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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1540
한자 祭禮飮食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집필자 오영주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기제사나 명절 등 유교식 제례에서 사용되는 음식.

[개설]

조선 시대인 15세기 초엽 제주도에 유교가 도입되었으나 육지부와는 달리 일반 대중에게 정착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경과되었다. 초기에는 남녀가 함께 무리를 지어 무속제례를 지내다가 조선 시대 후기인 18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남성 중심의 유교식 제례가 정착되었다. 그러나 서귀포 지역에서는 아직도 문전제(門前祭) 등 무속제례의 잔재가 유교식 제례에 혼합되어 전승되고 있다. 기제사와 명절 때의 제수(祭需)와 제찬(祭粲) 등의 제상차림은 『사례편람』의 원칙을 중시하여 진설되나, 음식의 종류와 조리법은 육지의 그것과 큰 차이가 있다.

[기제사 음식]

서귀포에선 제사(忌祭)를 흔히 ‘식게’라고 한다. 또한 제사에 참석하러 가는 것을 “식게 먹으러 간다”라고 한다. 이는 제사 음식을 음복하러 간다는 뜻이다. ‘식겟날’은 추모성의 분위기보다는 ‘먹으러 가는 날’로서 자손들에게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는 친교의 마당과 같다. 궁극적으로 친족의 동질성을 재확인하고 유대를 강화하는 매개체가 된다. 제사는 보통 사흘 정성으로 준비한다. 제주(祭主)는 사흘 전부터 상가 방문, 피 흘림, 사체 보기, 병문안, 성생활, 싸움이나 욕하기, 말고기나 개고기 먹기 등 부정에 노출되지 않도록 몸가짐을 정결히 한다.

1. 제수 준비

제수는 제상에 진설하는 음식으로, 메와 갱, 떡, 육적과 어적, 숙채[탕쉬], 그리고 과일 등이다. 제수 중 적류[육적·어적·묵적 등]를 굽는 작업은 전적으로 남성의 고유 몫이고, 나머지 제수 준비는 여성이 주관하는 것이 관례이다.

1) 메: 보통 ‘식게밥’이라고 부른다. 쌀이 귀했던 1970년대 이전에는 그릇의 반은 좁쌀밥으로 채우고, 그 위에 쌀밥을 채운 ‘두칭밥’을 올리기도 하였으나, 그 이후는 곤밥[쌀밥]을 올린다.

2) 갱: 흔히 ‘갱국’이라고 칭한다. 옥돔이나 북바리 등 비늘생선 또는 쇠고기에 무나 미역을 넣고 끓여 올린다.

3) 떡: 편(片)틀에 고이는 떡을 말한다. 침떡[시루떡]·곤떡[솔변이나 절변]·세미떡·인절미·송편·우찍[웃기]·고달떡[기름떡]·빙떡[전기떡] 등이 있다. 종손 집 또는 차손 집 제사에 따라, 그리고 경제 사정에 따라 떡의 범위가 달라진다. 또한 가문이나 지역에 따라 떡의 종류와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편은 우주의 상징성을 나타내므로 땅[地]-구름[雲]-달[月]-해[日]-별[星]의 순서로 편틀에 고인다. 침떡[또는 빗상애떡나 고달떡]은 땅, 인절미[또는 세미떡]는 구름, 솔변은 달, 그리고 우찍은 별을 의미한다. 땅과 하늘을 상징하는 떡은 반드시 올리고, 나머지는 사정에 따라 준비한다.

4) 묵적: 메밀묵이나 청포묵, 또는 두부를 적으로 쓴다. 밀가루 배급이 있던 1970년대 이전에는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지져 묵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묵적은 대나무 적꼬치에 짝수 네 개를 꽂아서 화롯불에 구워서 준비하고, 세 꼬치 또는 다섯 꼬치 등 홀수로 올린다.

5) 육적: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일정 크기로 잘라 적꼬치에 꿰어서 화롯불에서 굽는다. 해촌에서는 상어적이나 오징어적, 문게[문어]적, 고래적 등을 셋 또는 다섯 꼬치로 홀수 개를 올린다.

6) 해어: ‘제숙’이라 하여 솔라니[옥돔], 우럭, 벤자리 또는 북바리 등 비늘생선을 배 가르기 하여 염장, 건조한 것을 구워서 올린다. 집안에 따라서 갈라진 배 비늘을 위로 향하게 하기도 하고, 밑으로 돌려 올리기도 한다.

7) ‘탕쉬’ : 삼색 숙채(熟菜)로 구성된다. 그 중 고사리채는 조상이 제사음식을 싸고 갈 지게를 의미하므로 필수품이다. 나머지 두 가지는 콩나물채·미나리채·양하채·무채·호박채 등을 계절에 따라 골라 쓴다. 집안에 따라서는 탕쉬에 ‘보찌’[묵탕쉬: 두께 1cm에 길이 5cm 크기의 묵을 기름에 살짝 둘러 볶은 것]를 올려놓기도 한다.

8) 전: 조상이 제사음식을 싸 가지고 갈 보따리를 의미한다. 계란전이나 초기전[표고버섯]을 사용한다. 메밀가루 반죽을 숟가락으로 떠 놓아 동그란 모양의 메밀전을 부치기도 한다.

9) 과일: 예전에는 당유자를 주로 썼다. 겨울철에 시장에서 구입하여 보리항아리 속이나 뒤뜰에 땅을 파서 저장하여 두었다가 세 개씩 꺼내어 썼다.

10) 모사(茅沙) : 초헌관이 제를 시작하면서 술을 붓는 용기를 ‘모새접시’라고 한다. 모래를 채운 모사기에 띠를 꽂는 것은 아니고, 모새접시에 띠를 7cm 길이로 자른 것 세 개를 놓는다. 집안에 따라서는 10cm 띠를 세 개 놓고, 그 위에 고사리 두세 개를 올려놓는다. 일부 집안에서는 감귤 나뭇잎을 올려놓기도 하는데 이는 부정을 쫓는 의미이다.

2. 제수의 변천

서귀포 지역에 사회경제적 변화가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면서 제사음식에도 크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메와 갱, 그리고 어적과 숙채는 예나 지금이나 거의 같으나 떡·술·육적·과일 등은 많이 달라졌다. 제수 준비에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던 떡은 방앗간에 주문하여 따로 만들거나 제과점에서 사다 쓴다. 1980년대 이후 좁쌀 제편과 메밀 인절미, 세미떡, 그리고 고구마 침떡이 사라졌다. 손으로 만들었던 다양한 모양의 수많은 떡들이 자취를 감춘 것은 농사 작목의 변화와 방앗간의 기계화 때문이다. 제상에 제물빵 대신 쵸코파이, 제편 대신 카스테라나 롤케익을 진설하기도 한다.

제수 중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바뀐 것은 아마 제주(祭酒)일 것이다. 고소리술과 오메기술[좁쌀 청주]를 쓰다가, 1907년 일제의 조선통독부령으로 가양주 제조가 단속 대상이 되어 희석식 소주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좁쌀로 만든 ‘골감주’[좁쌀 식혜의 일종]도 마찬가지이다. 대신 그 자리에 1970년대 공장에서 만든 ‘환타’[청량음료]가 자리를 차지하여 더 이상 좁쌀 식혜는 쓰지 않는다.

지금은 농수산물 수입 개방과 함께 중국산 고사리가 쓰이고, 계절에 관계없이 바나나와 파인애플, 포도 등 수입산 과일이 진설된다. 조리방법 역시 크게 달라졌다. 육적과 어적은 화롯불에서 남성들이 직접 직화로 구웠으나, 지금은 육지식 산적을 프라이팬에서 여성들이 간접 열로 익힌다. 또한 전류[명태전·게맛살전·호박전·튀김]와 잡채가 진설되기도 한다.

기제사에 참여하는 친척이 부조하는 떡도 빙떡이나 ‘상애떡’에서 빵집의 찐빵 또는 오븐에서 구운 빵으로 바뀌었다. 1970년대 이후 밀가루 배급과 공급이 흔해지면서 메밀에서 수입 밀가루로 떡의 재료가 대체된 결과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제사에 친인척 아녀자들이 ‘고령착’[부조바구니]에 떡을 담아 부조하는 관습도 더 이상 행해지지 않는다. 또한 제사 다음날 동네에 밥과 떡을 나누는 ‘떡반돌림’도 찾아볼 수 없다. 예전에는 떡반을 나눠줄 분량을 생각해서 떡을 많이 만들었다. 동네에 제사가 있으면 이웃들은 다음날 아침 떡반을 기다렸다.

[명절 차례 음식]

서귀포 지역에서 설·한식·단오·추석 등 유교식 4대 명절을 지내오다가, 1970년대 초 정부의 허례허식 타파와 의례 간소화의 정책으로 한식과 단오는 더 이상 지내지 않는다. 명절은 한 해에 지내는 제사상[보통 3대 또는 4대 봉사 : 제주의 부모, 조부조모, 증조부모, 고조부모)을 모두 한꺼번에 진설하여 제사를 지낸다는 점이 기제사와 다른 점이다. 어떤 가정에 따라서 대청마루 한쪽 끝에서부터 맞은편 끝까지 진설하는 경우도 있다. 서귀포 지역에서는 차례를 마치면 식사[곤밥·국·숙채·적]와 함께 떡반을 꼭 대접한다. 제수의 떡을 인원수에 맞춰 동일하게 분배한 떡쟁반이다. 도감[남성, 제사주인]이 나누어주는 쟁반을 반이라고 하며, 쟁반에는 제떡과 과일, 적이 분량씩 들어 있다. 이렇게 반을 나눈는 행위를 ‘떡반나눈다’라고 한다. 철상을 하고 나면 모두 모여서 어른들은 상에서, 어린이들은 바닥에서 식사를 한다. 여자들은 부엌이나 제물을 준비했던 뒷방 바닥에서 식사를 한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먹다 남은 개인 몫의 떡반은 반드시 챙겨서 집으로 가져왔다.

1. 정월멩질

정월 초하룻날에 지내는 차례를 ‘정월멩질’이라고 한다. 정월 초하룻날이 밝으면 각 가정마다 살아 계신 부모에게 먼저 세배를 올리고, 제례상에 진설할 제수들을 정리하여 둔다. 의례 간소화 시책이 실시 전인 1970년대 초까지는 ‘떡국제’를 우선 지내고, 메와 갱을 올리는 제례는 차순(次順)으로 지냈다. 떡국제란 일종의 다례로서, 단헌단배(單獻單拜)의 약식 제를 지내는 것이다. 떡국제는 식전에 조상 신위가 오면 섭섭하지 않게 미리 요기를 채우도록 배려하는 의미를 가지며, 일종의 차를 대접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라고 한다. 떡국제를 마치면 제상의 떡국만 철상하고, 나머지 떡·적·숙채, 그리고 과일은 다음에 행해질 본제(本祭)를 위해 제상 위에 그대로 둔다. 본제의 진설은 기제사와 동일하게 넉 줄로, 첫째 줄은 메와 갱, 그리고 떡이며, 두 번째 줄은 적, 세 번째 줄은 숙채, 네 번째 줄은 과일이다. 제수는 메[곤밥], 갱[옥돔국·쇠고기미역국], 떡[제편·새미떡·솔변·절변·우찍], 적[육적·어적·전], 숙채[고사리·콩나물·무채], 과일 등이다.

2. 추석

추석의 제수와 차림은 설에 비해 종류와 규모가 훨씬 작다. 논농사 중심의 육지부와 달리 밭농사를 주로 하는 서귀포의 팔월 보름은 농번기로 매우 바쁜 계절이기 때문이다. 제례를 마치자마자 들로 나가 농작물을 수확하거나 소꼴을 베는 등 가을 걷이에 여념이 없어 그 의미는 육지부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설 명절의 제수와 다른 점은 떡의 종류가 적어 편틀에 ‘침떡’[시루떡] 위에 송편이나 메밀 세미떡을 얹으며, 제철음식으로 양하로 만든 숙채를 올린다는 것이다. 나머지 메와 갱, 적류, 음청류 등은 설 명절이나 기제사와 별반 다름이 없다.

[문전상]

문전상은 일부 지역 또는 가문에서 명절 또는 제삿날에 부수적으로 차리는 상이다. 문전상은 작은 상에 본제의 상에 올린 제물을 고루 올리는데, 메를 제외하고 적류·떡류·과일류·탕쉬류별로 한 그릇에 담아 올린다. 경우에 따라서는 고팡상을 차리기도 하는데, 문전상에 비해 규모가 적다.

문전제를 지내는 집안에서는 문전신에 대한 배례로부터 제사가 시작한다. 일단 자시(子時)가 되면 본제상과 문전상[또는 고팡상]에 따뜻한 갱을 올리고, 우선 문전제를 지낸다. 상방[마루]이 집의 중앙이 되고, 상방의 입구 중앙 상부에 문전신이 있다. 본제상 옆에 진설해 두었던 문전상을 상방 끝에서 밖을 향해 상을 놓고 제주 혼자 지내며, 절차는 단헌단작(單獻單爵)으로 본제사의 축소형이다. 제주가 제관이 되어 문전상 앞에서 끓어 앉아 재배한 다음, 향을 피운다. 이어서 잔에 술을 부어 향불에 3회 돌려 상에 올린 후 메그릇 뚜껑을 열고 수저를 꽂고 재배한다. 다음에 숭늉을 밥과 국 사이에 올리고 수저로 밥과 국을 떠서 숭늉에 넣고 수저를 내려놓은 다음, 잔의 술을 숭늉 그릇에 붓고 제수를 손톱으로 조금씩 떼어서 숭늉 그릇에 넣은[잡식 : 삽시(揷匙)] 후, 재배하여 끝낸다. 이 제상은 부엌으로 넘겨지면 부인이 제물을 조금씩 떼어서 그릇에 모아 조왕신이 있는 솥 뒤쪽으로 ‘케우림’[떠 던짐]으로 문전제는 끝난다.

[제사와 까마귀]

서귀포 지역에서는 ‘까마귀 모른 식게’가 있고, 제례를 끝낸 후 이어서 ‘굅시’[잡식]를 지붕으로 던지는 관습이 있다. 이 모두가 까마귀와 관계가 있다는 점이 타 지역과 유다름이다. ‘까마귀 모른 식게’는 까마귀도 모르게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이다. 예전에 자식 농사는 반타작이라 할 정도로 어린이 사망률이 높았다. 이 제례는 나이가 10세가 넘어 호적에 등재한 후 돌아간 어린 자식을 생각해서 지내는 제사이다. 참석의 범위는 식구에 한하고, 망인의 부모가 돌아가면 더 이상 지내지 않아 세습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성인이 된 자식은 망자끼리 짝을 찾아 사혼을 하고, 아들집에서 신부의 제사도 지낸다. 또 다른 ‘까마귀 모른 식게’는 제주의 부인이 외동딸로 자라다가 시집온 후 처가 부모가 돌아가면 사위가 처가 부모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처가 친척도 제사에 참여하지 않고 알리지도 않아 언제 지내는지 모르게 사위가 알아서 지낸다. 까마귀 모른 식게는 유교식 제례라기보다는 무속의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제사음식을 조금씩 모아 지붕 위로 던지는 ‘굅시’는 까마귀를 위한 대접이다. 보통 제사에 귀신이 왔다간 집은 지붕에 음식이 없다고 한다. 까마귀가 와서 다 주워 먹었기 때문이다. 까마귀가 저승차사라는 관념이 서귀포 주민들 생각에 남아 있다. 무속의 무가 중에 차사본풀이에도 까마귀와 뱀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는데,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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