 위해 대정현에서 설치하여 운영 관리하였던 과수원이다.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8권에는 제주과원은 전체 35개 있었으며 그 중 대정현(大靜縣)에는 6개 과원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둔과원(羔屯果園)대정현 동쪽 55리 고득종(高得宗)의 별장(別莊)터에 조성되었고, 대정현 관할 6개소 중 제주목사가 순력(巡歷)할 정도로 가장 대표적인 과원 중 하나였다. 1702년(숙종 28)의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고원방고(羔園訪古)」 편에는 당시 고둔과원(羔屯果園)의 모습이 등장한다. "고둔과원대정현성에서 동쪽으로 55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현 용흥동 속칭 염돈마을 운랑천 부근의 염돈과원이라 불리는 곳이다."

[변천]

조선 시대에 본격적으로 제주 과원의 조성되기 시작된 것은 1526년(중종 21)에 제주목사 이수동(李壽童)이 중앙정부에 감귤을 진상하기 위해 5방호소[서귀(西歸), 별방(別方), 수산(水山), 동해(東海), 명원(明月)]에 과원을 설치하고 감귤을 옮겨 심은 뒤 군사로 하여금 지키게 한 것에서 비롯된다. 1653년(효종 4) 이원진(李元鎭)이 편찬한 『탐라지(耽羅志)』 과원조(果園條)에는 대정현 지역의 과원으로 고둔·법화·동천·병악·별과원·암림 6개소가 등장한다. 고둔과원에서 식재되었던 감귤의 수종(樹種)과 양(量)은 유자(柚子) 66그루, 석금귤(石金橘) 12그루, 당유(唐柚) 1그루, 지각(枳殼) 3그루, 산귤(山橘) 22그루, 청귤(靑橘) 3그루, 유감(乳柑) 4그루, 동정귤(洞庭橘) 3그루 총 9종의 114그루였다. 이후 대정현 지역의 과원은 명칭은 변경되거나 폐원되고 신설되었지만 고둔과원은 20세기 초까지 유지되고 운영되었다.

18세기의 모습은 이형상『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1702]와 『남환박물(南宦博物)』[1704]을 통해 그 실태를 파악할 수 있으며, 19세기 이원조『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1842~1843] 에서는 고둔원(羔屯園)으로 명기하고 그 위치를 대정현 동쪽 3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 구체적 운영실상은 이전과 기록과 같다.

[위치]

1653년(효종 4) 『탐라지』에는 고득종(高得宗)의 별장(別莊)터인 대정현 동쪽 55리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서귀포시 신시가지 서남쪽 강정동 2012번지 일대이다.

[현황]

고둔과원 터에는 방풍림으로 대나무를 심었고, 과원 밖에는 참나무 등이 울창하게 우겨져 있다. 현재는 밀감 밭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주택이 있다. 과원터 옆으로 용천수인 운랑천(雲浪泉)이 흐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제주도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가 감귤이다. 조선 시대 국가가 관리했던 과원 중의 하나였던 고둔과원터는 제주가 귤의 고장으로서 역사적 연원을 찾아 볼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유적이다. 조선 시대 과원의 설치 및 변천을 통해 감귤을 포함한 과실의 재배 현황 및 진상 액수를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당시 주민의 경제생활을 엿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