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출신으로 광주학생운동 때에 활동을 한 항일 운동가. 1929년 11월 3일 광주역 앞에서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과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교 학생들 사이에 충돌이 있자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과 전남 공립사범학교 학생 및 광주 공립농업학교 학생들이 항일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 행진을 전개하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다. 강문범(姜文範)은 제주 서귀포시 중문...
일제 강점기 서귀포에서 독서회 활동을 한 항일 운동가. 본관은 원주, 1916년 서귀면 법환리 388번지에서 변용화의 아들로 태어났다. 변성현(邊聖現)은 1931년 3월 서귀공립보통학교 6학년을 졸업하고 법환리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1932년 1월부터는 홍순성·윤태석·강봉주 등과 모임을 가지면서 사회 과학 서적을 탐독하였다. 1934년부터 야학을 실시하면서 지역...
1934년부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송순혁 외 3명이 서귀리 독서회를 조직하여 계몽활동을 벌이다 검거된 사건. 1920년대 제주에서의 청년운동은 일제의 청년동맹에 대한 감시와 탄압으로 말미암아, 점차 지하운동으로 그 성격이 바뀌어 갔고, 1920년 말부터 1930년대 초에 이르면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하는 해방운동이 가장 왕성하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제주의 경우, 일본 특히 오사...
일제 강점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달오(宋達五)는 1910년 서귀포시 서귀동 454번지에서 송봉주(宋奉柱)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송달오는 1931년 3월 서귀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4월에 상경하여 경성고학당(京城苦學堂)에 입학하였다. 이곳에서 1학년 1학기를 수료하고 자퇴하여 일본으로 건너갔다. 송달오는 오사카(大阪)...
일제 강점기 서귀포시 서귀동 출신으로 서귀리 독서회 사건과 관련된 독립운동가. 1910년 서귀포시 서귀동 454번지에서 송문준(宋文準)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송순혁은 1927년 서귀공립보통학교 4학년을 졸업한 후 고두호(高斗湖)주류판매소의 점원을 거쳐 농사일에 종사하였다. 1931년에는 이도백(李道伯)·안군오(安君五)의 지도교양을 받아 사회과학에 대한 서적을 탐독하며 공...
1918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법정사 항일 운동에 참여한 항일 운동가. 1918년 법정사 항일운동은 일제 강점기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독립 운동 중 최초이자 최대의 무장 항일운동이다. 법정사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신도들과 인근 마을 주민 등 700여 명의 시위대는 사전 치밀한 준비를 거쳐 1918년 10월 7일 일본인을 제주에서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목적을 내걸고...
일제 강점기 서귀포 출신의 민족 종교 항일 운동가. 본관은 고부. 1895년 중문면 강정리 5428번지에서 이재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두생(李斗生)은 고향에서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면서 1919년부터 2년간 보천교를 믿은 적이 있었다. 1935년 7월 하순경 전라남도 순천군 별량면 학산리에서 미륵교 지로사(指路師) 김형오가 제주도에 들어와 아라리 월전암에서 설교할 때 그...
일제 강점기 서귀포 지역 중문리 청년회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중문리 청년회는 1930년 초부터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운동가인 김한정(金漢貞)의 지도하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1931년 11월 청년회원인 중문리 부대혁의 아들 부경득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김한정을 비롯한 청년회원들은 부대혁 집으로 가서 부친이 아들을 속박함으로써 자살에 이른 것이므로 부대혁이...
일제 강점기 서귀포 출신의 항일 운동가. 이봉춘(李奉春)은 1914년 당시 중문면 중문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 초반 중문리에서 항일 청년 운동을 지도하던 김한정(金漢貞)의 영향 아래 활동하였다. 1931년 11월 중문리 부대혁의 아들 부경득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봉춘은 부경득의 친구들인 청년 운동가 김한정·안구현·강석만·강인화·윤창석 등과 함께 부대혁 집으로...
일제 강점기 서귀포 지역 중문리 청년회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중문리 청년회는 1930년 초부터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운동가인 김한정(金漢貞)의 지도하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1931년 11월 청년회원인 중문리 부대혁의 아들 부경득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김한정을 비롯한 청년회원들은 부대혁 집으로 가서 부친이 아들을 속박함으로써 자살에 이른 것이므로 부대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