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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충의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375
한자 晋州忠毅祠
영어음역 Chunguisa Shrin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백태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3년 7월 20일연표보기 - 진주 충의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1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진주 충의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성격 사우
양식 목조기와|맞배지붕
관련인물 정문부(鄭文孚)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2칸
층수 1층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 117[용암길 59-2]지도보기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 117[용암길 59-2]에 있는 사우.

[건립경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충의공(忠毅公) 정문부(鄭文孚)를 제향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본래 귀곡동에 있었는데, 1995년 남강댐 공사로 인하여 현재의 장소로 이건하였다.

정문부는 호가 농포(農圃)로, 함경도 경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길주에서 왜적을 물리치고 그 전공으로 길주목사가 되었다. 왜란이 끝난 후 말년에 이괄(李适)의 난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다가 옥중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가솔에게 “다시는 벼슬을 하지 말고, 진주에 터전을 잡고 살라”고 유언하였다 한다.

정문부가 후손들의 삶의 터전으로 진주를 택한 것은 그가 한때 창원부사로 있으면서 자주 진주를 찾아와 그 빼어난 자연경관과 후덕한 인심에 끌렸기 때문이었다.

[형태]

사당은 삼문을 갖춘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안에는 의복 1점, 칼 1점, 교지와 서적 등이 보관되어 있으며, 가호서원(佳湖書院) 등 부속건물이 있다. 현재 해주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09.16 [제향] 삭제 [제향] 부분의 내용이 창렬사 내용과 동일하여 삭제 충의사는 정문부를 제향하고 있다.
이용자 의견
류** 충의사는 정문부를 제향하기 위한 사당인데 제향인물은 진주 창렬사에 배향된 분들로 되어있으니 충의사 배향인물을 다시 검토하여 수정하시기 바랍니다.
  • 답변
  • 디지털진주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삭제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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