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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692
한자 尊者庵址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 산1-1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한금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5년 7월 13일연표보기 - 존자암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3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존자암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재지정
소재지 존자암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 산 1-1번지 지도보기
성격 사찰터
소유자 존자암
관리자 서귀포시
문화재 지정 번호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에 있는 시대 절터.

[개설]

존자암한라산 영실 서북편 볼래오름 남사면 능선에 자리한 곳으로 행정구역상 서귀포시 하원리 산 1-1번지에 해당한다. 존자암지에 대한 최초의 문헌상의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다. 제주목 불우조에 ‘존자암한라산 서쪽 기슭에 있는데, 그곳 동굴에 마치 스님이 도를 닦는 모습과 같은 돌이 있어 세상에 수행동이라 전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중종 25년(1530) 동서(同書)의 편찬 당시 기록이다. 존자암은 제주에서 나라의 안녕을 비는 국성재(國聖齋)를 지내던 비보사찰이었다. 현재 존자암지는 제주도지정 문화재 기념물 제43호로 지정되어 복원되고 있으며, 이곳의 ‘존자암세존사리탑’은 제주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도내 유일의 부도이다.

[변천]

존자암의 설립에 대해서는 여러 설들이 있다. 대장경 법주기의 제6존자 발타라와 구백나한이 거주했던 암자라 하여 남방불교전래설의 근원임을 주장하는 것에서부터 김상헌『남사록(南槎錄)』을 재인용한 충암 김정의 『존자암기』에 ‘존자암은 고·양·부 삼성이 처음 일어났을 때 세워졌는데, 삼읍이 정립된 후에도 오래도록 전해졌다’는 내용까지 다양하다. 김상헌『남사록(南槎錄)』에는 존자암에서 국성재가 이루어졌고 선조 25년(1593) 이후에 중단되었음을 알리는 내용도 전해지고 있다. 효종 2년 제주어사로 왔던 이경억은 그의 시에 ‘천년 묵은 외로운 탑이 서 있는데, 한방은 두어개 서까래만 남아있다’고 하여 폐사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위치]

서귀포시 하원동 산 1-1번지 한라산 영실 서북편 볼래오름 남사면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제주대학교박물관의 발굴조사에서 이곳에서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친 석축시설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금당·선방·비각 건물·목탑의 중심 주초석 등이 발굴되어 당시의 사찰 규모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유물로는 청자, 분청 도자기류와 청동제 지국천왕상 등과 수정사 금당지에서 발굴한 것과 동일한 ‘만호겸목사(万戶兼牧使)’라고 새겨진 명문기와가 다수 출토되었다.

[현황]

존자암지는 1995년 7월 13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3호로 지정[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재지정] 보호되고 있다. 1998년 여름부터 복원 불사에 들어가, 현재 국성재각·대웅보전·요사채 등을 중창하였다.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좌측에는 이곳에 불교를 전했다는 발타라존자를, 우측에는 산신을 봉안했다.

[의의와 평가]

제주도에 불교가 언제 전래되었는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낳게 하는 곳이 존자암지이다. 앞으로 심도있는 연구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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