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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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座 |
영어의미역 | Jinju Theater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동 |
집필자 | 편세영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동에 있었던 형평사 창립 장소.
[개설]
구한말 법제적인 신분평등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불평등은 지속되었다. 1923년 5월 13일 형평사 창립축하식을 시작으로 천대받는 백정들이 신분해방운동인 형평운동을 공공장소에서 벌였던 기록적인 사건이 되었다. 창립축하식에는 수백 명의 백정들이 모여들었고 이를 주도한 양반자손 강상호가 개회사를 시작함으로써 축하식의 막은 올랐다. 국내외적인 관심을 집중시켰던 역사적인 행사로 진주좌의 이름은 생긴 지 1년이 되지도 않았지만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1935년 친일단체로 변질되어 해체되기 이전까지 13년 동안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을 벌였던 장소였다.
[설립목적]
도청소재지인 진주에 마땅한 공연장소가 없었기 때문에 연극, 영화상연, 공연, 강연회 및 각종 사회단체의 집회장소로 이용될 곳이 필요하였다.
[변천]
1922년 11월 11일 진주좌 낙성식에 많은 관민, 유지들이 초대되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1923년 5월 13일 형평사 창립축하식을 비롯, 영화상영, 공연, 집회장소로의 역할을 하다가 1930년대 중반 한국 영화업자 서종숙이 진주극장을 새로 건립하면서 철거되었다.
[주요사업과 업무]
그 밖에도 이곳에서 그 당시 활동사진이라 불리던 무성영화가 변사의 설명을 곁들여 상영되었다. 우리나라 초창기 영화를 개척한 무성영화의 거장 춘사 나운규의 영화「잘 있거라」(1927),「옥녀」(1928)도 이곳에서 상영되었다. 그 외에도 1924년 8월 23일 진주소년소녀 가극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독창을 비롯해 동화극과 가극 등이 공연되었는데「무궁화」라는 가극이 무대에 올려졌을 때 객석은 환희의 도가니가 되었다. 이러한 공연 장소 외에도 형평사운동 및 경남도청 이전 반대군중집회, 기성동맹대회 등 진주 사회운동단체의 집회장소로도 많이 이용되었다. 1924년 12월 경남도청의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한국인 및 일본인들의 대규모 합동군중집회가 진주좌에서 거행되었고, 기성동맹운동이란 1930년 1월 13일 진주의 모든 사회단체들이 일본인이 경영하는 진주전기회사의 전력사기와 부당요금징수에 대한 문제를 성토하여 전기요금 인하운동을 주도하였던 운동이다.
[의의와 평가]
수백 년 이상 철폐되지 못했던 신분차별의 악습을 없애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형평운동이 일어났다는 점, 일제 치하에서도 우리 영화 및 예술을 공연하고 각종 사회운동을 펼쳤다는 점 등에서 단순히 이런 기회를 제공하였던 장소라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 사회와 역사가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