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4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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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勞動組合 |
영어의미역 | Shoemaking Industry Labor Uni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연정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었던 노동 조합 단체.
[개설]
당시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고, 산업구조가 급변함에 따라, 진주노동공제회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을 추진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있었던 양화직공노동조합은 1923년 4월 1일에 만들어진 진주노동공제회의 산하기구였다.
[설립목적]
노동자들의 단결을 통한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하였다.
[설립경위]
1923년 4월 1일에 노동공제회관에 모여 발기인 대회를 열었다. 당시 전무이사는 강덕문이며, 이사는 이덕중, 백주호, 이영우, 유형식이었다. 점주는 김도윤, 감사는 우기태, 김용도였다. 같은 해 5월 18일에는 임시총회를 열고 조합장을 김하진으로 하였다. 부조합장은 김도윤, 회계는 황점득, 평의원장은 강덕문, 평의원은 김병욱, 정성욱, 안현석, 우기태, 간사는 오제민, 천용수가 맡았다.
[변천]
1925년 진주노동공제회 내에서는 농민운동 단체와 노동운동 단체가 양분되는 양상을 보였는데, 노동연맹은 각 세포단체인 진주토목공조합, 양화직공노동조합, 인쇄직공조합, 운수노동조합 등 4개 단체를 망라한 새로운 ‘진주노동연맹’으로 조직되었다.
[주요사업과 업무]
노동조건 개선을 목적으로 일본인 공장주에게 항의하는 등의 일을 추진하였다.
[활동사항]
노동자들의 의식을 각성시키기 위해 공장 내에서 삐라(선전물)를 돌리는 등의 일을 했다. 또한 장시간의 노동과 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하여 노동자들을 결집, 파업을 단행하기도 하였다.
[조직]
전무이사, 이사, 점주, 감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의의와 평가]
양화직공노동조합은 진주노동공제회 산하의 여러 노동조합과 더불어 지역 내 노동자들의 생활환경 개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성격을 가진 사회운동 단체와 관계를 맺어 진주지역의 항일운동에도 큰 몫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