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763
한자 李琯石記念碑
이칭/별칭 남호 선생 이관석 기념비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윤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902년 - 이관석 출생
건립 시기/일시 1946년연표보기 - 이관석 기념비 건립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949년 - 이관석 사망
보수|복원 시기/일시 1973년연표보기 - 이관석 기념비 다시 건립
현 소재지 이관석 기념비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3235번지 지도보기
성격 비석
양식 평비
관련 인물 이관석
재질 현무암 조면암
크기(높이) 82㎝
너비 35㎝
두께 16㎝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위미초등학교에 있는 설립자 이관석의 공로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

[개설]

남호(南湖) 이관석(李琯石)[1902~1949]은 교육자로서 1921년 제주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신생활운동과 민중계몽운동에 헌신했다. 다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종사하다 1939년 위미초등학교가 설립될 때 초대 교장으로 발령받아 학교 초창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미군정기 제주도 학무과장을 역임했고, 이듬해 제주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여 재직하다 4·3사건의 와중에 1948년 12월 토벌당국에 의해 사라봉 인근에서 즉결 처형되었다.

[건립 경위]

일제 강점기 초등학교 설립인가 원칙은 1면 1개교였다. 남원면의 경우 남원리에 심상소학교가 설립되어 있어 거리가 먼 위미리 등의 주민들이 불편하였다. 그래서 위미·신례·하례 지역의 사람들이 진정을 올린 끝에 학교 설립인가를 받아 1939년 6월 1일 위미공립소학교로 개교하였다. 이관석은 초대 교장으로 부임하여 황무지 위에 터를 닦고 건물을 세워서 현재의 위미초등학교의 기틀을 세워 이 지역 교육에 기여하였고, 그 공로를 인정하여, 1946년 인근 마을 주민들이 공로비를 세웠다.

그 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이관석이 경찰에 의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지역주민들이 사상관계가 안 좋게 죽은 사람의 비석을 세워 둘 수 없다 하여 학교에 세웠던 비석을 땅 속에 묻어버렸다.

땅 속의 비석은 1973년 위미초등학교에 재직하던 오남련 교장에 의해 꺼내어 복원되어 학교 안에 다시 세웠다.

[형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3235번지 위미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비는 현무암 조면암으로 만들어진 평비로 정방형의 바닥돌 위에 대석을 놓고 비석을 세웠다. 비석은 높이 82㎝, 너비 35㎝, 두께 16㎝이다.

[금석문]

전면에는 ‘남호선생이관석기념비(南湖先生李琯石記念碑)‘ 라 새기고 그 밑에 학교의 기초를 닦은 공덕과 마을주민들이 비석을 세운 내력을 한문으로 적고, 좌측면에 ’단기 4279년 병술춘 위미 신례 하례 일동(檀紀 四二七九年 丙戌春 爲美 新禮 下禮 一同)‘이라 기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비가 땅속에 묻힌 것을 1973년 복원되는 과정을 통해 4·3사건 이후 서귀포 지역의 엄혹했던 현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