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여산송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799
한자 礪山宋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강만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592년 - 여산송씨 입향
본관 여산 - 전라북도 여산
입향지 여산송씨 입향지 - 제주목 화북리
세거|집성지 여산송씨 집성지 -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송유익(宋惟翊)
입향 시조 송자보(宋自寶)

[정의]

송유익(宋惟翊)을 시조로 하고 송자보(宋自寶) 등을 입도조(入島祖)로 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세거하는 성씨.

[개설]

우리나라 모든 송씨의 도시조는 당나라 호부상서를 지낸 송주은이다. 그의 7세손 송순공의 후손 자영이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맏이가 유익이요, 둘째가 천익이며, 셋째가 문익으로 이들 3형제가 각각 여산·은진·단산 송씨의 시조가 된다. 은진은 여산송씨의 시조 유익의 아우인 천익의 후손 송대원을 1세로 하고 있어 이 두 가문은 서로 큰집과 작은집으로 통하고 있다. 일조지손인 모든 송씨는 비록 본관이 달라도 절대로 통혼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삼고 있다.

[연원]

시조 송유익(宋惟翊)의 증손인 송례(宋禮)의 아들 송담·송분 형제 대에서 원이공파·밀직공파·소이공파·지신공파·정가공파 등 5파로 갈리게 된다. 입도조 송자보(宋自寶)는 시조 송유익의 16세손으로, 조선 중종 말 정국이 혼란해지자 제주에 들어와 제주시 오라동에 정착하였다.

[입향 경위]

입도조 송자보의 증손 송남(宋楠)은 송유익의 13세손으로, 전라북도 여산에서 출생하였고 통정대부로 첨지정언(僉知正言)을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그만두고 제주에 입도하여 제주목 화북리에 정착하였다. 송우홍(宋遇弘)은 시조 송유익의 16세손으로, 통정대부에 올라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1705년(숙종 31)에 벼슬에서 물러난 후 제주목 화북리로 입도했다. 송이존(宋以存)은 시조 송유익의 17세손으로, 1657년(효종 8) 서귀포 대정현 안성리에 정착하였다.

[현황]

현재 제주도에는 정가공파·지신공파·원이공파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정가공파는 시조 송유익의 6세손 송서를 파조로 하는데, 송응정의 후예를 정가공 제주상파로, 송응생의 후예를 정가공 제주중파로, 송응봉의 후예를 제주말파로 부르고 있다. 지신공파의 파조는 정가공파의 파조 송서의 친형인 송린이다. 이 송린의 후예 13세손 송남을 입도조로 하여 승운공파·흥운공파·사운공파·충운공파·득운공파 등 다섯 파로 갈라진다.

2000년 11월 현재 제주도에는 2,361가구에 7,602명, 그리고 서귀포시 지역에는 표선면 하천리 등지에 859가구, 2,497명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