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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위수(渭叟), 호는 만락재(晩樂齋). 조선 중기의 무신인 매촌(梅村) 강덕룡(姜德龍)[1560~1627]의 증손이다. 성품이 고결하여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동약(洞約: 조선시대 마을 단위로 운영되던 향약(鄕約))을 수정하여 풍속을 교정하였다. 만년에는 월배(月拜)[현재의 대구 달서구, 월배(月背)라고도 함]의 도원동에 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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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 자는 여진(汝眞), 호는 후산(後山). 진사에 합격하고 행의(行義)가 곧아 만인의 존경을 받았다. 만년에 후산정(後山亭)을 세웠으며 유집이 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4「사마조(司馬條)」에 이름이 올랐으며, 『증보 진양속지(增補 晋陽續誌)』에 관련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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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자진(子眞), 호는 매고(梅皐). 아버지는 지우당(至愚堂) 강내운(姜來運)이다. 조선 중기의 무신인 매촌(梅村) 강덕룡(姜德龍)의 6세손이다. 학문이 뛰어났고, 품성이 곱고 청결하였다. 재주가 있고 가슴에 뜻을 품었으나 벼슬은 하지 않고 은사(隱士)로 생을 마치니,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유집이 있다고 하지만 자세한 것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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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인서화가이자 평론가. 본관은 진주. 자는 광지(光之), 호는 첨재(忝齋)·산향재(山響齋)·박암(樸菴)·의산자(宜山子)·견암(蠒菴)·노죽(露竹)·표암(豹菴)·표옹(豹翁)·해산정(海山亭)·무한경루(無限景樓)·홍엽상서(紅葉尙書). 시호는 헌정(憲靖). 아버지 강현(姜鋧)과 생모 광주이씨 사이의 3남6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집안은 대대로 학문과 장수를 누렸으며,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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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원회(源會), 호는 설악(雪嶽). 매오(梅塢) 강건(姜鍵)의 손자이고, 조선 중기의 무신인 매촌(梅村) 강덕룡(姜德龍)의 후손이다. 성품이 온화하고 조용하였다. 이만구(李晩求)와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1846~1919, 한말의 유학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저서로 『주역연의(周易演義)』, 『중범가의(中範家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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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대함(大函).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郞)[조선시대 종6품의 품계] 강오수(姜鰲壽)이고, 어머니는 진양정씨(晋陽鄭氏)로 생원(生員) 정이량(鄭以良)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했으며 자라서는 기량이 뛰어났으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마을 사람들이 애석하게 생각했다. 1522년[중종 17]에 어풍정에서 태어나 만년에 설매마을로 이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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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군보(君保). 아버지는 지평(持平: 정5품 문신)을 지낸 강전(姜詮)이고, 할아버지는 강석정(姜碩貞)이다. 효성스럽고 형제 간에 우애가 있었다. 형인 진사(進士) 강여평(姜汝平)이 중한 병이 들자 친히 약을 달이고 백방으로 병구완하여 병이 낫게 하였다. 형이 죽자 1년 동안 묘를 지키며 시묘살이를 하였다. 『진양지(晋陽誌)』권3「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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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군평(君平). 호는 매계(梅溪). 임진왜란 때 초유사 김성일(金誠一)을 도와 공을 세운 매촌(梅村) 강덕룡(姜德龍)의 현손(玄孫: 손자의 손자)이다. 어머니의 뜻에 따라 아우 강여완(姜汝完)과 함께 외삼촌 묵재(黙齋) 조석규(趙錫圭)에게서 학문을 익혔는데, 동학들이 모두 그를 따랐다고 한다. 일찍이 벽 왼편에 조석규가 쓴 ‘敬義誠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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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군기(軍器)다. 조선 중기 진주 출신의 무신인 매촌(梅村) 강덕룡(姜德龍)의 손자다. 조선 시대 진주 지역의 선비인 묵재(黙齋) 조석규(趙錫圭)에게 학문을 배웠다. 대의(大義)를 통달하고, 또 지략과 뜻이 커서 작은 일에는 구애받지 않았다. 사람들이 재상감이라고 기대하였으나 불행히 일찍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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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의숙(宜叔). 아버지는 생원(生員) 강호(姜灝)이고, 할아버지는 훈도(訓導) 강세련(姜世連)이다. 맑은 얼음과 같은 지조와 가을 하늘과도 같은 기상을 지녔다고 한다. 악한 것을 미워하여 악취처럼 여기고, 옳은 것이 아니면 겨자 한 알도 취하지 않았다. 일찍 세상을 떠나니 많은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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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성순(聖淳), 호는 약산(若山)·유당(留當). 1788년(정조 12)에 태어났으며 영조·정조 때 예단(藝壇)의 총수였던 강세황(姜世晃)의 손자이다. 무과에 등제하였으며 벼슬로는 군수를 지냈다. 벼슬은 높지 않았으나 문인화가로서 기량이 높았다. 매화와 산수(山水)에 능하여 김정희(金正喜)와 신위(申緯)의 칭송을 받았다. 「강안주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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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자유(子由).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성재(誠齋) 강응태(姜應台)[1493~1552]의 현손(玄孫)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당암(戇菴) 강익문(姜翼文)[1568~1647]의 제자이다. 재주가 뛰어났으며, 장중하고 과묵하였다. 스스로 삼가고 남의 장단점을 말하지 않았다. 죽오(竹塢) 하범운(河範運)에게서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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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미백(美伯). 조선 중기의 무신인 강덕룡(姜德龍)[1560~1627]의 6대손으로 아버지는 강흥운(姜興雲)이다. 어머니는 인재(忍齋 ) 하윤관(河潤寬)의 딸이다. 순박하고 온후하였으며, 행실을 지극히 하였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저서『겸재집(謙齋集)』의 내용 중에 하홍도가 북인인 정인홍(鄭仁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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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문거(文擧), 호는 매은(梅隱). 조선 중기의 무신인 강덕룡(姜德龍)의 5세손으로, 부인은 인재(忍齋) 하윤관(河潤寬)의 딸이다. 평소에 가난한 사람을 도와 명망이 높았으며, 고장 사람들이 모두 신의 있는 사람이라고 칭송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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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경운(景運), 호는 담졸(澹拙). 만호(萬戶)를 지낸 강태복(姜泰復)의 아들이며, 정내교(鄭來橋)의 외손자이다. 1710년(숙종 36)에 태어났으며, 1754년(영조 30)에 운과(雲科: 음양과)에 급제한 뒤 감목관(監牧官)을 지냈다. 서울 삼청동에서 진경산수화가인 정선(鄭敾)과 이웃하여 지내면서 그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강세황(姜世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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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태운(太運)으로, 학성(鶴城) 출신이다. 진주 상사리(上寺里)에 살았다. 천성이 매우 순하고 우직하여, 친척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이웃과도 화목하게 지냈다. 외족(外族)에 가난하고 의탁할 데가 없는 이들을 한집에 거느리며 키워서 남자는 장가를 보내주고, 여자는 시집 보내는 등 남을 돕는 데 힘썼다. 또한 예의범절이 발라 향리에서 모두 칭송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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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춘경(春卿). 호는 서계(西溪). 능허(凌虛) 박민(朴敏)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황해도수군절도사를 지낸 박창윤(朴昌潤)이며, 어머니는 진주하씨(晋州河氏)로 하달영(河達永)의 딸이다.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에 의하면, 1677년(숙종 3) 출생하여 1736년(영조 12) 59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1706년(숙종 32) 사마시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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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화(子華). 성안중(成安重)의 아들이며, 성일휴(成日休)의 아우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따르면 성일장(成日章)은 재예(才藝)가 남보다 뛰어나고 학문적인 명성이 일찍 알려져서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불행하게도 급제를 하여 그 이름을 날리지는 못해 사람들이 모두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강응규(姜應奎), 강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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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경(子慶), 호는 무심옹(無心翁). 교리(校理) 성안중(成安重)의 셋째아들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따르면 강호에 은거하여 영리를 멀리 하였으며 자호를 무심옹(無心翁)이라 하고 초당은 무심정(無心亭)이라 일렀다고 한다. 방당(方塘)에 임하고 자연을 대할 때에도 모두 무심으로 이름 지었다. 손수 ‘피를 엮어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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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밀양(密陽). 자(字)는 군필(君弼), 호는 무송(撫松). 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손광후(孫光後)이며, 어머니는 진주유씨다. 오곡(梧谷) 손수령(孫壽齡)의 후손이다. 1531년(중종 26)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 이하리(離下里)에 살았다. 남명(南明)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평생토록 벼슬하지 않고 처사(處士)로 지내면서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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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고령, 자는 양중(養中). 신숙주(申叔舟)의 후손이다. 진주 조동에 살았다. 천성이 진실하고 소박하였으며, 어버이를 섬기고 스승을 섬김에 정성과 살핌을 극진히 하였다. 또한 행동에도 예를 지키고 모자람이 없어 손님과 친구를 접대하는데 그 정성을 다하였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한결같은 이라고 칭송하였다. 수우당 최영경(崔永慶)의 문하에 출입하였다. 『진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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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거창, 자는 사훈(士勳)이다. 진주 백곡리에 살았다. 기질이 헌앙(軒昻)하였고, 맑고 고고함으로 자신을 지켰다. 학문에 힘써 배우기를 즐겼다. 또한 뒤늦게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에 들어갔는데 조금의 교만함도 없었다. 조식이 그를 칭찬하여 “이 사람은 천성이 맑고 고고하다. 아는 것과 식견이 통달하고 분명하다. 비록 시와 예를 아는 이름난 유학자라도 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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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자는 사운(士雲)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따르면 양응룡(梁應龍)은 그 천성이 속되지 않고 뛰어나 사람들과 함부로 교유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하에 출입하며 학문을 익혔다. 진주 운곡(雲谷)에 살았다고 전한다. 진주에는 남명 조식의 학통을 이어받은 선비들이 많은데, 양응룡도 그 가운데 한 명으로 조선시대 진주의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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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화가.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자고(子固)·성유(聖攸), 호는 수운(峀雲)·가산(茄山). 『진양지』에 따르면 묵죽을 잘그렸다는 유진동(柳辰仝)의 6대손이며, 유혁연(柳赫然)의 종손이자 사간(司諫) 유성삼(柳星三)의 아들이다. 벼슬은 종2품인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묵화(墨畵)로 대나무를 잘 그렸는데, 조선 중기의 이정(李霆), 조선 후기의 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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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정가(靜佳), 호는 역옹(櫟翁). 수찬 윤효빙(尹孝聘)의 둘째 아들이다. 진사에 합격하고 맏형 윤선(尹宣)과 함께 학문에 힘써 일찍이 높은 문명(文名)을 이루었다. 특히 사부(詞賦)에 뛰어났다고 한다. 진주 신당리에 살았으며,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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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재령. 자는 치재(致載), 호는 농아(聾啞). 이만형의 2남이다. 어릴 때부터 자율적인 학습태도로 공부하므로 주위 사람들이 범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평을 하였고, 밖으로는 중후하고 안으로는 민첩하다는 평판이 있었다. 부지런한 학행을 통해 과거에 응시한 적은 있었으나, 곧 뜻을 바꾸어 향리에서 부모를 봉양하면서 모범적인 일상활동을 하였다. 이원조가 쓴 『농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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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재령. 자는 사영(士英), 호는 묵인당(黙忍堂). 할아버지는 이태형, 아버지는 이용이다. 진주 초문리에서 출생하여 일찍이 유학을 바탕으로 하여 학행과 덕행에 힘써 당시 향리에 이름이 났으며, 이것은 그의 행장에 있는 자질이 청아하고 선을 즐기며, 시기를 멀리하는 수행에 전념함이라는 기록에서 볼 수 있다. 또 제자에 대한 공부가 엄격하고 제자의 능력과 적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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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재령. 자는 달후(達厚), 호는 갈모당(葛茅堂). 갈암 이현일(李玄逸)[1627~1704]의 종손이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하였으며, 성리학에 뜻을 두고 깊이 연구하였다. 외삼촌인 모계처사 조석기(曺錫基)와 광양의 김성탁으로 부터 갈암 이현일의 학문을 배웠다. 말년에는 자기의 방에 갈모(葛茅)라는 문자를 붙이고 끝까지 학문에 정진하였다. 특히 대학의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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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재령. 자는 대래(大來), 호는 청사(淸榭). 할아버지는 이현근, 아버지는 이정규이다. 갈암 이현일(李玄逸)[1627~1704]의 배소 광양에서 이현일에게서 수학하였고, 당시의 많은 지식인들과 교유하면서 성리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또한 시와 예절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행장에 나타나 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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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순(季純), 호는 은암(隱庵). 주부(主簿) 이오(李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생원 이자침(李自琛)이다. 아버지는 증 영의정 이난(李鸞)이며, 어머니는 참봉 우담령(禹聃齡)의 딸이다. 아들은 우의정 이완(李浣)이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 훈련원의 벼슬을 거쳐 1586년 소농보권관(小農堡權管)이 되었다가 남병사 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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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옥오(玉吾), 호는 운당(雲塘). 기국이 웅위(雄威)하고 용모가 수려하였다. 어릴 때부터 도량이 커서 『소학(小學)』과 사서(四書)를 힘써 공부하여 유학에 정통하였다. 특히『대학(大學)』의 「성의(誠意)」편을 몸소 실천하여 체득하려 노력하였으며, 실제로 효우(孝友)가 지극하여 부모를 섬김과 형제를 사랑하는 데 도(道)를 다하였다.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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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화백(和伯). 호군 이침(李琛)의 손자이다. 『진양지(晋陽誌)』권4「사마조(司馬條)」에 의하면, 학행과 문장이 있어 1582년(선조 15)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일찍이 이르기를, “성(誠)의 한 글자는 다만 배우는 것만으로 중시되는 것이 아니니 사군자(士君子)는 일용(日用)으로 벗어나지 아니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자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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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인경(仁卿), 호는 영모재(永慕齋).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의하면, 외모가 무게 있고 기품이 있으며 그윽하여, 비록 평소에 알지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견에 그의 거인장자(鉅人長者) 임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집에 있을 때는 이륜(彛倫)을 중히 여기고 은의(恩義)를 돈독히 하여, 자손에게 가르치기를 먼저 의를 행하고 문예를 뒤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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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찬경(贊卿). 농아헌(聾啞軒) 이국정(李國楨)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하늘이 내린 성품이 강하고 밝아 바른 도리를 지켜 변치 않았다. 일찍이 유학자인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1777~1861]의 문하에서 활동하였으므로 학문에 연원이 있었고,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1792~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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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숙희(叔喜). 이극견(李克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반(李攀)이고, 아버지는 이영부(李英符)이며, 어머니는 이효완(李孝完)의 딸이다. 장령(掌令) 이수경(李首慶)의 동생이다. 1546년(명종 1) 생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548년 예문관 검열로 처음 벼슬길에 들어섰다. 1549년 정언으로 언론활동을 하였고, 15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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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재령. 자는 경현(景顯), 호는 행정(杏亭). 할아버지는 이간, 아버지는 이유성이다. 어머니 이씨부인은 현모양처로 그 행실이 『진양지(晋陽誌)』에 잘 나타나 있다. 6세와 9세에 부모를 여의고 외삼촌 이대기 아래에서 품행이 단정하고 영리한 소년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성장하였다. 꾸준한 수행의 과정을 거쳤으며, 향시에 합격한 후에 향리인 진주에 머물면서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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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방언(邦彦). 조선 중기의 학자인 행정(杏亭) 이중광(李重光)[1592~1685]의 후예로 재기가 출중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젊어서 영남학파의 거두인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1627~1704]을 추종하여 따라 배우다가 돌아왔다. 이때 시로써 말하기를 “사람들이 호관(好官) 되기만을 요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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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재령. 자는 낙천(樂天), 호는 송재(松齋). 정랑(正郞) 이세후(李世垕)의 후예로, 할아버지는 이홍필, 아버지는 이동연이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학문에 진력하였다. 향리에서 조용히 수행하고 학문을 연마하는 선비로 예의범절이 뛰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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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배원(培元). 행정(杏亭) 이중광(李重光)[1592~1685]의 아들로 호는 죽촌(竹村)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1654년(효종 5)에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아버지 이중광이 지방에서 유학을 진흥시키는데 힘썼듯이 이현재는 조은(釣隱) 한몽삼(韓夢參), 광서(匡西) 박진영(朴震英)을 따라 때로는 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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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대현(大見), 호는 석동(石桐)이다. 1882년에 진사(進士)가 되었다. 자품(資稟)이 준정(峻整)하고 기우(器宇)가 헌앙(軒昻)하며 풍채가 사람에게 선학(仙鶴)과 같이 비추고 문학이 일찍부터 뛰어났다. 만년에는 강좌를 용암(龍岩)의 장덕재(章德齋)에 설치하니 원근에서 찾아와서 배우는 자가 매우 많았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4「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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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치경(致敬), 호는 기재(跂齋)이다. 아버지는 정인현(鄭麟賢)이다. 진주 용암 출신으로 『증보 진양속지(增補 晋陽續誌)』에 의하면, 효우(孝友)스럽고 염직(廉直)하여 영리(榮利)를 구하지 아니하고 착한 일을 즐기고 베풀기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병정(丙丁:병자·정축년, 1876~1877년)의 흉년에 베풀기를 좋아하는 기재(跂齋)의 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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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 자는 원경(遠卿), 호는 묵재(黙齋). 동호(東湖) 정상첨(鄭相詹)의 손자이며 정학신(鄭學臣)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정광의는 1768년 생원(生員)에 합격하고 반천(泮薦: 성균관의 추천)으로 경릉참봉(敬陵參奉)에 임명되었다. 일찍부터 배우는 데 힘쓰고 뜻을 가다듬으며 각고(刻苦)하여 문행과 덕망이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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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영일. 자는 술원(述遠). 학포(學圃) 정훤(鄭喧)의 후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정광익은 덕목이 높고 입지가 확고하였다. 번암(樊菴) 채제공(蔡濟恭)[1720~1799]의 문하에 있었는데 원릉(元陵)의 문제로 여론이 일변하였을 때에도 성품대로 스스로를 지켜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가는 집에 걸어놓은 편액을 수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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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 자는 긍세(肯世), 호는 노정헌(露頂軒).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의 증손이다. 착한 일을 즐거워하고 의로운 것을 좋아하였으며 문장과 필법이 뛰어나 세상에 추앙되고 존중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노정헌유고』 1책이 간행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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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자는 사관(士觀), 호는 함인재(含忍齋). 모렴재(慕㾾齋) 정도동(鄭道東)의 손자다. 송성담(宋性潭)에게 사사(師事)하여 문학과 덕행으로 사우(士友)들에게 추중(推重)되었다. 경호(鏡湖) 이의조(李宜朝)와 교유하고 이의조가 엮은 『가례증해(家禮增解)』를 참정(參訂)하였다. 사후 도내의 선비들이 사당을 세우기를 의논하였으나 이루지 못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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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한학자.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성칠(聖七), 호는 성재(誠齋). 정도역(貞度易)의 후손이다. 『증보 진양속지(增補 晋陽續誌)』에 의하면, 초학은 정재(正齋) 김종우에게 받았고 의문이 있으면 간재(艮齋) 전우(田遇),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에게 서신으로 질의하며 깨우쳤다. 만년에는 단계(丹溪)에 옮겨가 살면서 매서 김극영, 금호 박희방, 능재 권의현, 과제 이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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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미보(美甫), 호는 죽와(竹窩). 충의공(忠毅公) 정문부(鄭文孚)의 후손이다. 진주 용암리 출신이다. 문학과 행의(行誼)로 이름이 높았다. 1788년(정조 12)에 소(疏)를 올려 충의공 정문부의 부조(不祧: 국가에서 제사지내는 사당)의 은전을 청하여 임금의 윤허(允許)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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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연일. 자는 자첨(子瞻), 호는 율리(栗里).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예다. 겸재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동중자제(洞中子弟)이기 때문에 젊어서부터 그 문하에서 배웠다. 하홍도가 임금에게 사은소(謝恩疏)를 올릴 때에 소를 받들고 입성(入城)하여 드디어 침낭(寢郞)에 제수되는 특전을 입었다. 그는 생각하기를 “소를 가지고서 피선(被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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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사상(士相), 호는 반곡(盤谷). 효자 정보(鄭堡)의 장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정내의(鄭乃毅)는 효성이 하늘에서 타고나서 어려서부터 부모를 잘 섬기며 부모의 뜻에 순응하여 어김이 없었다. 이미 자라서는 집안에서 배운 대로 몸소 행실을 삼가고 학문에 힘써 문학이 일찍부터 이루어져 여러 번 향해(鄕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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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경(汝慶). 호는 봉곡(鳳谷).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충의공 정문부(鄭文浮)의 장자이다. 평소 품성이 곧고 도량이 넓었으며, 젊어서부터 재상의 자질이 있었다. 1610년(광해군 2)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높은 학문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아버지 정문부가 말년에 이괄(李适)의 난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다가 별세하자 세상과 인연을 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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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여준(汝準)이고, 아우는 정대영(鄭大榮)이다. 문장과 필법으로 이름을 떨쳤다. 의기사(義妓祠) 앞 바위에 의암(義巖)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바로 정대융이 쓴 것이다. 후에 우승지(右承旨)를 추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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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여길(汝吉), 호는 여우재(如愚齋). 생원(生員) 정문익(鄭文益)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문장이 넉넉하고 넓으며 지조가 높고 고상하였고, 가정의 교훈을 잘 지키고 따르며 자취를 거두고 숨겨서 기르니 주변의 선비들이 그 풍채와 용모를 칭송하였다고 한다. 정대형(鄭大亨)은 장수(長壽)하여 후에 품계가 가선(嘉善)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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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유성(由聖), 호는 송죽헌(松竹軒). 학포(學圃) 정훤(鄭暄)의 현손이다. 효성과 효우가 남달랐고, 오랫동안 잃었던 선조의 묘를 찾을 때에는 태(笞: 작은 곤장)를 잡고 스스로 벌하였고, 3대 동안 나누었던 가산을 합하여 한 집에서 함께 살았다.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와 더불어 도의의 친구로 삼았다고 한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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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선비.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성빈(聖彬). 학포(學圃) 정훤(鄭暄)의 현손(玄孫)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고 기상이 높고 반듯했다고 한다. 집안에서도 법도가 있으며, 뛰어난 학문과 의로운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이 칭송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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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 자는 국장(國章), 호는 해사(海史). 허재(虛齋) 정지탁(鄭志倬)의 후손이다. 용모가 크고 기우가 헌양하여 장자의 도장이 있었다. 일찍이 월촌 하달홍(河達弘), 면우 곽종석(郭鍾錫)의 문하에 있었으며, 족형(族兄) 운파(雲坡) 정한균(鄭漢均)과 더불어 수학하였다. 유집으로 『해사선생문집(海史先生文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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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사원(士元), 호는 기옹(綺翁)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진사에 합격하고 호남으로부터 침곡(針谷)으로 옮겨와서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태계(台溪) 하진(河溍), 학포(學圃) 정훤(鄭暄)와 더불어 교유하면서 학문을 연마하고 문장을 서로 지어 주고받아 시문(詩文)이 제현(諸賢)의 문집 가운데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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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역학자·선비. 자는 이남(以南)이다. 1558년(명종 13)에 생원 시험에 합격하였다. 진주 진성면 동산리 월정마을에 살았다 하여 사람들이 동산옹(東山翁)이라고 불렀다. 효성이 지극했으며, 이름을 숨기고 재주를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우람한 체구에 소탈한 성격이었으며,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자 부귀영화에 초연하여 스스로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재기가 탁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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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국교(國喬), 호는 지와(芝窩).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의 후예이며, 정신(鄭愼)의 아들이다. 진주 금산리 출신이다. 고모부인 유하(柳下) 강태중에게 학문을 배웠고, 이후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에게 집지하여 준재라고 칭찬을 받았다. 문사(文詞)를 지음에 기이하나 정기가 있고, 매우 건전하였다.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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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장기(長鬐). 자는 중상(仲祥). 일찍부터 문명이 있었으나 과거에는 합격하지 못하였다. 남을 대접함에 있어서는 정성으로써 하였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공평하게 하였다. 강심(姜深), 신점(申霑)과 더불어 요역(徭役)시행을 시정하자 고을 사람들이 모두 칭송하며 진양(晋陽)의 삼로(三老)라고 일렀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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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자겸(子謙), 호는 용강(龍岡).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정신(鄭愼)의 아들이다. 1589년(선조 22)에 생원(生員)에 합격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중형 충의공(忠毅公)이 화를 당함에 이르러 두 조카를 이끌고 남쪽으로 오다가 겸재(謙齋) 하홍도를 만나 진주에서 살게 되었다. 뜻을 고상(高尙)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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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 자는 중의(仲儀), 호는 동오(桐塢). 용강(龍岡) 정문익(鄭文益)의 후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품성이 순결(純潔)하고 의표(儀表)가 단정하고 장엄하였으며 남을 대접할 때는 반드시 정성을 다해 대하였고, 일을 처리하는 데는 휴진(畦畛:일정한 법식)을 베풀지 아니하였다. 더욱이 효우(孝友)에 돈독하니 고을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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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 자는 성옥(聖玉), 호는 명일(明逸). 명암(明菴) 정식(鄭栻)의 증손이며, 후산 허유의 외조부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성품이 관대하고 그 뜻이 청고(淸高)하였다. 과거에는 뜻을 두지 않고 자양서(紫陽書: 朱子의 書) 읽기를 좋아하여 행실을 삼가니 세상에서는 명옹(明翁)에 초손(肖孫)이라 일컬었다. 감사의 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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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 자는 길보(吉甫), 호는 동주(東洲). 아버지는 진사(進士) 정즙(鄭楫)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1641~1721]의 문하에 종유하였고, 효우(孝友)와 학행으로 이름을 당세에 드러내었으며, 창사 손명래 등과 친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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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 자는 복여(福如), 호는 운파(雲坡). 우곡(隅谷) 정온(鄭溫)의 후손이다. 『증보 진양속지(增補 晋陽續誌)』에 의하면, 천성이 영민(穎敏)하고 재예(才藝)가 남들보다 출중하였다. 김단계(金端磎), 박만성(朴晩醒)을 따라 학문을 연마하였다. 고려 말 문신이었던 정온이 태조의 역성혁명에 반대하여 고향으로 내려와 지은 우곡정(隅谷亭)[경상남도 진주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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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 자는 중여(仲與), 호는 불우헌(不憂軒).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의 후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아버지를 섬김에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과거에는 뜻을 버리고 선조의 교훈을 지키면서 임천(林泉)에 소요하며 거문고와 책을 벗 삼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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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 자는 여량(汝良), 호는 동호(東湖). 임강정(臨江亭) 정환(鄭桓)의 아들이다. 1680년(숙종 6) 태어났다. 1721년(경종 1)과 이듬해에 걸쳐 일어난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김범갑(金范甲)에게 피격당하고 과거시험을 포기하였다가 영조가 즉위하자 1725년(영조 1)에 진사에 입격하였다. 이후 성균관에 출입하면서 명분과 예절을 스스로 가다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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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자는 중선(仲善), 호는 동야(東野). 봉곡(鳳谷) 정대영(鄭大榮)의 증손이다. 성품이 강직하고 재주가 뛰어났으며, 문장을 만들 때는 간결하고 예스러웠다. 김범갑(金范甲)의 무고를 받아 자제와 친구에게 단단히 타일러 이치에 의거하여 엄격하게 배척토록 하였으며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 때는 바른대로 지키고 흔들리지 아니하였다. 종형과 더불어 우암(尤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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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치경(致敬), 호는 용헌(容軒).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의 후손이다. 천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컸으며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서는 마음과 몸을 다하여 지극히 하였다. 그리고 향당(鄕黨)의 일에는 한결같이 공정하게 처리하니 사람들이 칭송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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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회일(會一). 징질와(懲窒窩) 정유기(鄭有祺)의 증손이다. 일찍이 사마(司馬)에 올라 뛰어난 문장과 효우(孝友)로 이름이 나, 세 번이나 천거되었으나 임용되지 못하자 주위에서 애석하게 여겼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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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의하면, 정승개는 천성이 착하고 친족들과 돈독하게 지냈으며 이웃에게 화목하였다. 여러 차례 과거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하였다. 진주 상사리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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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효자. 자는 임중(任中), 호는 남계(南溪). 교도(敎導) 정관(鄭寬)의 아들이다. 1570년(선조 3)에 진사가 되었다. 평소 효성이 깊고 지극하여 어버이가 돌아가신 뒤에 상례를 예로써 하고 깊은 겨울이나 더운 여름에도 상복을 벗지 아니하였다.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면서 발을 밖에 내지 아니하고 죽을 마시며 슬퍼하니 보는 사람이 모두 탄복하였다. 악한 것을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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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자는 중렬(仲烈). 집의를 지낸 정대영(鄭大榮)의 후예이다. 생몰년은 미상. 영조 재위(1725~1777) 전후로 활동하였다. 천성이 영특하고 학문을 열심히하였다. 형제와 더불어 당시의 대학자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을 찾아가니 김원행이 시를 지어 그들의 아름다움을 칭찬하였다. 학문이 매우 해박하여 하늘과 사람의 성명(性命)으로부터 하락팔괘(河洛八卦)와 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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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호는 매죽당(梅竹堂). 첨정을 지낸 삼계 정밀(鄭蜜)의 아들이다. 1588년(선조 21) 생원에 합격하였다. 부사(浮査) 성여신(成汝臣), 창주(滄洲) 하증(河憎) 등을 따라 『진양지(晋陽誌)』를 편찬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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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자(字)는 경보(敬甫), 호는 명암(明菴)·대명처사(大明處士).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의하면, 태어나면서부터 남다른 재주가 있고 젊어서부터 독서하기를 좋아하였으며 지조가 맑고 고상하였다. 일찍이 과거에는 뜻을 버리고 아름다운 산수를 사랑하여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녔다. 두류산의 무이곡(武夷谷)에 들어가서 와룡암(臥龍菴)을 세우고 제갈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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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자는 계인(系仁), 호는 용담(龍潭). 첨정을 지낸 삼계 정밀(鄭蜜)의 아우이다. 진주 상사리에 살았다. 일찍부터 문명(文名)이 있어 1570년(명종 3)에 장원으로 진사가 되었다. 그러나 벼슬에 뜻이 없고 낙향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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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하서(夏瑞). 호는 동호(桐湖) 또는 초객(樵客). 석정 정홍조(鄭弘祚)의 후손이다. 동곡(桐谷)에 살면서 학문과 문학에 힘썼다. 모든 일에 있어 유학을 지키는 일에 힘썼으며, 조선 중기 진주 지역의 대학자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문집인 『겸재집(謙齋集)』 간행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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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오천(烏川). 자는 하서(夏瑞), 호는 동호(桐湖)·초객(樵客).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이다. 진주 동곡(桐谷)에 살면서 문망이 있었고, 모든 일에 있어 유학을 지키는 일에 관계된 것에는 힘쓰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문집인 『겸재집(謙齋集)』의 간행에 힘을 쓴 바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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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자는 자의(子義), 호는 추담(秋潭).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이다. 일찍부터 행실이 바르고 학식이 넉넉하였으며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태계(台溪) 하진(河溍)과 더불어 도의의 사귐을 가졌다. 그의 아들 정례도 또한 하홍도를 스승으로 섬겨 재예가 뛰어났으며 진사에 합격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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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공서(公瑞). 충의공(忠毅公) 정문부(鄭文孚)의 손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조선 후기의 문신인 도암(陶菴) 이재(李榟)[1680~1746]가 화상을 기리어 이르기를 ‘용의가 깨끗하고 상쾌하며 문장도 또한 같았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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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수계(壽季), 호는 징질와(懲窒窩). 진사 정대영(鄭大榮)의 아들이다. 천성이 효성스러워 어버이를 섬김에 정성을 다하였고 병의 간호에 10년 동안 한결같았다. 상을 당하여서는 슬픔으로 몸이 상할 지경이 되었다. 형제 네 사람이 함께 살면서 강학(講學)과 학문을 기쁜 마음으로 하였으며, 곧은 마음을 안고 스스로 편안히 지냈다. 독서차록(讀書箚錄)을 집안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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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 자는 길숙(吉叔).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의 손자이다.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의 문하에서 학업을 닦아 문학과 행실이 뛰어나 사우의 추앙을 받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떠나니 겸재(謙齋)가 만사(輓詞)를 지어 슬퍼하였다. 후에 손자가 귀한 자리에 오르게 되었기 때문에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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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 호는 봉강(鳳岡).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의 손자다. 어릴 때부터 글을 지으니 할아버지 정문부가 매우 기특히 여기고 사랑하였다. 행실에 있어서 효제(孝悌)로써 근본을 삼고 학문을 함에 형제가 함께 살면서 밤낮으로 강론하고 연마하니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와 여러 학자들이 모두 추앙하였다. 숙종 때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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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진주 대평에 살았다. 모친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죽만 먹고 지냈으며 제사를 모실 때는 예로써 하였다. 또 명종 승하 시 3년 동안 상복을 입었다. 『진양지(晋陽誌)』 권3 「효행조(孝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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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 자는 신화(愼和), 호는 모헌(慕軒). 은렬공(殷烈公) 정신령(鄭臣嶺)의 후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성품이 본래부터 효우(孝友)스러웠고 심학(心學)에 전념하였다. 이광악(李光岳)의 문하에 있으면서 정온(鄭蘊), 허목(許穆), 하홍도(河弘度) 제현으로 더불어 도의를 서로 연마하였다. 청계사((淸溪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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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인백(仁伯), 호는 구암(龜岩)이다. 진사 정기(鄭起)의 아들이다. 성품이 온순하고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약관의 나이로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하에 취학하였다. 조식이 훈계하여 이르기를 "몸을 사랑하기를 옥과 같이 하고 마음을 가지기를 물과 같이하며 병 때문에 스스로 게을리하지 말라"고 하였다.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을 다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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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호는 동호(東湖). 남계(南溪) 정승윤(鄭承尹)의 아들이다. 1606년(선조 39)에 진사(進士)에 합격하고 가학(家學)을 이어받아 학문과 실천이 독실하였다. 조겸(趙㻩)이 지은 만시(挽詩)에 “덕망은 삼대에 연하였고 문장은 일향(一鄕)에 으뜸이었네.”라고 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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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심원(深源).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천성이 온순하고 행실이 정직하였다. 아우 정렴(鄭濂)과 더불어 박황암(朴篁岩)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문의 요점을 얻었다. 저술한 유문이 불에 타서 소실되니 다 잃으니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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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계통(季通), 호는 사무재(四無齋)·수헌(睡軒)·천휴노인(天休老人). 봉강(鳳岡) 정유정(鄭有禎)의 아들이다. 1665년에 진사(進士)에 입격하였다. 학행이 깊고 신실하여 칭송이 높았다.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사무재시고(四無齋詩稿)』 1책이 간행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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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옥여(玉汝). 호는 은와(隱窩).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의 후손이다. 도량이 넓고 품성이 온후하였다. 9세에 부친상을 만났는데 장례를 행함이 한결같아, 성인과 같이 법도에 따랐고 처세에 모범이 되었다. 경림서원(慶林書院)[경상남도 진주]과 종천서원(宗川書院)[경상남도 진주] 등 두 서원의 원장이 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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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 자는 직경(直卿), 호는 숙매(熟寐).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의 후손으로 정상점(鄭相點)의 아들이다. 가훈을 계승하여 경전(經傳) 공부에 진력하였고 가정을 힘써 닦았다. 날마다 형제, 조카들을 함께 모아서 경전을 강의하고 토론하며 서로 공부를 도왔다. 진주 용암리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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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자는 명숙(明叔), 호는 삼모재(三慕齋). 학포(學圃) 정훤(鄭暄)의 후손이다. 생몰년은 미상. 영조 재위(1725~1777) 전후에 활동하였다.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외모가 단정하고 일찍이 학문에 눈을 떠 당시의 학자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에게서 수학했다. 윤봉구가 찬한 「천명인심도(天命人心圖)」를 보고 크게 감화받았으며,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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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응현(應賢), 호는 옥초(玉樵). 포은(圃隱) 정몽주의 후손이다. 임술민란(壬戌民亂: 진주민란)을 겪은 뒤로부터 진주 병영(兵營)의 창고가 비게 되자 정철기가 쌀 천 석을 바쳤다. 진주 병영에서는「연일정씨의창(延日鄭氏義倉)」이라는 6글자를 고문(庫門) 밖에 써서 달았고 또 조정에 전보하니 선공감가감역(鐥工監假監役)을 제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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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응원(應遠), 호는 운파(雲坡).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의 후손이다. 천성이 순후(淳厚)하고 효우(孝友)가 돈독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6년 동안 손수 약을 달여 드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예서(隷書)를 쓰는 데 능했다고 한다. 당시에 세간에서 진주 운곡(雲谷)에 여덟 명의 재사(才士)가 있다고 일컬었는데 정한균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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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사응(士膺). 정인평의 양자이다. 성품이 순후하며, 모자라거나 지나침이 없었다. 또한 예를 행함에 있어서도 그 정성을 다하였으며, 행동하는데 조금의 잘못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 탄복하고 칭찬하였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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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자는 무중(武仲), 호는 임강정(臨江亭). 징질와(懲窒窩) 정유기(鄭有祺)의 아들이다. 일곱 살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였는데, 애통해하기를 성인과 같이 하였다. 학문이 해박하고 행실이 고결하였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이 일어나 인현왕후가 변을 당하자 탄식하여 이르기를 "천하에 어찌 어머니 없는 나라가 있겠는가?"라 하였다. 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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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연일. 자는 성원(聲遠)이고, 호는 삼비재(三非齋).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이다.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을 다하였고, 집안을 다스림에 있어서도 법도가 있게 하였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의 행적을 드러내지 않고, 남들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았다. 조선 중기 진주 지역의 유학자였던 월촌(月村) 하홍달(河弘達)이 재명(齋銘)을 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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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남계(南溪) 정승윤(鄭承尹)의 아들이다. 타고난 재주가 매우 뛰어났으며 학식이 깊고 넓었다. 그러나 과거를 보아 영달을 꾀하는 일을 경계하고 자중하며 더욱 학문에 매진하여 유림에서 추앙을 받았다. 배우기를 즐겨하여 학문에 힘썼고, 행동에 절제가 있어 친우가 많았으며, 모두 그의 덕을 흠모하였다. 정효생의 죽은 뒤 하태계(河台溪)가 만시(挽詩)에서 이르기를 ‘공(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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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 자는 낙붕(樂朋), 호는 운곡(雲谷). 우곡(隅谷) 정온(鄭溫)의 후예이다. 머리가 매우 좋고 총명하여 일찍이 이름이 있었다. 또한 학문에도 조예가 있었다. 문장을 지을 때의 기교가 매우 뛰어나 사람들이 감탄하였으며, 필력(筆力)이 좋아 여러 번 향시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문과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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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본가는 삼가판현(三嘉板峴)[지금의 경상남도 합천지역]에 있었고, 토동(兎洞)은 외가이다. 아버지는 조언형(曺彦亨)으로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를 지냈으며 강직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어머니는 인천이씨(仁川李氏)로 충순위(忠順衛) 이국(李菊)의 딸이자 좌의정(左議政) 최윤덕(崔潤德)의 외손녀였다. 조식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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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여양(驪陽). 자는 경직(敬直), 호는 백곡(栢谷). 청백리 진유(陳猷)의 증손이다. 아버지 부제학 진식(陳寔)이 간신 김안로(金安老)의 죄를 극언하고 화를 피하여 진주로 내려왔다. 원래 진식은 진극경의 당숙이며, 생부는 생원 진정(陳定)이다. 효자로 이름을 남긴 진인(陳寅)의 아버지이다. 1546년(명종 1) 진주 백곡촌에서 태어나 마동에서 살았다.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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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명숙당(明叔堂). 고려 명종 때의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최천로(崔天老)를 시조로 하고, 최유가(崔瑜價)를 중시조로 하는 삭녕최씨 후손이다. 아버지는 참봉 최수만(崔壽萬)이고,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이며, 부인은 진주강씨이다. 1554년(명종 9)경 당시 진주목 진성면 대사리에서 태어나 북면 사죽리 단지동으로 이사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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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은 화순. 자는 효원(孝元), 호는 수우당(守愚堂). 아버지는 병조좌랑을 지낸 최세준(崔世俊)이고, 어머니는 평해손씨(平海孫氏)로 현감을 지낸 손준(孫濬)의 딸이다. 1529년(중종 24) 태어나 남명 조식(曺植)의 문인으로서 학문에 몰두하였다. 과거에 실패하고 1572년(선조 5) 경주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이후에도 조정으로부터 수령·도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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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사겸(士謙), 호는 죽계(竹溪). 고려 명종 때의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최천로(崔天老)를 시조로 하고, 최유가(崔瑜價)를 중시조로 하는 삭녕최씨 후손이다. 고려 말 조선 초에 대사간을 지내고 처음으로 진주에 자리잡은 최복린(崔卜麟)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부사정(副司正)으로 옥포만호를 지낸 대재(大哉) 최경천(崔景泉)이다.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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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자익(子益). 목사를 지낸 하우치(河禹治)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승사랑(承仕郞)하숙(河淑), 아버지는 생원 하위보(河魏寶)이다. 어머니는 사천이씨(泗川李氏)이며, 부인은 동래정씨이다. 1555년(명종 10)에 출생하여 1579년(선조 12)에 진사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학업에 정진하였고 온후한 성품과 단정한 용모로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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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 자는 숙형(叔亨). 호는 회봉(晦峰) 또는 외재(畏齋).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재익(河載翼)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이다. 1870년(고종 7) 진주에서 출생하여 13세에 사서오경을 익혔고, 24세부터는 성리학을 논하기 시작했다. 27세 때 곽종석(郭鍾錫)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이후 평생을 학문과 저술에 힘쓰다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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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경부(敬夫), 호는 춘당(春堂). 고려 문하시랑평장사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진평군(晉平君) 하위보(河魏寶)이며, 어머니는 사천이씨(泗川李氏) 이륜(李綸)의 딸이다. 부인은 함안이씨 이인형(李仁亨)의 증손녀로 이응춘(李應春)의 딸이다. 1566년(명종 21) 태어나 형들을 따라 공부하였고, 자라서는 한강(寒岡) 정구(鄭逑)를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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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낙도(洛圖), 호는 해산(海山). 밀양부사와 안주목사를 역임한 하진보(河晉寶)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예범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 권중도(權重度)의 딸이다, 부인은 전주이씨로, 이기문의 딸이다. 1841년(헌종 7)에 태어나 뛰어난 재주로 과거공부를 하면서 명성을 날렸고, 성재 허전(許傳)의 제자가 되었다. 「주자서(朱子書)」를 매우 좋아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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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경주(景周).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複)의 후예로서 장령(掌令) 하계부(河季溥)의 손자이다. 일찍이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의 문하에 들어가서 학문을 수련하였는데, 여러 가지 문장 중에서 특히 시(詩)에 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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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공극(公極), 호는 동야(東野). 각재(覺齋) 하항(河沆)의 아들이다. 가풍을 이어받아 언행이 깨끗하고 단정하며 예학(禮學)이 깊었다고 한다. 사조(思潮) 오장(吳長), 유덕룡(柳德龍)과 더불어 벗으로 지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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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유중(孺仲), 호는 고재(顧齋). 함와(涵窩) 하이태(河以泰)의 둘째 아들이다. 일찍부터 집안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평상시에도 옷을 끄르고 있거나 책상다리를 하고 편히 있지 않았다.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성리의 학문에 종사하더니 우산(愚山)에서 글을 읽으면서 역병에 걸렸다. 정종로가 날마다 두 번씩 병을 묻고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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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 자는 추약(追若), 호는 옥봉(玉峯). 송강(松岡) 하항(河恒)의 후손이다. 부인은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열녀조(烈女條)」에 보이는 박인호(朴寅浩)의 딸 밀양박씨이다. 평생 독서하기를 즐겼다. 면우 곽종석(郭鍾錫)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회봉(晦峯) 하겸진(河謙鎭)과 우애가 돈독하여 함께 만수당(晩修堂)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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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낙경(洛卿), 호는 만취(晩翠). 송판(松坂) 하완(河浣)의 후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하계범(河啓範)은 품성이 너그럽고 온화하며 총명하면서 기록하는 데 힘써 문예가 남보다 뛰어났다. 그러면서도 벼슬을 구할 뜻이 없고 항상 굳은 절개로써 스스로를 가다듬고자 애써 만취(晩翠)로써 호를 삼았다. 같이 즐기며 학문을 닦고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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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 자는 성술(性述), 호는 학산(鶴山). 생원 하위보(河魏寶)의 12세손이며, 참봉 하경(河憬)의 11세손이다. 아버지는 하영원(河永源)이며, 어머니는 순흥안씨 안재복(安在福)의 딸이다. 당대의 선비로서 명성이 드러난 회봉 하겸진(河謙鎭) 등과 교유하였으며, 선비로서 현사(賢祠)와 서원(書院)의 원임을 맡는 등 유림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족보 발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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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희량(希亮). 진주 신당리에 살았다. 천성이 양순하고 인정이 두터우며 행실이 돈독하여 부모님께 효성이 지극하였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다고 한다. 일찍부터 글재주로 이름이 있었고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합격은 하지 못하여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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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 호는 태촌(台村). 대사간(大司諫) 하결(河潔)의 후손이다. 성품이 강건하고 청고하여 스스로 수양에 힘썼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학문을 사숙하였으며 임진왜란 뒤에 향교를 증수하고 덕천서원을 수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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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선재(善哉). 아버지는 승사랑(承仕郞) 하숙(河淑)이고, 어머니는 함종어씨(咸從魚氏) 관포(灌圃) 어득강(魚得江)의 딸이다. 부인은 진주강씨 강열의 딸이며, 사간(司諫) 하진보(河晉寶)의 아우이다. 1563년(명종 18)에 출생하여 진주 단지동에 살았다. 1573년(선조 6) 생원시에 합격했다. 천성이 순진하고 효우(孝友)가 돈독하였으며,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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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자는 일숙(一叔), 호는 단연(丹淵). 모송재(慕松齋) 하인상(河仁尙)의 현손이다.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 일찍이 학문을 이루었다. 세도가 날로 기우는 것을 보고는 문달(聞達)을 구하지 아니하고 성리의 학문에 잠심하였으며 괴천(槐泉) 유문룡(柳汶龍)[1753~1821], 홍와(弘窩) 윤동야(尹東野) 등 주위의 선비들이 모두 추종하였다. 진주에는 그 학문적 성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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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 자는 청언(淸彦)이고, 호는 국헌(菊軒)이다. 학식이 매우 넓고 뛰어나며 정의감이 투철하고 절개가 곧았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고, 또한 집안을 다스릴 때 항상 바른 가르침으로 다스리려고 노력하였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에 흐트러짐이 없었으며 도량(度量)이 넓고 컸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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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혼원(混源), 호는 구이당(具邇堂). 진사 하협(河悏)의 아들이다. 몸가짐이 단정하고 순수하며, 맑고 곧고 바른 주장을 펼치고, 그 주장을 실천함에 있어서도 독실하였다고 한다.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찰방(察訪) 권극경(權克經), 상사(上舍) 안시진(安時進)과 더불어 학문과 우정을 나누었다. 하달영이 세상을 떠나자 겸재가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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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백원(伯源). 죽헌(竹軒) 하성(河惺)의 아들이며, 영모정(永慕亭) 하진보(河晋寶)의 손자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하였다고 한다. 행동거지가 단정하고 발랐으며 학업이 일찍부터 이루어졌다. 약관(弱冠, 스무 살)에 동계(東溪) 권도(權濤)의 신주(神主)를 썼는데 원근의 사림들이 모두 칭찬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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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하위보(河魏寶)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하변(河忭)이며, 어머니는 성산이씨 이유눌(李惟訥)의 딸이다. 부인은 연일정씨(延日鄭氏) 정계(鄭戒)의 딸이다. 1636년(인조 14) 출생하여 일찍부터 문장에 뛰어나 주위의 촉망을 받았다. 1660년(현종 1) 25세에 생원에 합격했는데 스스로 이름을 숨기면서 성균관에 들어가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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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군학(君學).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윤청(河胤淸)이며, 어머니는 의령남씨 남천해(南天海)의 딸이다. 부인은 파평윤씨 윤성(尹惺)의 딸, 연안이씨 이우하(李遇夏)의 딸, 진양정씨 정헌주(鄭憲周)의 딸이다. 1723년(경종 3)에 출생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고 스스로 학문을 익혀 경전을 귀히 여겼다. 평생 언행에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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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용강(龍岡).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성균진사(成均進士) 단지(丹池) 하협(河悏)이며, 어머니는 진양정씨 정승훈(鄭承勳)의 딸이다. 부인은 은진송씨(恩津宋氏) 참봉 송흠원(宋欽遠)의 딸과 현풍곽씨(玄風郭氏) 통덕랑(通德郞) 곽창후(郭昌後)의 딸이다. 용강(龍岡)이라는 호를 사용한 것은, 남양 땅 와룡강(臥龍岡) 아래에 은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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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관부(寬夫), 호는 괴와(愧窩).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의 증손이다.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며 행실이 깨끗하고 발랐다고 한다. 학문을 추구할 때는 깊고 세부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썼다. 글재주가 뛰어나고 시문을 잘 지어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일찍부터 『속주지(續州誌)』를 찬수(纂修, 문서를 모아 정리하여 책으로 엮음)하였으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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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진숙(晉叔), 호는 한계(寒溪). 설창(雪窓) 하철(河澈)의 손자이다. 총명하고 슬기로움이 다른 사람에 비해 뛰어나고 문장과 필법으로 당시 선비들 가운데 이름이 났다. 약관(弱冠, 스무 살)의 나이에 향교의 교육과정을 마쳤고, 성리학에 깊이 통달했으며, 또 예학(禮學)을 밝게 익혀서 원근의 선비들이 찾아와서 물을 정도였다. 『진양속지(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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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신여(愼汝), 호는 사와(士窩). 함와(涵窩) 하이태(河以泰)의 다섯째 아들이다. 부친의 성품이 엄준하여 어릴 때부터 범절이 몸에 배어서 덕기가 어른 못지않았으며 차차 자라가면서 힘써 문사를 배워서 다듬었고 주자학 공부에 전념하여 주자서 읽기를 자신의 말을 외우는 것과 같이 하였다.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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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첨경(瞻卿), 호는 양정재(養正齋). 아버지는 대사헌에 증직된 설총(雪聰) 하철(河澈)이며, 어머니는 고령박씨 박신(朴紳)의 딸이다. 1664(현종 5) 하동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육례(六禮)에 통달하여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 부친이 별세하자 예에 따라 상을 치르고 여막을 지켰는데, 모친에게 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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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도경(道卿). 설창(雪窓) 하철(河澈)의 셋째 아들이다. 성격이 강직하고 두뇌가 명석하여 학문에 재능이 있었다. 1702년(숙종 28)에 무과에 올라 네 고을에 두루 역임하면서 모두 치적이 있었다. 비록 무로써 드러났다 하더라도 부귀영달에 뜻을 삼지 않고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그의 형 양정재(養正齋) 하덕망(河德望)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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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문충공의 후손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의 증손이며 하결(河潔)의 아들이다. 1546년(명종 1)에 태어나 상주에서 살다가 진주 금곡면 운문(雲門)으로 들어와 하씨 문중 대표로서 세 아들 하분(河濆), 하빈(河濱), 하호(河滸)와 함께 살았다. 어느 날 진주목사 이제신(李濟臣)이 병부(兵符)를 잃어버리고 진사 정대호(鄭大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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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혼원(混源). 현감을 지낸 하형(河瑩)의 손자로, 아버지는 생원 하희서(河希瑞)이며 어머니는 배천조씨로 부사를 지낸 조상(趙瑺)의 딸이다. 부인은 함안조씨로 참봉 조정수(趙廷竪)의 딸이다. 1537년(중종 32)에 출생하였으며 진주 수곡리에 살았다. 과거에 여러 번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여 사람들이 모두 애석해 하였다. 그러나 하면의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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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차해(次海). 할아버지는 창주(滄洲) 하증(河憕)이고, 아버지는 하달도(河達道)이다. 어머니는 함안조씨 주부(主簿) 조영기(趙英沂)의 딸이다. 부인은 전의이씨 승의랑(承議郞) 이전(李瑑)의 딸이다. 1630년 진주 단목리에서 태어났다. 9세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모친을 지극 정성 봉양했고, 1660년에 생원(生員)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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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자하(子賀), 호는 단주(丹州). 할아버지는 하숙(河淑)이고, 아버지는 생원 하위보(河魏寶)이며, 어머니는 진양강씨이다. 부인은 성산이씨이며, 송강(松岡) 하항(河恒)의 아우이다. 1581년(선조 14) 태어났다. 1597년 정유재란 때 17세의 나이로 왜군에게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 적이 그의 풍모와 문사가 훌륭하고 예의가 반듯하므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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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자는 시서(時瑞), 호는 연정재(煙艇齋). 쌍부헌(雙負軒) 하진룡(河震龍)의 후예이다.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1728~1807]의 문인으로 재기(才氣)가 뛰어났다. 과거 공부에는 뜻을 두지 않고 초야에 묻혀 학문에 전념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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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길보(吉甫), 호는 단사(丹砂). 치와(癡窩) 하응명(河應命)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그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고 슬기로우며 문장이 뛰어나 여러 번 향시에서 합격하였으나 부모상을 당하여 본래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후진을 양성하는 데 힘써 그 문하에서 학문을 이룬 사람이 많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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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예암(預庵) 하우현(河友賢)이며 어머니는 분성이씨(盆城李氏) 이익의 딸이다. 부인은 은율임씨 임박(林璞)의 딸이다. 1790년(정조 14)에 출생하여 10세 때 부친을 여의고 종조부인 함청헌(涵淸軒) 하이태(河以泰)에게 공부를 배웠다. 15세 때 어머니마저 별세하자 상례를 정성으로 치러 마을의 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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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응서(應瑞), 호는 지명당(知命堂).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현손이며, 하무(河楙)의 아들이다. 1661년(현종 2) 진주 수곡면 사곡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재주가 뛰어나고 견문이 넓어 문장을 만드는 데 있어서 모두 경전의 뜻을 전하였다. 당시의 학자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와 눌암(訥菴) 이광정(李光庭)과 더불어 학문과 도의를 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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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여민(汝敏). 영무성(寧無成) 하응도(河應圖)의 손자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일찍부터 학문으로 이름이 있었다.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하자 벼슬길에 뜻을 끊고 후진을 가르치고 일깨우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삼았다고 한다. 후에 경상남도 산청에 있는 덕천서원(德川書院)과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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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자는 습여(習汝), 호는 신묵재(愼黙齋). 영무성(寧無成) 하응도(河應圖)의 후손이다.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행의가 독실하고 부모에게 효행을 다하고, 동료들과의 우애가 깊었다. 상을 행함에 예의에 어긋남이 없어 향당이 모두 칭송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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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유학자. 본관은 진양. 자는 여해(汝海), 호는 관료(寬寮). 현재(顯齋) 하경현(河景賢)의 현손이다. 영민하고 학업에 자질을 보였다. 삼종숙인 조선 말기의 유학자 회봉(晦峯) 하겸진(河兼鎭)의 문하에서 학업을 받고, 면우 곽종석(郭鍾錫)의 문하에서도 수학했다. 문집으로 관료선생문집(寬寮先生文集)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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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유림. 본관은 진주. 자는 무원(武源), 호는 청계(淸溪).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의 12대 손이며, 하한주(河漢周)의 현손이다. 약관의 나이에 문장과 필법이 뛰어나 입신양명해 이름을 드러내니 사우(士友)들이 다투어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사류(士類)의 숭상할 일이겠느냐?”라고 하고는 두문불출하고 성리(性理)의 학문에만 전념하면서 후생을 가르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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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강중(康仲), 호는 예암(豫菴). 석계(石溪) 하세희(河世熙)의 현손이다. 나이 31살에 죽었으나 당시에 작은 안자(顔子)라고 칭할 정도로 학덕이 높았다. 후산(后山) 허유(許愈)가 그 묘에 표(表)하여 이르기를 ‘천자(天資)가 수미(粹美, 순수하게 아름답다)하여 등이(等夷)에서 훨씬 뛰어났고 여기에 조예가 정심한 것을 더했으며 행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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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택후(澤厚), 호는 인재(忍齋). 하호(河灝)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하윤관(河潤寬)은 일곱 살 때부터 뜻이 맑고 깨끗하며 고상하고, 품은 뜻과 행실이 발라 글을 읽을 때에도 이해가 바르고 총명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일찍부터 과거는 포기하고 다만 향시에 급제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가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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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택선(澤善), 호는 죽촌(竹村). 증조할아버지는 단지(丹池) 하협(河悏)이고, 할아버지는 용강(龍岡) 하달한(河達漢)이며, 아버지는 진사(進仕) 하첩이다. 아내는 의령남씨로 남천해(南天海)의 딸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그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성품이 온후하여 말을 빨리하거나 갑자기 얼굴빛이 변하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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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군직(君直), 호는 오오당(五吾堂). 괘곤정(掛壼亭) 하정(河瀞)의 아들이다. 두 번이나 향시에 합격했으나 최종적으로 예조에서 통과되지 못하였다. 이후 평생을 궁한 대로 살면서 검약을 지키고 학문에 몰두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자경훈몽(自警訓蒙)』과 『궁격설역리(窮格說易理)』 등의 유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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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화가. 본관은 진주. 자는 대이(大而), 호는 청천(菁川).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1449년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1376~1453]의 5세 손이다. 1536년(중종 31)에 출생하여 1568년(선조 1)인 32세에 요절했다. 1558년(명종 13)에는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수찬(修撰)을 지냈으며, 대[竹]나무를 특히 잘 그렸고, 시·서·화(詩·書·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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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성휴(聖休), 호는 치와(癡窩)이다. 타고난 자질이 영리하고 재치가 기발하였다. 효행과 우애가 돈독하였고 가학을 잘 이어받아 향시에 여러 번 합격하였다. 그러나 조용히 학문을 갈고 닦으면서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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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여등(汝登), 호는 습정재(習靜齋). 생원 하명(河洺)의 손자이며 하윤우(河潤宇)의 아들이다. 평소 효성과 우애가 지극했고, 젊었을 때 문예가 이미 숙성해서 과거 급제에 필요한 글을 짓는데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었다. 향시에 3번이나 급제했으나 1721년(경종 1)~1722년에 걸쳐 일어난 신임사옥(辛壬邪獄) 등 당쟁이 극심한 것을 보고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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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오겸(五兼), 호는 함와(涵窩). 성품이 강직하고 중후하여 집에 있으면서도 몸을 단정히 하며 한결 같이 『소학(小學)』 「내칙(內則)」으로 모범을 삼았다. 밤이 깊어서야 여러 아들과 며느리, 손자와 증손자들이 차례대로 들어와 인사를 올리게 하고 닭이 울면 세수하고 빗질하고 또 들어와서 살펴보게 하였다. 이처럼 80년을 하루와 같이 하였고, 여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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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서중(敍中), 호는 사농와(士農窩). 효자 하진태(河鎭兌)의 아들이다. 일찍이 과거를 폐하고 송성담(宋性潭)에게 사사하였으며, 경호(鏡湖) 이의조(李宜朝)와 교유하였다. 성품이 굳세고 돈독하게 배우고 힘써 행했으며 예학(禮學)에 밝아서 추앙을 받았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담상간답(潭上簡答)』과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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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임보(任甫), 호는 모송재(慕松齋). 송강(松岡) 하항(河恒)의 아들이다. 어릴 적부터 가학(家學)을 이어받아 배우면서 실천에 힘썼다. 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영남 사림을 이끌고 남명(南冥) 조식(曺植)을 문묘에 종사(從祀)할 것을 조정에 청하는 소를 올렸다. 후진 양성에 힘써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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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이보(履甫), 호는 죽와(竹窩). 하윤관(河潤寬)의 손자이며 하응회(河應會)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하일호(河一浩)는 타고난 자질이 너그럽고 후하며 마음이 넓고 깊어 사람들이 적자(赤子)의 마음을 잃지 아니했다고 평하였다고 한다. 만년에는 후학을 가르치는 것을 자기의 소임으로 삼았으며 학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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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성회(聖會). 하찬(河瓚)의 아들이다. 일찍부터 겸재 하홍도(河弘度)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하였는데 주위의 기대가 자못 컸다. 훗날 하홍도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하자 하홍도가 울면서 하직인사를 하고 추모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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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각재(覺齋) 하항(河沆)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익운(河益運)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로 박재형(朴在亨)의 딸이다. 부인은 정선전씨(旌善全氏)로 전한순(全漢淳)의 딸이다. 1852년(철종 3)에 나서 성재(性齋) 허전(許傳)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근검한 생활로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교유가 넓었다. 평소 가풍을 엄히 지켜 향리에서 높이 추앙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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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 자는 의윤(義允), 호는 동료(東寮).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경운(河慶運)이며 어머니는 은진임씨(恩津林氏)로 임찬원(林纘源)의 딸이다. 부인은 진양정씨로 정주빈(鄭周贇)의 딸이다. 1830년(순조 30)에 출생하여 8세에 친상을 당하고 15세 때는 조부인 부용담(芙蓉潭) 하필룡(河弼龍)의 상을 당하면서도 법도에 한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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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이해(爾海), 호는 괘호정(掛壺亭). 생원 하달제(河達濟)의 아들이다. 세 번이나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자리를 구하지 않고 은거하면서 학문을 강하니 후진들이 많이 와서 배웠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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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정경(鼎卿), 호는 한시당(恨是堂)이다. 나면서부터 재주가 있어 경사(經史)에 박통하였다. 그러나 성품이 가볍지 않고 강직하여 남에게 아첨하지 않았고,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구하지 아니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흠앙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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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자(字)는 군직(君直). 하자혼(河自渾)의 현손이다. 성품이 한결같이 빛나고 자유분방하였으며 좋은 풍신(風神)에 문장이 능하였다. 아름다운 산수에서 노닐기를 좋아하여 두 번이나 평양에 들어갔고, 경사(京師)에 문사(文詞)로 이름난 사람들에게 모두 시(詩)와 서(序)를 만들어 주고 다녀 수백 여 편에 이르렀다. 이로부터 온 나라의 선비들과 두루 교유를 쌓아 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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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자평(子平), 호는 창주(滄州)이다. 진주 내당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균생원인 하위보(河魏寶)이고 어머니는 참의 이윤(李綸)의 딸이다. 숙부 하국보(河國寶)에게 입양되었다. 진주 단지동에 살았다. 기질이 순후하고 지조가 독실하여 자기를 다스리기를 매우 엄하게 하였으며 독서에 충실하여 어려운 곳은 반드시 질의와 논란으로 해결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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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청백(淸伯), 호는 초정(草亭). 태계(台溪) 하진(河溍)[1597~1658]의 계제(季弟)이다.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을 따라 학문에 정진하였는데, 그 재주가 일찍부터 뛰어나 장래가 촉망되었다. 그러나 명나라가 망하자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고, 두 형과 더불어 은거하면서 생을 보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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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영서(英瑞), 호는 역헌(櫟軒). 부친은 하해호(河海浩)이며, 생부(生父)는 하수호(河壽浩)이다. 하진달(河鎭達)은 1778년 진주 단목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영특해 부모의 뜻을 어기지 않았으며, 부모를 섬기는 데는 얼굴빛을 밝게 하고 정성을 다하였다. 훗날 부모상을 다해서는 자식의 예를 다하기도 했다. 선조들의 유업을 후세에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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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字)는 탁지(卓之), 호는 겸와(謙窩). 모송재(慕松齋) 하인상(河仁尙)의 후손이다. 젊어서부터 뛰어난 자질을 바탕으로 하여 뜻을 돈독하게 하고 힘써 배웠다.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깊어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받드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여러 번 향시에 장원을 하였다.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의 문하에서 활동하였다. 동시대의 선비들이 모두 따랐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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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자추(子樞), 호는 국담(菊潭). 죽와(竹窩) 하일호(河一浩)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재주가 남달랐다. 소년시절에는 문충공 하륜(河崙)의 재실인 오방재(梧坊齋)에서 글을 읽으며 포부를 키워나갔다. 부모가 병이 났을 때는 5개월 동안 탕약을 받들면서 한 치도 예에 어긋나지 않았으며, 상을 당해서는 3년 동안 부모가 살아있을 때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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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자는 자심(子深), 호는 복와(復窩)이다. 성품이 맑고 문장에 능하였으며 학문이 깊었고, 밖으로는 의(義)를 행하여 세상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안으로는 백형(伯兄) 국담공(菊擔公)과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교유하였고, 밖으로는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의 문하생들과 두터운 친분을 나누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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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자는 자앙(子仰), 호는 모죽재(慕竹齋). 조선시대 진주 지역의 선비인 죽와(竹窩) 하일호(河一浩)의 아들이다. 부모에 대한 효심이 깊고, 형제간의 우애가 지극하였다. 젊어서부터 스스로를 자제함에 부족함이 없었으며, 형제들이 모두 학문에 정진하여 각각 이름을 높이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평생토록 그 부친의 삶과 학문을 섬기고 사모하여 작은 재실을 짓고, ‘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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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사중(師仲), 호는 용와(容窩). 함와(涵窩) 하이태(河以泰)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그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종형인 예암공 하우현(河愚顯)을 따라 글을 읽다가, 부친의 명으로 남계(南溪) 이갑용(李甲龍)의 문하에 들어가 정식으로 학문을 연마하였다. 여러 번 서울로 과거를 보러갔으나 담당자가 뇌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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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자는 중진(仲珍).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둘째 아들이다.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와 더불어 도의로 사귐이 매우 친밀하였다. 하찬(河瓚)이 죽자 하홍도가 묘명(墓銘)을 찬(讚)하여 친분을 과시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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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자는 태화(太和), 호는 수긍(守肯).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중제(仲弟)이다. 각재(覺齋) 하항(河沆)[1538~1590]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79년(선조 12)에 생원에 합격하여 찰방(察訪)에 제수되었다. 문장에 능하여 시문이 고상하고 절묘하다는 평을 들었다. 역학(易學)에 조예가 깊었으며, 유집이 전한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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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자는해숙(解叔)이다. 진주 서신대에 살았다. 원래 남명을 보고 『근사록』을 배웠다. 이후 수우당 최영경(崔永慶)의 문하에 들어갔다. 도량이 컸고 외화내강(外和內剛)하여 최영경이 중히 여겼다. 부모를 섬김에 있어 정성을 다하여 조금이라도 감히 소홀함이 없었다. 사림(士林)의 풍도를 잃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불행히도 일찍 죽어 애석해 하였다. 『진양지(晋陽誌)』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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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백응(伯應), 호는 설총(雪聰) 또는 설창(雪牕). 조선 중기 진주지역의 학자로 이름이 높았던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가 큰아버지이고, 하홍달(河弘達)이 부친이다. 어려서부터 백부 하홍도 밑에서 수학하였다. 천성이 총명하여 겸재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17세 때 연이어 부모상을 당해 극진한 예로써 장사와 제사를 받들고, 상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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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굉지(浤之). 고려 명신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이며 어머니는 일선김씨(一善金氏)로 대사헌을 지낸 송파(松坡) 김지경(金之慶)의 딸이다. 부인은 남양홍씨로 현감을 지낸 홍억령(洪億齡)의 딸이다. 1469년(예종 1)에 출생하여 1496년(연산군 2)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참봉을 지냈다. 당시 연산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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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양지(洋之). 아버지는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이며 어머니는 일선김씨(一善金氏)로 대사헌을 지낸 송파(松坡) 김지경(金之慶)의 딸이다. 부인은 전주이씨로 이정귀(李正貴)의 딸이다. 1472년(성종 3) 출생하여 1496년(연산군 2)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천성이 지극히 순하여 어기는 일이 없어 사림의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진주 백곡에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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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내윤(乃潤), 호는 사연(舍淵). 하자호(河自灝)의 현손이다. 집이 가난하여 몸소 밭을 갈고 글을 읽었다. 부모를 섬김에 정성을 극히 하였다. 만년에는 방장산(方丈山) 가운데에 살면서 학문에 진력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선비의 본분인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몸소 실천한 진주의 대표적인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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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사흘(士屹)이고 호는 사고헌(四顧軒)이다. 습정재(習靜齋) 하응운(河應運)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성품이 강직하여 선행(善行)에 앞장섰다고 한다. 일찍이 여러 선비들과 더불어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과 동춘(同春) 송준길(宋浚吉)을 문묘에 종사할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일찍이 이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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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이태(而泰).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 하륜(河崙)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형조참의를 지낸 하득형(河得亨)이며 어머니는 단양장씨(丹陽張씨)로 장식(張植)의 딸이다. 부인은 고령신씨(高靈申氏) 신기한(申起漢)의 딸이다. 1695년(숙종 21)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학문을 열심히 연마하였다. 숙종 대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할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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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자상(子常), 호(號)는 송강(松岡). 안주목사 하우치(河禹治)의 증손이고, 아버지는 생원(生員) 하위보(河魏寶), 어머니는 사천이씨(四川李氏)이다. 아내는 참의(參議) 정륜(鄭綸)의 딸 진주정씨(晋州鄭氏)이다. 어린 시절부터 성리학에 전념하였을 뿐 아니라, 부모 섬기는데 효성이 지극하여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어머니 상(喪)을 당하여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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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한경(漢卿), 호는 일헌(一軒). 집의를 지낸 하진(河溍)의 아들이다. 1634년(인조 12)에 출생하여 나이 13세에 허목(許穆)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며, 성년이 되어서는 조선 중기 진주지역의 학자인 하홍도(河弘度)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남명 조식(曺植)의 학문을 사숙하였다.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덕천서원(德川書院)을 중심으로 남인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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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자기(子幾), 호는 단지(丹池). 아버지는 생원 하위보(河魏寶)이다. 1583년(선조 16) 출생하여 1606년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세상이 어지러우므로 과거시험을 접고 초야에 묻혀 소요하면서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등과 교유하였다. 사람됨이 자상하고 얼굴과 기상이 단아하며 효우가 천성에서 나와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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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치원(致遠), 호는 낙와(樂窩). 인조 때의 학자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의 아우이다. 어려서부터 도량이 넓었으며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출세를 포기하고 성리학에 전심하였다. 문장이 간결하고 필법이 힘찼으며, 천문과 산학, 의약과 병가(兵家)의 학문 뿐 아니라 활쏘기와 말 타기에까지 능통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다. 만년에 형 하홍도를 따라 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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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중원(重遠), 호는 겸재(謙齋). 아버지는 하광국(河光國)이며, 어머니는 강양이씨(江陽李氏)로 이광우(李光友)의 딸이다. 1593년(선조 26)에 출생하여 1666년(현종 7) 73세로 별세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상을 정성껏 치렀으며, 옛 성현과 같이 되겠다는 큰 뜻을 가지고 스스로 몸가짐을 엄숙히 하였다. 촌부(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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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성오(省吾). 영무성(寧無成) 하응도(河應圖)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따르면 일찍부터 가풍을 이어 받아, 학문을 좋아하여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옛 성현의 글을 마음에 두고 깊이 새겨 당시의 선비들이 군자다운 사람이라고 칭송하였다고 한다. 감사 우복룡(禹伏龍)은 효우(孝友)스럽고 독실한 선비라고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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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신백(愼伯). 한여철(韓汝哲)의 아들이다. 1590년(선조 23)에 생원에 합격하였다. 집에서는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깊었으며 주변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도 돈독하였다. 그의 나이 약관(弱冠, 스무 살)이 못되어 부친상을 당하였는데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아우 한응(韓膺)을 가르치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우에게 항상 ‘네가 성인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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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신중(愼仲). 한여철(韓汝哲)의 아들이며 한계(韓誡)의 아우이다. 친구를 접대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신의로 하였고, 그 주장이나 의견이 항상 반듯하여 그 또래의 친구들이 항상 듬직하게 여기며 어려워하였다. 형 한계(韓誡)와 더불어 형제가 모두 사람에게 간언(間言, 이간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떠나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