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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병 집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704
한자 濟州義兵集結地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서리 1635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한금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909년 2월 25일 - 제주의병 거병 결의
해산 시기/일시 1909년 3월 1일 - 제주의병 관군에 패배하여 퇴각 및 해산
현 소재지 제주의병 집결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서리 1635번지 지도보기
원소재지 제주의병 집결지 - 제주군 대정읍 광청리
성격 항쟁지
관련 인물 고사훈[고승천], 김만석, 이중심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안덕면 서광리에 있는 개항기 항일의병의 집결지.

[개설]

1909년 2월 25일 의병장 추대와 함께 기병을 결의한 의병운동의 중심세력들은 격문을 작성하고 곧바로 오시(午時)를 기해 통발하였다. 격문에는 의병들이 먼저 의병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는 대의명분을 분명히 밝히고, 각 지역에서 국권수호를 위해 총궐기하여 제주도민 또한 죽음을 불사하고 왜적을 격퇴할 것을 호소하였다.

또한 격문과 함께 구체적인 행동 내용을 담은 「통고사(通告事)」를 동쪽의 화북으로부터 남쪽, 서쪽, 북쪽 순으로 마지막 용담에 이르기까지 제주도 전 지역을 순회토록 하였다. 의병 모집은 1만명을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불참한 이장은 사형, 선박 출입 금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였다.

고사훈김만석, 조인관 등은 곧바로 대정으로 가서 의병을 모집하기 시작했다.「전남경비발 제378호」[1909년 3월 6일]에는, “3월 1일 오전, 동서에 도달한 대정순사주재소의 보고에 의하면 어제 오후 3시 돌연 동군 우면 신평리로부터 민란이 일어나 폭도 4,500명이 대정성 내에 내습한다는 풍설을 듣고 수색한 바 고사훈, 이중심 양인이 스스로 의병장이라 칭하고 민병 1만 명을 인솔하여 제주성에 들어가서 조선의 옛 법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하여 각리 이장을 협박 구타하고 출병을 촉구하여 60여 명을 얻었고, 동군 중면 광청리에 집결하여 세력이 실히 창궐하다고 함.”이라고 기록해 놓고 있다.

고사훈과 조인관, 김만석 등은 영락리에 이르러 의병 20여 명과 신평·안성·광청 등지에서 장정 3백여 명을 의병에 가담시켰다. 그러나 당시 대정군수였던 김종하가 관군과 장정을 동원, 경찰과 협력하여 의병운동을 진압하였다. 결국 3월 1일 의병장 고사훈김만석이 체포되고 나머지 의병대는 지휘부를 잃고 퇴각하게 되었다.

[위치]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서리 1635 일대로 옛 주소는 제주군 대정읍 광청리이다. 마을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1900년대 광청리의 면사무소와 숙소[객사터] 등이 광해악 기슭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그 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문헌자료는 없다.

[현황]

현재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며 밭으로 조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대정 지역은 제주 역사가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던 곳이다. 특히 광청리는 구한말 민란과 의병운동의 분수령과 같은 곳으로, 전투지를 광장화하여 제주 역사를 알리는 교육의 장으로 승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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