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1615
한자 民俗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집필자 강정식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의 민간에서 오랫동안 함께 전승해온 제반 풍속.

[개설]

민속은 민간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살면서 형성하고 전승해 온 제반 습속을 두루 일컫는다. 민간 사람들은 지배층 사람들이 제도화해 놓은 규범적인 것에 생활이 제약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오랫동안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살면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여러 가지 생활을 일정한 방향으로 양식화한다. 민속은 이렇게 양식화한 것을 두루 공유하면서 전승해온 것이다.

민속은 개별적인 습관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민속은 집단, 곧 공동체가 환경, 삶의 주기, 상황의 변화 등에 따라 일정하게 반응하면서 행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사람의 삶은 환경이 다르면 생활 주기도 다르기 마련이며, 이렇게 다른 조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상황에 따라 일정한 경향성을 보이기 마련이다. 따라서 지역과 민족에 따라 민속은 다른 면모를 지니게 된다.

제주도는 화산섬이라는 환경이 사람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라산이 섬의 중심에 있어 지형적인 조건뿐 아니라 기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비교적 바람이 많고 돌이 많은 것도 널리 알려진 바와 같다. 이와 같은 환경은 이 지역 사람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서귀포시의 경우에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세부적으로는 서귀포시 안에서도 동서의 차이가 있다. 서귀포시 지역은 과거 정의현대정현으로 나뉘었던 곳으로, 제주도를 3현 체제로 개편할 때 동서에 각기 현을 두었던 것은 동서의 차이가 고려된 결과였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생업 조건을 비롯한 여러 가지 조건에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역적 특징]

(1) 생업의 동·서 지역 차이

서귀포 지역은 실제로 밭농사 위주의 생업을 유지한 것은 같으나 토질은 동서의 차이가 있었다. 동쪽에는 뜬땅[화산토로 이루어져 척박한 땅]이 많아 조농사를 주로 하고 서쪽에는 된땅이 많아 보리농사를 주로 하였다. 이렇게 양쪽의 사정이 달랐기 때문에 상호교류가 불가피하였다. 일부 마을에서는 논농사를 짓기도 하였으나 호근동, 강정동, 화순리 등 지극히 제한된 곳에 불과하였다. 논농사를 짓지 않으니 볏짚을 구하기 어려웠으며 이에 따라 볏짚을 활용한 민속도 찾아보기 어렵다.

(2) 해녀 물질의 조건

서귀포시에서도 해녀의 물질이 많았으나 그 조건은 좋지 않았다. 서귀포시 지역은 조금만 나아가도 수심이 깊어지는 경우가 많아 그만큼 물질하는 데 어려웠다. 서귀포시 지역이 제주시 지역과 달리 어부가 미륵돌을 건져 올려 신으로 모신 사례가 드문 것도 바다의 조건이 달랐기 때문이다. 한편 과거에는 해산물을 팔아 살림에 보태는 것이 아니라 자급자족하는 수준이어서 매매가 이루어지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가까운 마을에서도 그 명칭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았다.

(3) 집단노동요, 창민요의 발달

서귀포시 일부 마을에서는 그들 나름의 특별한 민요를 전승하기도 한다. 논농사를 하지 않으니 당연히 모심기 노래가 없는 대신 밭농사를 위주로 하는 만큼 밭가는 노래, 밭 밟는 노래, 김매는 노래 등 밭농사 관련 노래가 많다. 이는 제주도 어디에서나 같은 사정이어서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런데 예외적인 사례도 있다. 서귀포시 덕수리에서는 집단노동요인 불미노래, 방앗돌 굴리는 노래 등 특별한 민요가 전승된다. 또한 성읍리에서는 노동요가 아닌 창민요가 발달하였다. 이들 민요가 이처럼 특정한 마을을 중심으로 해서 발달한 사정도 특별하다. 덕수리는 밭농사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쇠붙이 도구를 제작하는 고장이었고, 성읍리정의현의 소재지로 유흥문화가 발달한 곳이었다. 덕수리만으로도 이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수요를 대부분 감당할 수 있었으니 그 여건의 열악함을 알 수 있다. 유흥문화는 현청 소재지에서나 필요한 것이어서 성읍리에서나 창민요가 불릴 정도로 보통 사람들은 여유를 가지고 살기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4) 겹부조와 일부조

서귀포시 지역은 독특한 부조 문화가 있다. 겹부조와 일부조이다. 여성들은 겹부조가 보통이다. 이를 테면 조문을 할 때 여상제마다 부조를 따로 하는 것이다. 일부조는 큰일을 치를 때 직접 몸으로 일을 돕는 것을 말한다. 큰일을 치르게 되면 여러 날에 걸쳐 많은 손님을 대접해야 한다. 이럴 때 마을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마련하고, 물을 길어다 준다. 이 가운데 물을 긷는 일은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지만, 큰일이라도 치르게 되면 많은 물이 필요하므로 동네 사람들이 나서서 길어다 주는 것이다. 이러한 부조 문화는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열악하여 큰일을 치르는 데 힘을 모으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세시풍속]

서귀포 지역에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절기에 따라 명절이 있고 당굿이 있고 크고 작은 무속 의례가 있었다. 때를 맞추어 생업활동이 이루어지는 것도 여느 곳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절기에 따라 작업을 함께 하거나 동시에 시작하는 사례가 많았던 점은 특별하다.

목장에서는 마을에 따라 2월 초 혹은 3월 초에 불을 놓는 이른바 화입(火入)을 하여 진딧물 따위를 방제하였다. 들에서는 11월을 기하여 새[띠] 허채가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바다에서도 절기에 따라 미역, 고지기 따위의 허채가 이루어졌다. 이는 모두 제한된 자원을 적절히 활용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생업에 바빠 기력을 잃을 쯤 되면 건강을 챙기지 않을 수 없었다. 유월 스무날에는 닭을 잡아먹고 원기를 보충하였다. 백중이나 처서에는 폭포나 냇물을 찾아 물맞이를 하였다. 차가운 물로 더위를 식혀 원기를 되찾기 위함이었다. 서귀포시 지역에는 폭포와 계곡이 발달하여 물맞이가 성행할 수 있었다.

[민간신앙]

서귀포시에서는 대체로 당굿의 전승이 미약한 편이다. 비교적 전승이 활발한 영등굿도 제주시 지역에 비하면 전승이 매우 약화된 상태이다. 서부 지역은 이러한 현상이 더욱 뚜렷하다.

한편 서귀포시에서는 여성 중심으로 신앙을 재편해 온 흔적이 발견된다. 여성의 출가에 따라 특정한 당 신앙이 확산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일뤳당, 여드렛당이 바로 그러한 사례이다. 안덕면 일대의 일뤳당은 여성의 혼인과 함께 확산된 양상을 분명히 보여준다. 서귀포시 전역에 두루 분포하고 있는 여드렛당은 여성의 혼인과 함께 확산된 더욱 전형적인 사례이다. 여드렛당 신앙은 근본적으로 조상신과 같은 신 관념을 토대로 한다. 여성을 중심으로 보면 자신의 동네, 집안에서 전승해온 신앙을 끈질기게 유지하려고 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이들 신앙은 개별적인 성격이 강한 것이어서 공동체 신앙인 본향당 신앙의 약화를 초래하기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민속놀이]

서귀포시 지역에서는 집단적인 민속놀이를 찾기 어렵다. 다만 하효동의 원님놀이는 늦은 시기까지 전승해온 것이어서 특별하다. 원님놀이는 사또놀이, 상여놀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놀이다. 운상을 하는 사람들이 그 날의 물주를 몰래 정해두고 장례가 끝나면 달려들어 그 사람을 상여에 태우고 마치 원님을 모시듯이 마을까지 온 뒤에 그 보상으로 술값을 받아내어 한바탕 즐기는 것이다.

반면 소집단 혹은 개인의 놀이는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다양하였다. 대보름의 연날리기, 정초의 콩윷놀이와 같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대보름 연날리기는 연줄을 끊어 연을 멀리 날려 보냄으로써 액운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다른 지역과 같은 사례이다. 콩윷놀이는 일정한 수효의 콩을 걸고 하는 윷놀이를 말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윷놀이와 다른 점은 무엇을 따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승패로 그 해의 운수를 점치기 위함이어서, 이긴 사람은 오히려 동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였다는 점이다. 이들 놀이는 속신과 관련된 것이지만 단순히 즐기기 위한 놀이도 많았다. 씨름, 쿨각시, 공기, 곱을락, 팽이치기, 방칠락, 꼰 따위가 대표적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