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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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致伯 |
이칭/별칭 | 김백옥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찬식 |
일제 강점기 독립군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한 서귀포 출신 항일 운동가.
본관은 경주. 일명 김백옥. 1897년 서귀포시 중문면 중문리 2030번지에서 김성규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 임시정부에서 독립군 자금을 모금하자 조선독립희생회 소속 김창규는 그해 5월 서울에서 최정식·조봉호와 접촉하여 독립희생회를 제주 지역에 조직해 줄 것과 회원 1인당 2원씩 군자금으로 모금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최정식이 제주에 내려와 독립군 자금 모금활동을 할 때, 모슬포에서 잡화상을 경영하던 김치백(金致伯)은 최정식의 집에서 등사판을 이용하여 취지문을 인쇄하였고, 이를 제주도 내 각지에 배부하여 군자금 모금을 권유하였다. 그 결과 4,450명으로부터 1만원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로 송금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 경찰은 조봉호·최정식·김치백 등 60여 명을 체포하였다. 1919년 9월 25일 광주지법 제주지청에서 재판을 받은 결과 김치백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김치백은 1964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