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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706
한자 金萬石墓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208-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한금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1977년 - 김만석 묘,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 남쪽 기슭에 있는 모충사(慕忠祠)로 안장(가묘(假墓)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현 소재지 김만석 묘 -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 모충사(慕忠祠)
원 소재지 김만석 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208-1번지 지도보기
성격 능묘
관련 인물 김만석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에 있는 의병 김만석의 묘.

[개설]

제주읍 이도리 동광양 출신의 김만석고사훈이 1909년 2월 25일[음력 2월 6일]에 이도리 광양의 조인관의 집에서 창의의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할 때 참가하였다. 당시 1909년 제주의병의 창의자는 모두 10명이었으며, 이 자리에서 거사 날짜를 1909년 3월 3일[음력 2월 12일]로 하고, 장소는 관덕정(觀德亭)으로 결정하고 창의에 필요한 격문과 통문을 작성하였다. 제주도민들에게 사발통문을 보내고 김만석고사훈·조인관·김재돌(金在乭)·양남석(梁南錫) 등과 함께 당일 대정에 가서 의병을 모집하고 제주성에 집결하면 이중심·김석윤·노상옥·김재돌(金在乭)·양남석(梁南錫)·한영근(韓永根) 등이 제주성 안에서 호응, 기병을 하여 결전을 벌여 일본인들을 모조리 축출할 계획이었다.

이들은 영락리에서 100여 명, 신평리에서 100여 명 및 대정성 북문 밖의 마을에서 수십 명의 의병을 규합하고, 2월 28일에 대정군 중면 광청리에 집결하였다. 이에 제주경찰서 대정주재소는 3월 1일에 광청리 민가를 습격하여 고사훈김만석을 체포하였다. 3월 4일 오전 고사훈김만석은 서귀포주재소로 출발하려 할 때 포승을 끊고 감시하는 간수와 순사를 쓰러뜨리고 달아나다가 대정성 동문 밖 400~500미터 지점에서 순사에 의하여 사살되어 순국하였다. 1995년 김만석에게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위치]

김만석 묘는 안성교차로에서 덕수3교차로 사이 중간지점에 있다. 일주서로 2100번길에서 좌측으로 50여m 올라간 곳에 있다. 문헌자료 『폭도(暴徒)에 관한 편책(篇冊)』에는 ‘두사람[김만석, 고사훈]을 사살하고 시체는 그곳 원야(原野)에 가매장하였음’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황]

『남제주군의 문화유적』에 의하면, 김만석은 가까운 친척이 전혀 없어서 가매장된 채로 있었는데 안성리 송기남의 증언으로 확인되었다. 방치되고 있던 묘는 전(前) 보성초등학교장 좌태진에 의하여 단장되어 오다가[제주일보 1997년 8월 31일] 1977년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 남쪽 기슭에 있는 모충사(慕忠祠)로 안장되었다. 가묘(假墓)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에 있다.

[의의와 평가]

김만석 순국지에서 50여m 떨어진 언덕에 묘가 있는데, 도로에 안내 표지판이 없어 찾기가 매우 힘든 실정이다. 선열의 뜻을 기릴 수 있는 묘역조성이 새롭게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집결지 광청리와 순국지, 그리고 김만석 묘, 이들 사적지 간의 거리는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이 거리를 의병로로 지정하는 것 역시 가치있는 일이라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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