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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선생 과청곡사시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401
한자 退溪先生過靑谷寺詩碑
영어음역 Toegyeseonsaeng Gwacheonggoksasibi
영어의미역 Stone Monument of Master Toegye Visiting Cheonggoksa Templ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용아리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병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기념비
건립시기/연도 1829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이황|이희영
비신재질 석재
비문찬자 이황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용아리
소유자 경상남도 진주시

[정의]

조선 중기의 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청곡사를 다녀가면서 지은 시문을 새긴 비.

[건립경위]

1533년 이황이 8도 명소를 두루 살피다가 금산 소재 청곡사에 휴양차 다녀가면서 시를 남겼다. 1829년 경에 종사랑 돈녕원 도계 이희영(李禧榮)이 금호지의 동쪽 주변에 돌을 쌓아서 축대(금호대)를 축조하고, 여기에 시비를 세워 기념하였다.

[위치]

1869년 이희영이 죽은 후에 그 아들 이수용이 ‘도계 이공 금호대 유적비’를 만들어 퇴계선생 시비와 나란히 세워 관리하여왔다. 이후 금호대 축대는 파손되었고, 퇴계선생 시비는 서쪽 둑에 이전하였다가 1907년 현재 위치로 이전하여 관리하고 있다.

[형태]

비좌 위에 비신만 있는 형태이다.

[금석문]

琴山途上晩逢雨 (금산도상만봉우) 금산길 지나다가 늦은 시간에 비를 만나니

靑谷寺前寒瀉泉 (청곡사전한사천) 청곡사 앞에 찬 샘물이 넘쳐흐르네.

渭是雪泥鴻爪處 (위시설니홍조처) 강물에 인생의 온갖 자취가 사라지듯

存亡離合一潛然 (존망이합일잠연) 존망이합이 모두 하나뿐이네

[현황]

비바람에 비신이 풍화되었고, 이끼가 많이 끼어 글자를 식별하기 어렵다. 도계이공 금호대 유적비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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