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950 |
---|---|
한자 | 金仁玉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호근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찬식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에서 활동한 무극대도교 항일 활동가.
[가계]
본관은 경주. 1873년 서귀면 호근리 1729번지에서 김여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무극대도교는 1927년 4월 창시된 천도교 계통의 신흥 종교로서 평양에 본부를 두어 외세 및 서교 배척을 교의로 한 민족 종교였다. 제주에는 한의원을 경영하던 강승태에 의해 전교되었는데, 강승태는 안덕면 동광리에 포교 본부를 두고 제주도의 교주라고 자처하였다. 또한 정도령이 나타나 조선을 독립시킨 다음 전 세계를 지배할 것이며, 그때가 되면 무극대도의 신도들은 성인의 반열에 올라 영원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그의 주장을 듣고 모여든 신자가 1,000여 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날로 교세가 늘자 1937년 12월 13일 제주경찰서의 다니모도[谷本] 고등계 주임은 무극대도교 교주 및 교도를 「치안유지법」·「총포수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일제히 검거하였다. 10개월에 걸친 심문 끝에 교주 강승태 이하 67명을 광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 그 중에서 23명은 구속하고 44명은 불구속으로 송치하였다. 일제 당국은 민족 종교인 무극대도교를 사교(邪敎)로 매도하여 탄압함으로써 자연 교세는 소멸되었다.
구속된 신도 가운데 21명이 기소되었는데, 김인옥(金仁玉)은 1940년 12월 4일 광주지법에서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김인옥은 1958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