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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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王逢規 |
영어음역 | Wang Bonggy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백태남 |
[정의]
통일신라시대의 호족.
[활동사항]
처음 강양군(江陽郡) 의상현(宜桑縣)[泉州縣이라고도 하였으며 지금의 宜寧] 일대를 근거지로 하여 세력을 떨쳤으며, 뒤에 강주(康州)[지금의 경상남도 진주] 지역도 석권하였다. 924년(경명왕 8) 천주절도사(泉州節度使)를 자칭하고 중국 후당(後唐)에 사신을 보냈다.
927년에는 후당이 권지강주사(權知康州事) 왕봉규를 회화장군(懷化將軍)으로 봉하자, 사신을 보내어 답례하는 등 중국의 왕조와 교섭을 활발히 하였다. 이후 왕봉규의 행적은 알 수 없는데, 진주지역이 곧 후백제 견훤의 지배하에 들어간 사실로 미루어 그의 세력도 견훤에 의해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왕봉규는 신라 말기에 지방세력으로서 대외적 교섭을 독자적으로 가진 특수한 지위를 누렸다. 그리하여 문물의 교류를 통한 이득의 추구라는 점과 함께 중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는 외교적 성과를 이용하여 자신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였다. 또한, 당시 진주지역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어 지방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진양지(晋陽誌)』 권3「명환조(名宦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