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10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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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씨(鄭氏) : 승지(承旨) 조지서(趙之瑞)의 아내니 포은(圃隱) 선생 정몽주(鄭夢周)의 증손이다. 연산군(燕山君) 을축년에 조지서가 해를 만나 죽고 재물과 집이 모두 몰수되고 못을 파게 되었다. 정씨는 그 곁에 여막을 짓고 남편의 입던 옷을 걸어놓고 제사를 올리면서 3년을 마쳤다. 중종(中宗) 2년에 정려(旌閭)되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와 있다.
○ 안씨(安氏) : 절부(節婦). 선무랑(宣武郞) 남정소(南廷召)의 아내니 정문(旌門)은 진성리(晉城里)에 있다. 원당촌(元堂村)에 살았다.
○ 김씨(金氏) : 효부(孝婦).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딸이요 생원 이핵(李翮)의 아내니 정문(旌門)은 가좌촌(加佐村)에 있다
○ 강씨(姜氏) : 절부(節婦). 효자 강응태(姜應台)의 손자요 사직(司直) 강열(姜洌)의 딸이며 생원 하국보(河國寶)의 아내다. 평소부터 지어미의 도리를 극진히 갖추었다. 선조(宣祖) 때 임진왜란 때 절개를 지키다가 죽었다. 지금 임금(인조)의 조정에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단지동(丹池洞)에 살았다.
○ 하씨(河氏) : 절부(節婦). 하씨는 정희립(鄭希立)의 아내다. 정유년(선조 30년, 1597)의 왜란 때 벼랑에 떨어져 죽으니 일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旌閭)되었다. 가귀곡리(佳貴谷里)에 살았다.
○ 정씨(鄭氏) : 정희성(鄭希聖)의 아내요 생원 정변소(鄭卞韶)의 딸이다. 계사년(선조 26년, 1593)의 난에 정절을 온전히 하다가 죽으니 일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旌閭)되었다. 주내(州內)에 살았다.
○ 이씨(李氏) : 절부(節婦). 유학(幼學) 정훈(鄭薰)의 아내다. 정훈이 적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또 몸을 더럽히려고 하자 돌을 던지고 분을 내어 꾸짖다가 죽었다. 선조(宣祖) 때에 그 일이 알려져 정려(旌閭)되었다. 설매곡(雪梅谷)에 살았다.
○ 강씨(姜氏) : 처자(處子). 유학(幼學) 강순(姜淳)의 딸이다. 계사년(선조 26년, 1593)의 난에 절개를 지키다가 죽으니 선조(宣祖) 때에 일이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금산리(琴山里)에 살았다.
○ 이씨(李氏) : 절부(節婦). 첨지(僉知) 정계원(鄭繼元)의 아내다. 만력(萬曆) 정유년(선조 30년, 1597)에 절개를 지키다가 죽임을 당하니 선조(宣祖) 때에 일이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그가 피난했을 때에 남편에게 말하기를 “적을 만나면 저는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라 했으니 죽음으로 절개를 지킬 뜻을 평소에 정했던 것이다. 정촌(鼎村)에 살았다.
○ 한씨(韓氏) : 처자(處子). 선비 한응(韓譍)의 딸이다. 정숙한 지조가 있어 평소에 말하기를 “여자로서 불행히 변을 만난다면 죽을 따름”이라고 하더니 임진년에 마침내 정절을 지키다가 죽었다. 선조(宣祖) 때에 일이 알려져 정려(旌閭)되었다. 정수리(丁樹里)에 살았다.
○ 이씨(李氏) : 절부(節婦). 수문장(守門將) 정천계(鄭天啓)의 아내다. 만력(萬曆) 임진년(선조 25년, 1592)에 적에게 해(害)를 당했더니 그의 딸이 곁에 있다가 스스로 못에 빠져 죽었다. 그때 나이 16세였는데 왜적이 건져서 시신의 곁에 두고 갔다. 선조(宣祖) 때에 일이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송곡리(松谷里)에 살았다.
○ 유씨(柳氏) : 절부(節婦). 정대순(鄭大淳)의 아내다. 만력(萬曆) 정유년(선조 30년, 1597)에 절개를 지키다가 죽으니 선조(宣祖) 때에 일이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동곡(桐谷)에 살았다.
○ 정씨(鄭氏) : 절부(節婦). 김대용(金大鎔)의 아내다. 만력(萬曆) 정유년(선조 30년, 1597)에 정절을 온전히 하고 죽으니 선조(宣祖) 때에 일이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백곡(柏谷)에 살았다.
○ 김소사(金召史) : 허진(許眞)의 아내다. 그의 아버지가 적에게 해를 당하니 김소사도 아버지와 같이 죽었다. 선조(宣祖) 때에 일이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영선리(永善里)에 살았다.
○ 최씨(崔氏) : 절부(節婦). 승사랑(承仕郞) 정승업(鄭承業)의 아내다. 선조(宣祖)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항상 스스로 칼을 차고 있으면서 ‘만약 불행하면 죽을 것’이라고 스스로 맹세하더니 마침내 죽음으로 절개를 지켰다. 지금 임금(인조)의 조정에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상사리(上寺里)에 살았다.
○ 김씨(金氏) : 절부(節婦). 강세진(姜世軫)의 아내다. 만력(萬曆)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절개를 지키다가 죽으니 일이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청원리(淸源里)에 살았다.
○ 정씨(鄭氏) : 열부(烈婦). 유학(幼學) 강검(姜儉)의 아내다.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절개를 지키다가 죽으니 지금의 임금(인조)에게 일이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가좌촌(加佐村)에 살았다.
○ 최씨(崔氏) : 절부(節婦). 유학(幼學) 윤여훈(尹汝訓)의 아내다.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절개를 지키다가 죽으니 지금의 임금(인조)에게 일이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가좌촌(加佐村)에 살았다.
○ 강씨(姜氏) : 절부(節婦). 첨사(僉使) 김진(金震)의 아내다.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정절을 온전히 하다가 죽으니 지금의 임금(인조)에게 일이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가좌촌(加佐村)에 살았다.
○ 황씨(黃氏) : 절부(節婦).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이번(李蕃)의 아내다.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절개를 온전히 하고서 죽으니 지금의 임금(인조)에게 일이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운곡리(雲谷里)에 살았다.
○ 하씨(河氏) : 절부(節婦). 강순(姜洵)의 아내다.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절개를 지키다가 죽으니 일이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 변소사(卞召史) : 보인(保人) 채학(蔡鶴)의 아내다. 정유년(선조 30년, 1597)에 절개를 온전히 하다가 죽으니 지금의 임금(인조)에게 일이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영선리(永善里)에 살았다.
○ 성씨(成氏) : 절부(節婦). 효자 이경훈(李敬訓) 아내다.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왜적을 만나 물에 몸을 던져 죽으니 지금의 임금(인조)에게 일이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 잔매(盞梅) : 양녀(良女). 정병(正兵) 김응봉(金應鳳)의 아내다.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절개를 지키다가 죽으니 일이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 김소사(金召史) : 수군(水軍) 장억수(張億守)의 아내다. 임진년에 절개를 지키다가 죽으니 일이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 유씨(柳氏) : 처자(處子). 부장(部將) 유홍(柳洪)의 딸이다.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절개를 지키다가 죽으니 일이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원당(元堂)에 살았다.
○ 강씨(姜氏) : 효열부(孝烈婦). 유학(幼學) 정삼성(鄭三省)의 아내다. 임진년(선조 25년, 1592)에 모녀가 함께 절개를 지키다가 죽었다. 영이곡(永耳谷)에 살았다.
이 아래는 모두 정려되지 못했다.
○ 이씨(李氏) : 효의부(孝義婦). 전의(全義) 현감(縣監) 이공보(李公輔)의 손녀요 증승지(贈承旨) 이득분(李得賁)의 딸이며 봉사(奉事) 이유성(李惟誠)의 아내다. 효도하고 순종하는 정성이 하늘로부터 타고났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섬김에 좋은 소문이 이미 드러났다. 시집을 가서는 지어미의 도리를 극진히 지켜 가정의 법도가 엄숙하고 씩씩하며 효도하고 공경하는 행실이 저절로 옛 법도에 맞으니 시부모가 매양 그 현숙함을 칭찬했다. 남편의 상을 만나서는 함께 갈 뜻을 결정하고 손수 머리를 자르고 빈소에서 16일 동안 엎드려서 한 낱의 쌀알도 목으로 넘기지 않아 거의 운명할 지경에 이르렀다. 온 집안의 어른들과 형제들이 타이르고 꾸짖으며 붙들고 간호해 다행히 소생했다. 이에 아침저녁으로 제상에 음식 드리는 것을 반드시 몸소 갖추어 올렸다. 병이 있어도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 또 밤낮으로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잠시도 상복을 벗지 않으며 이미 3년을 지낸 뒤에도 3년의 상복을 더 입었다. 초문(草門)에 살았다.
○ 강씨(姜氏) : 처자(處子). 강몽정(姜夢禎)의 딸이다.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부모를 따라 산 속에서 화를 피하다가 부모와 형제가 함께 적의 흉악한 몽둥이에 죽으니 강씨는 불 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불에 타서 죽었다. 당시의 나이가 17세였다. 사죽(沙竹)에 살았다.
○ 하씨(河氏) : 효부(孝婦). 하득곤(河得鯤)의 딸이다. 젊었을 적에 아버지가 병들자 손가락을 끊어 효험을 보았다. 운곡(雲谷)에 살았다.
○ 성소사(成召史) : 현감(縣監) 정희건(鄭希騫)의 첩이다. 정희건이 벼슬을 따라 경성으로 가서 글을 보내어 인연을 끊었다. 문중의 친족들이 그의 나이 젊음을 가련하게 여겨 다른 사람을 따르기를 권했으나 죽기를 맹세하고 달리하지 않다가 몸을 마쳤다.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 봉학(鳳鶴) : 사비(寺婢). 황수장(黃壽長)의 아내더니 나이 20세에 그 남편을 잃었는데 상을 벗지 아니하고 슬퍼하여 몸이 여위게 되었다. 아버지가 그의 나이 젊음을 불쌍히 여겨 그 뜻을 뺏고자 했으나 죽음으로써 스스로 맹세하고 마침내 다른 데로 시집가지 않았다. 청원리(淸源里)에 살았다.
○ 최소사(崔召史) : 수군(水軍) 최귀석(崔貴石)의 딸이다. 나이 20여 세가 되도록 시집을 가지 못했는데 정유년(선조 30년, 1597)에 우산(牛山)에서 화를 피하다가 왜적이 와서 핍박하고자 하므로 소리를 질러 크게 꾸짖고 절개를 온전히 하고서 죽었다. 방방리(芳房里)에 살았다.
○ 정씨(鄭氏) : 유학(幼學) 윤탁(尹鐸)의 아내다. 윤탁이 병세가 침중하여 거의 죽게 되었는데 손가락을 끊어 피를 내어 구했다. 병이 나아서 한집에서 함께 늙었다. 금산리(琴山里)에 살았다.
○ 황씨(黃氏) : 정응발(鄭應發)의 아내다. 정유년(선조 30년, 1597)에 정응발이 왜적을 만나서 서로 붙들고 구르면서 싸우다가 힘이 다해 거의 죽게 되었다 이때 황씨가 풀숲 속에서 나와서 돌을 안고 돌진하여 적의 머리를 대질러 부수었으므로 정응발이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금산리(琴山里)에 살았다.
○ 하소사(河召史) : 서얼(庶孼) 이유해(李惟諧)의 아내다.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집현산(集賢山) 속에서 화를 피하더니 왜병들이 협박하므로 아홉 살 된 아이를 안고 물에 빠져 죽자 그 누이동생도 19세의 나이로 함께 죽었다. 종화리(宗化里)에 살았다.
○ 정소사(鄭召史) : 김명선(金鳴善)의 아내다.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난병에게 결박이 되어 소의 등에 실려 가다가 매우 험한 곳에 이르러 몸을 기울이니 거꾸로 향하여 결박된 것이 끊어졌으나 떨어져서 죽었다. 영신대(永申大)에 살았다.
○ 강소사(姜召史) : 보인(保人) 김축(金軸)의 아내다. 남편의 병이 침중하여 기절했는데 손가락을 끊어 피를 받아 구하여 죽지 않고 해로하게 되었다. 자매곡(自梅谷)에 살았다.
○ 정씨(鄭氏) : 진사 강여평(姜汝平)의 아내다. 진사가 병이 들어 죽은 뒤에 3년 동안 죽을 마시고 종신도록 하얀 옷을 입었다. 평거리(平居里)에 살았다.
○ 막지(莫之) : 사비(寺婢). 막지가 산골짜기 사이에서 밭을 매더니 어떤 중이 더럽히고자 하므로 죽음으로 항거했다. 낫을 이끌어 목에 걸고 겁을 주었으나 꾸짖고 따르지 않다가 마침내 죽임을 당했다. 백곡리(柏谷里)에 살았다.
○ 장씨(張氏) : 절부(節婦). 유학(幼學) 허의남(許義男)의 아내다. 정유년(선조 30년, 1597)에 절개를 온전히 하고 죽었다. 북방(北坊)에 살았다.
○ 춘환(春環) : 사비(私婢). 사노(私奴) 개동(介同)의 아내다. 그 남편이 죽은 뒤에 어떤 사람이 뜻을 뺏고자 했으나 정조를 더욱 굳게 했다. 당시 60세 넘게 사죽(沙竹)에 살았다.
○ 도덕(道德) : 사비(私婢). 주부(主簿) 강대익(姜大益)의 첩이다. 나이 15세에 강대익을 섬기더니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성이 함락되어 강대익이 죽자 몸소 유해를 거두어 묻고 정절을 더욱 독실히 했다. 70세 넘게 백곡리(柏谷里)에 살았다.
○ 후춘(厚春) : 사비(私婢). 정계원(鄭繼元)의 첩이다. 어머니를 섬김에 정성이 지극했다. 난리로 도망하여 몸을 숨겨야 할 처지인데도 그 어머니의 병이 위중하자 있는 힘을 다해 보호했다. 죽음에 이르러서는 더욱 오래도록 사모하여 맛있는 음식을 얻으면 문득 생각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의 형과 함께 피난하여 그 첩이 전염병에 걸리니 등에 업고 밤에 30리를 걸어가서 마침내 삶을 온전히 하게 되었다. 그 천성의 착함이 이와 같았다. 정촌(晶村)에 살았다.
○ 강씨(姜氏) : 효부(孝婦). 부장(部將) 강추국(姜秋菊)의 딸이다. 아버지가 병들자 손가락을 끊어서 효험을 얻었다 금산리(琴山里)에 살았다.
○ 강씨(姜氏) : 효부(孝婦). 선비 하약(河瀹)의 아내다. 일찍 남편을 여의더니 슬피 울고 평생토록 머리에 기름을 바르지 않았다. 집안이 가난해 품팔이를 했지만 제사에는 음식을 반드시 풍성하게 했다. 시어머니를 정성으로 섬기다가 세상을 떠나자 염습과 의복을 모두 지극히 풍성하고 두텁게 했는데 스스로 짓지 않은 것이 없었다. 신당리(新塘里)에 살았다.
○ 제소사(諸召史) : 소촌역리(召村驛吏) 강용(姜龍)의 아내다. 일찍 남편의 상을 당했더니 장사에 예를 다하고 옷을 모두 고쳐서 상복으로 만들었으며 아침저녁으로 제물을 올리고 3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다. 남편 얘기가 나오면 슬피 울고 흐느끼더니 당시 70여 세 넘게 소촌리(召村里)에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