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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766
한자 -駐屯所四三遺跡址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윤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영군모루주둔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158번지 일대지도보기
성격 제주 4·3사건 유적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 위치한 제주4·3사건 관련 유적.

[개설]

1948년 4월 제주4·3사건 발발 당시 제주 지역에는 국방경비대 제9연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같은 해 12월에 국군 제2연대로 교체되었다. 군인들은 제주도 전역의 관공서나 학교 등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규모로 주둔해 토벌작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임시 주둔을 위한 주둔소나 부대경비를 위한 초소를 구축했다.

[건립 경위]

1948년 12월 26일 국군 제2연대 1대대 2중대는 의귀국민학교에 주둔했다. 이 시기에 의귀리는 이미 초토화 작전에 의해 마을의 집들이 모두 불타고, 갈 곳을 잃어버린 인근 주민들은 마을 주변의 숲이나 동굴 혹은 임시로 엮은 움막 등지에서 힘겨운 피난생활을 하고 있었다.

2중대 군인들은 의귀국민학교에 진을 치고 주변을 수색해 은신생활을 하던 마을 주민을 붙잡아 수용하고는 했다.

이때 군인들이 주둔하던 국민학교 외곽경비를 위해 속칭 ‘영군모루’에 경비초소를 겸한 주둔소를 만들었다. 1949년 1월 10일 무장대가 의귀국민학교를 습격하여 상호교전을 벌인 직후 군부대는 태흥리로 철수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군인이나 경찰이 가끔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 증언자는 귀순 후 1949년 봄에 이곳에서 군인들의 심부름을 한 적이 있는데 영군모루주둔소 아래쪽 샘물에 가서 물을 떠오라고 해서 철모에 물을 받아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위치]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158번지 일대의 속칭 ‘영군모루’에 위치해 있다.

[현황]

영군모루 일대에는 조선시대 헌마공신(獻馬功臣)으로 유명한 김만일의 묘 등 산담을 두른 묘지가 많다. 당시 초소를 만드는 데 이 산담을 많이 사용했었다. 그리고 초소가 쓸모없어지면서 초소를 만들었던 돌은 다시 산담으로 대부분 돌아갔다. 따라서 지금은 초소의 밑굽만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 뚜렷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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