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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737
한자 嶺南洞-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영남동 224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동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48년 11월 18일연표보기 - 영남동 마을 4·3 사건으로 전소
소재지 영남동 마을 터 - 서귀포시 영남동 224번지 일대지도보기
성격 4.3 유적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영남동에 있는 4·3 유적지.

[개설]

해발 5백 m 고지에 위치한 영남동은 4·3 사건 당시 리 단위로 독립된 마을이었다. 16가호의 주민들은 옛부터 화전을 일궈 보리나 고구마를 재배했고, 숯을 굽거나 사냥하며 살았으며, 한문을 가르치던 서당도 있었던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그러나 1948년 11월 18일 토벌대가 초토화작전을 벌이며 영남리에 난입했다. 토벌대는 닥치는 대로 총을 쏘며 주민들을 학살하고 불을 질렀다. 이런 토벌대의 만행에 주민들은 해안 마을로 내려갈 생각은 못하고 마을 위 어점이악 주변의 밀림과 자연동굴에 몸을 숨기며 살았다. 그러나 그 겨울, 토벌대는 눈 덮인 산야를 헤매는 주민들을 즉석에서 총살하고 체포했다. 영남리에서는 4·3 사건으로 92명의 주민 중 5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변천]

서귀포시 영남동 224번지영남동은 4·3 사건으로 초토화되고,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여 복구하지 못한 채 터만 남아 있다.

[현황]

영남동은 남쪽으로는 고군산과 멀리 범섬이, 북쪽으로는 어점이악과 시오름이 보이는, 경관 좋고 아늑한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계단식 화전은 옛 형태 그대로 남아 있어 보존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집으로 들어가는 올렛길이 뚜렷하고 식수로 사용하던 물통도 잘 남아 있다. 그러나 짓다만 팬션 건물들이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고, 개발 바람으로 마을 터 흔적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영남동 마을 터에는 영남동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터와 군데군데 대나무들이 있어 옛 마을 터임을 알 수 있다. 길을 따라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영남동의 '잃어버린 마을' 표석이 나오고, 당시 주민들이 경작했던 농경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화전 마을의 구조를 한눈에 살펴 볼 수 있고, 4·3 사건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제주 4·3 유적』Ⅱ(제주도·제주4·3연구소, 2004)
  • 인터뷰(강정동 거주 김종원, 남, 1903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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