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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놀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1787
한자 花煎-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집필자 양영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놀이 장소 화전놀이 장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1리
성격 민속놀이
노는 시기 봄철 삼월 삼짇날 전후
관련 의례 행사 시(詩), 서(書) 겨루기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하던 진달래 꽃잎을 지져 먹으면서 정담을 나누는 민속놀이.

[개설]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전병을 만들고 진달래꽃잎 따위를 떡 안팎으로 붙여 참기름에 지져 만든 것을 화전이라고 한다. 봄철에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화전을 지져서 먹으며 정담을 나누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하루를 즐기는 것을 화전놀이라고 한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진달래 꽃을 뜯어다가 찹쌀가루와 반죽하여 둥근 떡을 만들고 다시 이것을 참기름에 지진 것을 화전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고, 『동국세시기』에는 “삼월 삼일 삼짇날은 진달래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빚어서 둥근 떡을 만드는데 이것을 화전이라 한다. 또 진달래꽃을 녹두 가루에 반죽하여 만들기도 하고, 혹은 녹두로 국수를 만들기도 한다. 혹은 녹두가루에 붉은색 물을 들여 그것을 꿀물에 띄운 것을 수면이라고 하며 이것들은 시절음식으로 제상에도 오른다.”는 기록이 있다.

화전놀이는 전국적으로 있어 왔던 민속놀이로, 제주도에서도 음력 삼월삼짇날이 되면 관속과 하인, 관기, 마을사람들이 같이 들로 나가 큰 잔치를 베풀면서 놀았다고 하는데,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의 정소암 화전놀이는 특히 유명하다.

[연원]

『삼국유사』에 “김씨의 종가 대대 부인이 죽어서 청연 웃골에 장사지내고 그 곳을 재매골이라 하였으며 매년 봄철이면 김씨 문중 남녀가 이 골짜기 남쪽에 있는 시냇가에서 놀이판을 차리게 되니 때는 마침 백화가 만발하고 송아꽃이 누렇게 달린다.”는 기록이 있어 신라 때부터 있었던 풍습으로 추정된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솥단지를 비롯하여 화전에 필요한 각종 요리 도구 및 시서(詩書) 겨루기에 필요한 물품 등을 들고 경치 좋은 냇가를 찾아 화전을 부치면서 놀았다. 정소암은 화전놀이 장소로 특히 유명한데, 곳곳에 너럭바위가 있어 놀이와 시문 겨루기, 춤추기 등에 적당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놀이 방법]

화전놀이는 본디 한 가문 친척 남녀가 모여 노는 것이었으나 차츰 동네의 친한 사람들이 모여 노는 놀이로 변모하였다. 남자들은 ‘탁족(濯足)’이라 하여 산수 좋은 곳을 찾아 찬물에 발을 씻고 즐겼다. 이때 화전을 부치고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먹고 놀면서 시도 지어 읊고 노래도 불러 유쾌한 하루를 보냈다.

여자들도 냇물에 손발을 씻는 데서 모임이 시작되는데 특히, 이날은 자신들의 의복과 음식 솜씨를 보이는 좋은 기회였다. 각기 분담한 음식 장만에 특별한 관심을 두어서 정결하고 볼품 있고 맛이 있어 남의 칭찬을 받도록 궁리를 다하게 된다. 또한 입고 나설 의복에도 아래 위 구색이 맞는가, 품에 맞는가 등 이모저모로 생각하게 되고 여러 사람 앞에 나서서 말은 어떻게 해야 하고, 앉음새는 어떻게 하며, 주고받는 범절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음식을 먹을 때 입모양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 예의 작법에 대해서도 각별히 조심하게 된다.

이날의 여흥으로 꽃쌈도 하고 꽃단치기도 하여 끼리끼리 즐기는 것이 예삿일이었다. 젊은 신부나 숫진 처녀들이 화전들 두고 각기 가사를 지어서 좌상 노인의 높은 평을 받아 장원을 내어 뉘 집 딸, 뉘 집 며느리가 금년에는 장원을 했다고 온 동네가 칭찬하는 일도 있었고, 노소가 참석하여 한 사람이 한 구절씩 불러서 지혜를 모아 장편 가사를 짓기도 했다.

제주에서는 3월 3일이 되면 메밀가루, 채소[무]와 솥뚜껑을 가지고 산 기슭 냇가에 가서 서너명씩 짝을 지어 빙떡을 지져 먹으며 놀았다고 한다. 성읍에서는 정의현감이 성안 관속과 육방하인·관기를 성읍 성북 영주산 서쪽에 있는 정소암이라는 놀기 좋은 냇가에 가서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이 잔치를 ‘정소암 화전놀이’라 했다. 이때 노는 가운데 기생들은 「신목사타령」·「용천검」·「사랑가」 등의 민요를 부르고, 사령들은 이에 맞춰 칼춤을 추었다. 칼을 들고 추는 이 칼춤은 비명에 죽은 죄인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한다. 향교의 선비들은 글을 지어 풍월을 다투었으며, 이때에 장원을 한 사람에게는 황봉(黃封)이라 해서 술을 상품으로 주었다고 한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정의현 안의 각지에서 모여든 양반들도 참석하는데 지방의 양반들은 원님에게 지방의 어려운 일을 진정하기도 하였고, 이 날만은 백성이 관리에 대해서 얼마쯤 불경한 태도를 보여도 벌주지 않았다고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오랜 유래를 가진 화전놀이는 우리 산천이 아름답고 우리 민족이 자연을 즐길 줄 아는 고상한 습성을 지녔음을 말해준다. 화전놀이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우의를 다지고,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존중하는 미풍양속의 사교장이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특히, 경치 좋은 질펀한 냇가 같은 곳을 찾아 즐기는 3월 삼짇날 화전놀이는 “산천초목 속잎이 난디 구경가기가 반갑도다” 라는 민요를 불러가면서 봄을 만끽하는, 여성들에게 가장 즐거운 야유회 날이었다.

[현황]

옛날에는 솥단지를 가지고 가서 밥을 해먹고 떡도 해먹으면서 하루 종일 춤추면서 놀았다고 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소풍의 형태로 화전놀이의 잔영이 남아 있었으나 요즘은 이처럼 여유 있는 야유회를 찾아보기 어렵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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