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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612
한자 金光宗永世不忘碑
이칭/별칭 김광종 불망비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백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38년 5월 5일연표보기 - 김광종 영세불망비 건립
현 소재지 김광종 영세불망비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화순로 87번길 맞은편 시멘트포장 소로 입구에서 약 30m 지점지도보기
성격 금석문
관련 인물 김광종|지혁중|강사종|김용선|김양순|김세윤|김두병|양시권|송운옥|김창진
재질 조면암
크기(높이) 72㎝
너비 44㎝[윗너비], 39㎝[아랫너비]
두께 16.5㎝[하단부], 16㎝[상단부]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에 위치한 제주 출신의 김광종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김광종(金光宗)은 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출신으로, 조선 시대 1832년(순조 32)에서 1841년(헌종 7)에 이르는 만 10년 동안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안덕계곡의 황개천의 물을 끌어 논밭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 부었다. 이를 위해 인부들을 고용하여 댐을 쌓고 계곡 벼랑의 허리 암반을 쪼아내고 산을 깎아내는 대대적인 토목공사 수행하였다. 그 결과 총연장 670m의 수로를 만들어 현 남제주화력발전소가 들어선 일대를 포함하는 5만 여평의 땅을 논으로 개척하였다.

[건립 경위]

김광종 영세불망비는 1938년 5월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화순답회(和順沓會)와 그의 증손 김용선·김양순(金良順)·김세윤(金世閏)과 현손 김두병(金斗柄)이 김광종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위치]

서귀포시에서 일주도로를 따라 화순리 입구에 들어서기 직전 좌측 화력발전소로 난 화순항길을 따라 약 200m 정도 내려가면 길 건너편에 시멘트포장의 첫 소로(小路)가 나온다. 소로를 따라 20m 정도 들어가면 쓰레기투기금지 경고문이 세워져 있고 그 사이 숲길로 약 10m 내려가면 2기의 비가 세워져 있다.

[형태]

크기는 높이 72㎝, 너비 39~44㎝, 두께 16~16.5㎝이며 재질은 제주산 조면암이다.

[금석문]

김광종 영세불망비는 지혁중(池赫重)이 짓고 강사종(姜師宗)이 글씨를 썼다. 원문은 세로로 해서체로 음각되어 있다. 원문의 ( )안의 글자는 파손되어 있어 추측하여 써 넣었다.

1. 전면

(김)해 김광종영세불망비((金)海 金光宗永世不忘碑)

천산인수(穿山引水) 한서개시(漢西開始) 다비기재(多費己財) 이유후세(以裕後世)

식아향칭(食我香稻) 송공덕기(頼公德基) 공의소부(功擬召父) 세기전조(歲祈田祖)

산을 뚫고 물을 끌어 한서(漢西)[한라산 서쪽] 지방에 논을 개척하였으며 이에 필요한 많은 비용을 오직 자신의 재산을 바쳐 후세 사람들을 유족하게 하였다. 이제 우리도 향그러운 쌀밥을 먹고 있으니 이게 모두 김광종 공(公)의 덕을 입은 것이다. 그 공로가 소부[召父:중국 한(漢)나라의 태수(太守] 소신신(召信臣)]의 선정(善政)과 비길 만하므로 이에 전조(田祖)로 모셔 해마다 기도드린다.

2. 후면

주저지리(住楮旨里)                        저지리에 거주하는

후증손용선양순세윤(后曾孫龍仙良順世閏)    후손 증손 용선 양순 세윤

현손두병(玄孫斗柄)                        현손 두병

(소)화 십삼년무인5월 5일 화순답회 건설((昭)和十三年戊寅五月五日和順沓會建設)

회수(會首) 양시권(梁時權)

발기(發起) 송운옥(宋雲玉)

    지(誌) 강사종(姜師宗)

    찬(贊) 지혁중(池赫重)

[현황]

전면 상단에 약간의 손상이 있기는 하지만 보존상태가 대체로 양호하고 마모도 심하지 않아 육안으로도 판독이 가능하다. 바로 인접한 둔덕에 1968년 4월 김광종의 6대손 김창진(金昌珍)과 화순리 화순답회(和順沓會) 회장이 공동으로 세운 또 다른 영세불망비인 ‘통정대부 김공영세불망비(通政大夫 金公永世不忘碑)’가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제주도는 본토와 달리 비가 오면 빗물이 모두 땅으로 스며들어 내[川]는 있지만 건천(乾川)이 대부분이다. 토지 또한 척박한 화산토로 되어 있어 습기를 오래 머금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논농사는 극히 제한된 지역에서 천수답에 의존하여 부분적으로 이루어져왔다. 김광종은 논밭이 드문 제주에서 안덕계곡의 풍부한 수량을 이용하여 수로를 만들고 화순리 일대를 광활한 논밭으로 개척한 농업의 선구자라 하겠다. 김광종 영세불망비를 통해 자연의 고난을 극복하던 제주 선인의 지혜와 끈질긴 인내와 생활력을 느낄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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