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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1589
한자 平常服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집필자 현진숙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민이 평상시에 입는 옷.

[개설]

평상복은 의례나 특별한 목적을 위해 입는 옷이 아닌 평상시에 입는 옷이며, 외출복과 일상생활 때 입는 옷으로 구분될 수 있다. 전통적인 평상복의 기본 구조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저고리·치마·바지·포이다. 외출 시에 남자는 저고리, 바지 위에 도포나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쓰거나 모자를 쓰고 나갔고, 여자인 경우는 치마저고리 차림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집안에서도 쉴 날이 없는 노동이 곧 생활이었기 때문에 노동복이 곧 평상복 역할을 하였다.

[남자 평상복]

남자의 전통적인 평상복 차림은 바지저고리 차림이고 외출할 때는 위에 도포나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썼다. 겨울에는 누비거나 솜을 넣은 바지와 저고리를 입기도 하였으나, 보통 서민들은 무명 저고리, 바지 차림이고, 여름에는 여유가 있으면 삼베나 모시로 만든 적삼과 잠방이를 입고, 보통은 무명 홑바지에 적삼을 입었다. 색상은 주로 소색이 대부분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조끼와 마고자는 주머니가 있어 소지품을 가지고 다니기에 편리해서 만들어 입기 시작했고, 도포도 1884년(고종 21) 의복 간소화령에 따라 도포 대신 두루마기가 의례복과 외출복으로 활용되었다. 두루마기는 해방 전후부터 짙은 색상의 양복감으로 만든 기지두루마기를 입기 시작하였다. 신발은 예전에는 대부분 짚신이나 조리를 신고 비가 오는 날은 나막신을 신다가 1920년대 들어 고무신을 신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다. 구두는 양복이 들어오면서 들어와 한복 차림에 구두를 신기도 하였다. 모자도 단발령으로 갓 대신 중절모와 같은 서양모를 한복에 쓰고 다녔다.

[여자 평상복]

여자의 평상복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치마와 저고리이다. 외출복 차림은 속옷을 보면 소중이 위에 대개 여름에는 고장중의, 겨울에는 속바지를 입고 그 위에 단속곳을 입고 치마를 입으면 되었다. 상의는 속적삼을 입고 저고리를 입었고 치마와 저고리 사이 맨살이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허리띠를 둘렀는데 지금의 브래지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머리에는 부녀자들은 수건을 쓰고 는대구덕을 겨드랑이에 끼고 다녔고, 처녀들은 뭍에서와 같이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일은 없었다.

1900년대부터 불어 닥친 근대화 물결은 여자들의 평상복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겉옷은 남자들이 양복을 받아들이는 것에 비해 여자들은 전통을 고수하면서 편리함을 쫒아 개량하여 입기 시작했다. 속옷들도 겉옷의 변화에 맞추어 변화를 가져와 소중이 대신 브리프와 팬티를 입기 시작했고, 단속곳 대신 속치마를 입게 되었다.

외출을 제외하고는 서귀포 여자들은 365일 쉴 날 없이 일을 해야만 살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노동복이 곧 평상복 역할을 하였다. 또한 속옷이 겉옷 역할을 하기도 했다. 즉 굴중이[단속곳]는 치마 속에 입는 내의지만, 울타리 안에서는 외의 역할을 하다가 외출할 때는 그 위에 치마만 걸치면 되었다. 점차 내의에도 변화가 와서 밑이 터진 속바지가 밑이 막히면서 외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있었기 때문 일제 강점기 말에 몸뻬가 들어와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노동복이면서 집안에서 입는 편리한 평상복이 되었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서귀포시에서는 부지런히 직조를 해야만 식구들의 옷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 올의 실오라기도 귀하게 여겨 어른들의 옷이 낡으면 성한 곳을 오려 아이들 옷을 만들어 주고, 그것마저 만들 수 없을 때는 아기 기저귀 감으로 이용하였다. 그리고 손바닥 만한 천조각도 모아 두었다가 요긴하게 사용했을 만큼 절약이 몸에 밴 생활이었다. 그래서 옷을 만드는 데도 검약 정신을 바탕에 두고 궁리를 하여 실용성과 편리함, 그리고 다양성을 염두에 두어 한 올이라도 허투루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한편, 서귀포 지역의 평상복은 육지 사람들의 평상복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 부녀자들이 외출 시에 머리에 쓰는 수건이다. 평상시에는 바람을 막아 주고 보온을 위해 머리에 쓰고, 일을 할 때에는 햇빛가리개와 땀 닦는 용도로 쓰이는 점은 같지만, 외출할 때는 맨머리로 나다닐 수 없다고 하여 예의용으로 쓰는 용도가 다르다.

둘째, 속옷 중에서 소중이는 뭍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이다. 형태는 물소중이와 같지만 길이가 짧아 허리에서 끈으로 매도록 하였다. 소중이는 일할 때 몸에 달라붙지 않고 통풍도 잘 되고 용변을 볼 때도 다 벗지 않고 한 쪽 허벅지만 풀면 볼 수 있게 고안된 속옷이다.

셋째, 는대구덕을 들고 다니는 것도 뭍에서 볼 수 없는 현상이다.

[현황]

서귀포 지역의 의생활은 조선 시대 후기까지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의생활을 해 왔다. 그러나 말기부터 불어 닥친 근대화의 물결은 서귀포시의 의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양복이 들어오면서 전통 복식인 한복과 이중구조를 이루었고, 한복도 활동하기 편한 옷으로 변해 갔다. 변화는 남자들이 먼저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양복이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서귀포시에 일본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았고, 학생들이 양복을 교복으로 입게 되면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여자들이 전통적인 의생활에서 양장을 받아들이는 데 남자보다 10여 년이 더 걸렸으며, 한복에서 양장으로 가는 과정도 양장과 한복이 공존하다 서서히 양장으로 바뀌었다. 즉 두루마기 대신 스웨터나 코트를 저고리 위에 덧입거나, 혹은 한복 치마 위에 블라우스나 스웨터를 입다가 서서히 젊은 층에서 양장을 입게 되었다.

1960년대 이후 남녀 젊은 사람들은 평상복으로 양복을 입었고, 한복은 명절이나 잔치와 같은 의례복으로만 입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노인들은 평상시에도 한복을 입거나 한복과 양복을 혼용하여 입었으며, 머리 모양도 쪽진 머리를 하는 노인들이 많았다. 특히 예를 갖추어야 할 장소로 외출을 할 경우는 더욱 한복을 차려 입었다. 지금도 할머니들은 한복치마를 개량해서 허리에 고무줄을 넣은 통치마를 입고 블라우스를 입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속옷도 겉옷과 마찬가지로 서양화되었다. 전통적인 여성의 속옷은 거의 사라졌으며, 속적삼·속치마·속바지만이 한복의 속옷으로 남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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