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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982
한자 坦泳
영어음역 Tannyeong
이칭/별칭 환응(幻應)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배옥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율사
출신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성별
생년 1847년연표보기
몰년 1930년 4월 7일연표보기
본관 김해

[정의]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승려.

[개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성은 김씨(金氏)이다. 법호는 환응(幻應)이다. 184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아버지 김기우(金基愚)와 어머니 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탄영(坦泳)은 14세에 선운사로 출가하여 성시(性諡)를 은사로 득도하였고, 탄영이란 법명을 받았다. 출가에 이어 보월(寶月) 선사에게 사미계(沙彌戒)를 받고, 16세부터 백양사 운문암에 주석하던 경담(鏡潭)에게 내전(內典)을 두루 배웠고, 19세 되던 1865년에는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그 뒤 8년간 전국의 고승들을 찾아다니며 교학(敎學)과 선학(禪學)을 닦았는데, 특히 엄격하게 계율을 실행하여 율사로서 명망이 높았다.

순창 구암사의 설두(雪竇)와 순천 송광사의 우담(優曇) 화상에게 교학을 깊이 공부한 탄영은 31세에 경담에게 입실(入室)하여 환응이란 법호를 받았다. 이후 백암산 운문암에서 25년간 강석(講席)을 열어 화엄대교(華嚴大敎)를 선양(宣揚)하고 학인(學人)을 지도하였다. 또한 백양사와 산내 암자인 청류암(淸流庵)에서도 후학을 지도했고, 운문암 곁에 우은난야(愚隱蘭若)를 짓고 참선에 몰두하였다. 이즈음 청류암에 신식 교육 기관 광성의숙을 건립한 것도 탄영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1912년, 일제의 사찰령으로 전국의 사찰이 31본산 체제로 개편된 뒤 대중의 간청으로 백양사 주지를 맡아 3년간 승풍(僧風)과 기강을 바로잡는 데 주력하였으며, 1915년에는 광성의숙의 숙장 겸 강사로 제자들을 양성하는 데에 힘썼다. 1917년 선운사로 돌아가서 율전(律典)을 강의하였다. 1921년 제자 호명(浩溟)이 선운사 주지가 된 후 동운암(東雲庵)에 자리 잡았다. 1929년 1월 7일 개최된 조선불교선교양종(朝鮮佛敎禪敎兩宗) 승려대회에서 교정(敎正)으로 선임됐다. 교정은 지금의 종정(宗正)으로, 조선 불교에서 차지한 탄영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한암(寒岩)[혹은 漢岩]·해담(海曇)·동선(東宣)·한영(漢永)·용허(龍虛)·경운(敬雲)이 함께 교정으로 추대되었다.

1930년 음력 4월 7일 오전 11시에 선운사에서 세속 나이 84세, 법랍 70세를 일기로 목욕재계하고 조용히 입적(入寂)하였다. 다비 후 13과의 사리가 나왔는데, 수습된 사리가 사흘이나 빛을 내는 신이(神異)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후학으로 호명·영호(映湖)·만암(曼庵)·종래(鐘來)·장조(長照)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42년 6월 선운사에 비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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