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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진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812
한자 豊基秦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강만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371년 - 풍기진씨 입향
본관 풍기 - 경상북도 풍기
입향지 풍기진씨 입향지 -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
세거|집성지 풍기진씨 집성지 -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한경면 판포리|서귀포시 중문동·안덕면 안덕리
성씨 시조 진필명(秦弼明)
입향 시조 진계백(秦季伯)

[정의]

진필명(秦弼明)을 시조로 하고 진계백(秦季伯)을 입도조(入島祖)로 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세거하고 있는 성씨.

[연원]

풍기진씨의 시조 진필명은 원래 중국 당나라 태원(太原) 사람으로, 당 고종 때 병부 시랑으로서 소정방과 함께 당군(唐軍)을 이끌고 백제 공략에 참가했다가 백제를 멸한 뒤에도 돌아가지 않고 신라에 정착한 것으로 전한다.

우리나라의 진씨는 모두 진필명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하므로, 우리나라 진씨의 도시조는 진필명이다. 입도조 진계백은 입국 시조 진필명의 18세손이며 중시조 진원(秦元)의 3세손이다. 고려조에 출사하여 벼슬이 우참찬(右參贊)에 이르렀다.

[입향 경위]

풍기진씨 입도조 진계백은 고려 말에 우참찬(右參贊)까지 지냈으나 권신(權臣) 홍륜(洪倫)최만생(崔萬生) 등과 의견이 맞지 않아 화가 미칠 것을 미리 알고 1371년(공민왕 20)에 가족과 노비 등을 이끌고 현재의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피난하여 입도했다.

제주도에 사는 진씨들은 진계백의 후손들로, 장파손인 진인규는 한경면 판포리에 거주하고, 중파손인 진인한(秦仁漢)은 한림읍 명월리에 살았다. 그리고 말파손인 진의한(秦義漢)은 애월읍 납읍리에 세거하니 이때부터 3파가 형성되어 그 계보가 이어졌다.

[현황]

오늘날 풍기진씨들은 각 파 간의 후손들이 본관의 근원을 각각 달리하고 있다. 장파(長派)[판포]의 일부와 말파(末派)[납읍]인 진의한(秦義漢)의 후손들은 본관을 풍기(豊基)로, 중파(仲派)[명월]인 진인한(秦仁漢)의 후손들은 본관을 진주로, 장파(長派)[판포]에 속하는 일부 후손들은 몽골과 관련된 대원(大元)을 본관을 삼고 있다. 장파는 애월읍 곽지리와 한경면 판포리 등지에 살고, 둘째 진인한을 중파의 시조로 하는 후예들은 한림읍 명월리와 서귀포시 중문동 등지에, 셋째 진의한을 말파의 파조로 하여 애월읍 납읍리와 광령리 등지에 살고 있다. 풍기진씨들은 각 파들끼리 문중회를 구성할 뿐 아니라 제주도 진씨문중회를 구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귀포시 지역의 풍기진씨는 진인한을 중파의 시조로 하는 후예들로, 중문동과 상하예동, 안덕면 안덕리, 대정읍 등지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2000년 11월 현재 제주도 내에 594가구에 2,016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서귀포시 지역에는 57가구, 201명이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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