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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765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윤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949년 1월 12일 - 4·3 사건으로 의귀국민학교 전투에서 사망한 무장대 시신을 송령이골에 집단 매장
현 소재지 송령이골 -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1931-1번지 일대지도보기
성격 4·3사건 유적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남원읍 의귀리에 위치한 4·3유적으로, 의귀국민학교 전투에서 사망한 무장대의 시신이 집단매장된 곳.

[개설]

1949년 1월 12일 의귀국민학교 전투에서 사망한 무장대의 시신이 집단매장된 곳이다. 이 날 의귀국민학교에 주둔한 2연대 1대대 2중대 본부를 상대로 한 무장대의 기습은 3시간이 넘는 치열한 전투로 회자되고 있다. 이 날 군인 4명이 전사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무장대가 교전 중 사망했다.

이윤의 『진중일기』에는 ‘오늘, 이 전투에서 우리 중대는 안중사 이하 4명이 전사했고 5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본 반면, 반도(叛徒)들은 사살 96명, 생포 14명, 소총 60정과 도검류 다수와 놈들의 기밀문서 등을 노획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밝히고 있는 사살 숫자가 의귀국민학교에 수용했다가 총살한 일반주민과 무장대 사망자를 합친 숫자인지는 불명확하지만, 아무튼 많은 수의 무장대가 사망했다.

이들의 시신은 학교 옆에 아무렇게나 방치됐다가 토벌대의 지시에 의해 옮겨져 집단매장 된 곳이 ‘송령이골’이며, 길가에 봉분으로 남아 있다.

[현황]

당시 버리다시피 매장한 상태로 돌보는 사람도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4년 5월 14일, ‘생명평화탁발순례단’[단장 도법 스님]은 제주4·3연구소, 현의합장유족회 등과 더불어 이곳을 벌초하여 표지판을 세우고 천도재를 치렀다.

그 이후 ‘초연회’[회장 김경훈] 등 일부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매해 8월 15일 벌초를 하고 있으며 조그마한 방사탑을 세우고 보살피고 있다. 다음은 표지판 전문이다.

모든 생명은 존엄한 것이다.

옛말에 “적의 무덤 앞을 지나더라도 먼저 큰절부터 올리고 가라”고 했다.

바로 이 곳은 제주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4·3사건’의 와중에 국방경비대에 의해 희생된 영령들의 유골이 방치된 곳이다.

당시 국방경비대 2연대 1대대 2중대는 남원읍 중산간 마을 일대의 수많은 주민들을 용공분자로 몰아 의귀초등학교에 수용하고 있었다. 1949년 1월 12일[음력 48년 12월 14일] 새벽 무장대들이 내습, 주민피해를 막아보려 했지만 주둔군의 막강한 화력에 밀려 희생되고 말았다. 이 때 희생된 십수 명의 무장대들은 근처 밭에 버려져 썩어가다가 몇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 곳에 묻혔지만, 내내 돌보는 사람 하나 없이 덤불 속에 방치돼왔다.

우리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은 우익과 좌익 모두를 이념대립의 희생자로 규정한다. 학살된 민간인뿐만 아니라 군인·경찰과 무장대 등 그 모두는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때 희생된 내 형제 내 부모였다.

‘평화의 섬’을 꿈꾸는 제주도. 바로 이 곳에서부터 대립과 갈등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우리 순례단은 생명평화의 통일시대를 간절히 염원하며, 모성의 산인 지리산과 한라산의 이름으로 방치된 묘역을 다듬고 천도재를 올리며 이 푯말을 세운다.

                      2004년 5월 13일

                                   생명평화 탁발순례단 일동

위 표지판은 그동안 태풍 등에 훼손되었는데 2011년 초연회에서 새롭게 보수하여 세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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