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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칼국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1561
이칭/별칭 메밀칼국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음식물/음식물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집필자 오영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지역 내 재료 생산지 메밀 생산지 - 서귀포 중산간 지역
성격 국수|칼국수
재료 메밀|무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메밀반죽을 얇게 밀어 편 다음 손가락 길이로 굵게 썰어서 무채와 함께 끓인 음식.

[개설]

메밀반죽을 밀어서 칼로 굵게 조각조각 썰어 무채와 함께 물에 끓인 면을 숟가락으로 떠먹는다고 해서 메밀칼국수라 하지 않고 ‘메밀칼국’이라고 한다. 보통 육지의 칼국수와 만드는 방법은 비슷하나 모양은 칼국수 보다 두껍고 넓으나 길이는 짧다. 또한 메밀에는 독이 있어 반드시 무와 함께 먹어야 해독이 된다고 믿고 있으며, 이러한 관행은 지금도 지켜진다.

[연원 및 변천]

서귀포 중산간 지역은 화산회토로 이루어진 척박한 토양이어서 수분 흡착력이 매우 약해 쉽게 가뭄이 든다. 메밀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생육하는 작물이기 때문에 구황 작물로 널리 재배되었다. 서귀포 중산간 지역에 마을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말 고려 시대 몽골인이 성산읍 수산리 오름 주변에 몽골말을 방목하면서 부터이다. 이때부터 중산간에 화전이 본격적으로 조성되었고, 여기에 메밀을 주 곡물로 경작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메밀은 가루를 내어 분식용으로 조리하는 데 적합한 곡물이므로, 메밀칼국은 이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무 역시 화산회토에서 잘 생육하는 근채류일 뿐만 아니라 계절적으로 메밀의 경작 시기가 같다. 이 점을 감안하면 메밀과 무의 경작은 중산간 지역에서 동시에 이루어져 메밀 음식의 부재료로 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만드는 법]

메밀가루는 소금 간을 하고 미지근한 물로 반죽하여, 안반에 올려놓고 밀대로 평평하고 둥그렇게 밀어 보통 칼국수 보다 2배 정도 두껍게 만든다. 반죽을 칼로 3등분 하여 서로 붙지 않게 가루를 뿌려 겹치게 쌓은 다음, 칼로 0.5㎝의 너비로 굵직굵직하게 썬다. 끓는 물에 채 썬 무를 넣어 끓기 시작하면 면을 넣고 한소끔 끓인 다음, 실파를 넣고 소금 간을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서귀포 지역에 오래 전부터 메밀에 관한 야사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고려 충렬왕 때 몽골 군인들이 대거 제주도로 들어왔다. 이때 말과 함께 메밀 종자도 들여와서 중산간 토지에 메밀을 심었다. 메밀에는 남성의 기를 허하게 하는 성분이 있어 오래 장복하면 정력이 쇠퇴하여 씨가 마른다고 하였다. 따라서 메밀로 제주 남성의 씨를 말리고 몽골인의 씨를 뿌려 제주를 몽골화 시키기 위한 계략이었다. 그러나 영리한 제주인들은 몽골의 이러한 속셈을 알아차리고 메밀을 심은 밭 옆에는 반드시 무를 심었다. 무에는 메밀의 독을 푸는 성분이 있을 뿐만 아니라 메밀을 무와 함께 먹어 오히려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지금도 메밀이 들어간 요리에는 반드시 무를 함께 넣어 조리하는 관행이 지켜지고 있다.

서귀포 주민들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하는 논리가 다음 두 역사서에 나와 있어 ‘메밀과 무의 야사’는 더욱 흥미롭게 한다. 1330년 원나라 어의인 몽골인 홀사혜(忽思慧)의 『음선정요(飮膳正要)』[1330]에 “메밀은 맛은 달고, 성질이 평하고, 무독하다. 오래 장복하면 풍(風)이 동(動)하여 머리가 어지럽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의보감』에도 ‘메밀과 무는 궁합이 잘 맞는다. 메밀 독을 풀려면 무를 찧어서 즙을 내어 마시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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