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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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通手- |
영어의미역 | Tongsubawi Rock |
이칭/별칭 | 「장군바위」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 |
집필자 | 박종익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에서 통수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92년 논산군에서 출간한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5-상월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와 충청남도 계룡시 옛 부남리 산 경계에 우뚝 솟은 두 개의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통수바위 또는 장군바위라고 한다.
옛날 계룡산 서남쪽 계룡봉 아래에 부부가 살았다. 이들 부부는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금슬이 좋아 인근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다만 슬하에 자식이 없어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청수를 떠다 놓고 계룡산 산신령에게 치성을 드렸다.
이렇게 10년 동안 빌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부인의 꿈에 계룡산 산신령이 나타나 말하기를 “너희 정성이 갸륵하여 옥동자를 내려보내리라. 지금 곧 너희 집 뒤 쌍바위에 올라가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부부는 산신령의 지시대로 쌍바위에 올라가 보았다. 그곳에는 산신령의 말대로 비단 보자기에 싸인 옥동자가 있었다. 보자기를 열어 보니 아기의 가슴에 통수(通手)라 쓰여 있었다. 부부는 통수를 아기 이름으로 정하고 정성껏 길렀다.
통수는 자라면서 기골이 장대할 뿐 아니라 총명하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통수를 보면 “장수가 났다.”고 칭찬하였다. 6세가 되던 해부터 통수는 집에서 5㎞ 떨어져 있는 등잔바위 아래 면경(面鏡)바위에 나아가 낮에는 무예를 닦고 밤에는 글공부를 하였다. 이러한 통수의 무예와 글공부는 인근에서 따를 자가 없었다. 통수는 훗날 훌륭한 장수가 되어 청나라 오랑캐의 침범 때에 큰 공을 세웠다. 이러한 유래가 전한 이후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통수바위 아래에서 자식을 비는 관습이 생겼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통수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기자 출생’과 ‘산신령의 지원’이다. 산신령의 지원으로 얻은 옥동자가 훌륭한 장수가 되어 오랑캐를 물리쳤다는 인물담이자 옥동자가 발견된 쌍바위를 통수바위라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통수바위」는 부부의 기도로 얻은 아기가 성장하여 훌륭한 장수가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아기를 얻는 과정에서 기자(祈子) 모티프를 볼 수 있다. 초월자에게 빌어 뛰어난 아기를 얻으려는 부모의 정성이 나타나며, 이러한 기도에 감응한 산신령이 직접 아기를 내려 주었는데 이는 보편적인 기자를 통한 득자(得子)의 과정과 다른 것이다. 보통 기자 이후 신령의 선몽을 통한 점지와 기원자의 아기 잉태 과정을 통하여 아기가 출생하는 것과는 다른 파격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