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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752
한자 -四三遺蹟址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은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8년 11월 - 큰넓궤와 도엣궤에서 동광리 주민 은신 생활 시작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9년 1월 - 큰넓궤와 도엣궤에서 은신하던 동광리 주민들 토벌대에 의해 총살되거나 서귀포로 체포되어 감
현 소재지 큰넓궤와 도엣궤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산 90번지 일대지도보기
성격 유적지

[정의]

큰넓궤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일대에 있는 제주 4.3사건 관련 유적지.

[개설]

큰넓궤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산 90번지 일대 동광리 무동이왓과 삼밧구석의 사람들이 1948년 11월 하순경부터 1949년 1월 중순까지 120여명이 약 50일 동안 숨어 살았던 용암동굴이다. 4.3유적지로 유명한 곳 중의 하나다.

동광리큰넓궤도엣궤는 동광목장 안에 있는 용암동굴로 1948년 11월 중순 이후 동광 주민들이 2개월 가량 집단적으로 은신생활을 했던 곳이다. 동광리 주민들이 대거 이 굴로 숨어들게 된 것은 11월 15일 중산간마을에 대한 초토화작전이 시행된 이후였다. 이 날 토벌대는 무동이왓 주민들을 전부 모이게 한 후 그 중 10명을 무자비하게 총살하고 간장리를 불태웠다. 그 후 동광 주민들은 마을 인근 여기저기에서 숨어 사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주민들은 주로 도너리오름, 곶자왈에서 숨어 살았다. 그러다 주민들은 큰넓궤를 발견하게 되고, 폭설이 쏟아지자 이 굴로 들어갔다.

큰넓궤는 험한 대신 넓었고, 사람들이 숨어 살기에 좋았다. 그 후 이 굴로 찾아든 사람은 120여 명이나 되었다. 당시 어린아이들이나 노인은 굴속에서만 생활했다. 청년들은 주변 야산이나 근처의 작은 굴에 숨어 토벌대의 갑작스런 습격에 대비하여 망을 보거나 식량이나 물 등을 나르는 일을 했다.

그러나 토벌대의 집요한 추적 끝에 굴은 발각되고 말았다. 토벌대는 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청년들은 노인과 어린아이들을 굴 안으로 대피시킨 후 이불 등 솜들을 전부 모아 고춧가루와 함께 쌓아 놓고 불을 붙인 후 키를 이용하여 매운 연기가 밖으로 나가도록 열심히 부쳤다. 토벌대는 굴속에서 나오는 매운 연기 때문에 굴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총만 난사했다. 그러다 토벌대는 밤이 되자 굴 입구에 돌을 쌓아 놓고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게 막은 다음 철수했다.

토벌대가 간 후 근처에 숨어 있던 청년들이 나타나 굴 입구에 쌓여 있는 돌을 치우고 주민들을 밖으로 나오게 했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다른 곳으로 피하도록 했다. 그러나 굴속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갈 곳이 막연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달리 어쩔 수 없었다. 옷이나 신발 모두 변변치 않았지만 한라산을 바라보며 무작정 산으로 들어갔다. 그 후 이들은 영실 인근 볼레오름 지경에서 토벌대에 총살되거나 잡혀 서귀포로 갔다. 이들은 정방폭포나 그 인근에서 학살됐다.

[형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산 90번지 일대에 있으며, 용암동굴·벼랑·이층굴·기어가야 하는 굴 등 다양한 모습을 한 굴이다.

[현황]

굴 입구는 한사람만 기어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좁다. 입구에서 5m 정도 가면, 3~4m의 절벽이 나온다. 남성 두 명이 도와야 내려갈 수 있다. 절벽을 내려가면 넓은 공간이 나오며 방호벽과 깨진 항아리 파편들이 많이 보인다. 굴속까지 가져가지 못한 항아리들이 굴 양옆으로 줄 지어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사는 공간까지 들어가려면 포복으로 30m를 더 들어가야 한다. 임산부도 있었다는데 이곳을 지나가기가 그리 녹녹치 않았을 것이다.

굴은 이층 구조의 굴로서 처음 온 사람들은 1층, 나중에 온 사람들은 2층에 자리 잡고 살았다. 도엣궤큰넓궤 동쪽 5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길이는 30m 정도이다. 이 곳에도 항아리 파편 등 당시 생활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제주문화예술재단 문화재연구소의 조사 결과 이 굴은 원래 큰넓궤와 이어진 굴이라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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