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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복지의 산실, 천사의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016
한자 兒童福祉-産室天使-집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110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준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3년 9월 23일 - 천사의 집 설립
천사의 집 -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지도보기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에 위치한 아동 양육 복지시설.

[개설]

제주도 최남단에 위치한 ‘천사의 집’은 1943년 9월 제1대 김운용 원장이 인천에서 의지할 곳 없는 부랑아들을 돌보면서 출발하였다. 김운용 원장은 인천 선화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고아 스무 명을 보살피고 있었다. 이후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김운용 원장은 ‘사랑의 집’을 별도로 마련하여 전쟁 고아 및 일반 고아 일흔 명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으로 1951년 1·4후퇴 때 제주도 성산포로 피난을 가게 되었고, 이때 승선 불가로 어쩔 수 없이 고아 20여명만 데리고 나와 성산포에서 생활을 시작하였다.

[제주도에 아동 보호시설을 세우다]

1953년에는 아동들의 교육 문제로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에 머물며 제주 육군 제1훈련소 장병들의 도움을 받아 약 80평 크기의 돌담집[아동 숙소]을 신축하고 전쟁 고아와 일반 고아 120명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아동복지의 산실 천사의 집’ 탄생 배경이다.

천사의 집’은 이후 남제주군 대정읍 하모리 1100번지에 숙소를 마련하고 전쟁 고아 및 일반 고아들을 보호·양육하기 시작하였고, 1956년 10월에는 재단법인으로 설립 인가를 받아 아동 양육시설로서 제도적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당시의 입소 인원은 140명[전쟁 고아 120명, 일반 고아 20명]이었으나, 현재는 그 인원이 크게 줄어 평균 60~70명가량이 입소하고 있다.

1987년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37㎡ 부지에 330여 평 규모의 생활관 1층을 증축하였으며, 1997년 1월에는 사회복지법인으로 인가를 받았다. 2000년에는 별관 1·2층을 다시 증축하였고, 2003년 12월에는 120,171㎡ 규모의 생활관이 완공되었다. 2004년 12월에는 본관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현재의 시설 형태를 갖추었으며, 동시에 ‘대정지역 아동센터’를 개소하였다.

한편 ‘천사의 집’ 임직원들은 입소 아동들이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 기울여, 2007년 7월과 2011년 5월에는 보건복지부 아동시설 평가 결과 전국 274개 시설 중 A등급에 선정되어 인센티브를 받기도 했다.

[120명 고아의 어머니로 살아가기]

김운용 원장과 함께 ‘천사의 집’을 설립한 제2대 박희순 원장은 18세의 어린 나이에 남편인 김운용 원장과 결혼하여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의지할 곳 없는 아이들을 돌보며 ‘천사의 집’을 꾸려 왔다. 박희순 원장과 인터뷰했던 고혜경의 글을 보면, ‘천사의 집’ 운영에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다음은 박희순 원장과 인터뷰했던 고혜경[2006년]의 글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이다.

식당에서 남는 이익금으로 6·25전쟁 당시 전쟁 고아들을 입히고 먹이고 하면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제주 성산포로 내려와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면서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고, 겉보리와 겉수수, 솔잎 등을 줍고 맷돌질 등을 하면서 비지를 얻어다 먹으며 생활을 하였지요. 수도나 전기도 없던 시절이라 추운 겨울에 많은 분량의 빨래를 리어카에 싣고 시커먼 말똥비누로 빨래를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벼룩이나 이가 왜 그렇게 많던지 저녁에 그것들을 잡곤 했는데…… 당시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자식들한테 너무 미안합니다. 자식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고, 아이들과 똑같은 검정 고무신에 어깨에 책가방을 메고 다니게 했습니다. 병원에도 가기 힘든 시절이라 아픈 아이들을 직접 돌보며 치료하고 아이들의 머리 또한 직접 다 손질해 주었습니다. 당시 외국의 원조가 있던 시절에, 많은 힘은 들었지만, 저희는 외국 원조를 받지 않고 운영해 나갔습니다.

현재는 2009년 5월 취임한 제3대 김성숙 원장이 선대 운영자들의 설립 취지와 운영 철학을 이어받아 지역사회의 아동복지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천사의 집 운영철학]

천사의 집’은 아동 양육시설로서 기본적으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들에게 생활보호, 교육보호, 취업 및 학업지도, 직업훈련, 결연사업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천사의 집’ 임직원들은 다음과 같은 운영 철학을 바탕으로 입소 아동들이 정서적·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여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천사의 집 운영 철학

원훈 : 스스로 행동하며 서로 사랑하자

첫째. 21세기가 요구하는 창의적이고 성실한 일꾼으로 키운다.

둘째. 비록 가족과 떨어져 시설에서 양육되나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어디에서나 당당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 주는 데 주력한다.

셋째. 특기 적성별로 전문 지식을 습득케 하여 사회에서 낙오됨이 없이 건전한 사회인으로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넷째. 자신의 사회에서 받은 사랑을 갚을 줄 알고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경천애인사상 인격으로 양육시킨다.

[천사의 집 프로그램]

천사의 집에서는 첫째, 입소 아동들의 정서 함양과 심리 안정을 목적으로 첼로·플루트·요들 등의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적 재능을 키운 아동들은 각종 예술제 및 문화 행사에 초청될 뿐만 아니라 여러 음악제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 중에서 2003년 시설 아동 정서 함양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제주시립교향악단 김원택 상임단원의 도움을 받아 탄생한 ‘엔젤첼로 앙상블’은 2005년 12월 창단 연주회를 시작으로 각종 사회단체 행사 참여와 더불어 정기 연주회를 열고 있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인해 ‘엔젤첼로앙상블’은 2010년 9월 ‘제12회 푸르덴셜 전국중고생 자원봉사대회’에서 여성가족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입소 아동들로 구성된 ‘작은 알프스’ 요들단은 요들송 전문가인 방윤식 선생의 도움으로 요들 발성과 스위스 민속 악기를 지도받고 있다. ‘작은 알프스’는 2003년 창단 이래 각종 예술제 및 연주회에 참가하고 있으며, 2009년 5월에는 ‘보건복지가족부장관배 꿈나무 예술제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작은 알프스’는 스위스 요들축제위원회로부터 초청장을 받아 2011년 6월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열린 스위스요들축제에 참가하기도 했다. 당시 초청장을 받았지만, 열악한 시설 재정으로는 여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대회 참가를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였으나, 언론을 통해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기업 등 여러 기관의 도움으로 무사히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둘째, 특기 적성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입소 아동들에게 수화·태권도·미술·피아노·합기도 등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셋째, 정서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캠프와 체육대회, 공연 관람 등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넷째, 기관 내 놀이시설을 개방하여 지역사회 아동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진로 탐색, 직업 체험, 품성 및 예절 교육, 요리 실습 등 퇴소 후의 자립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천사의 집’은 지역사회 아동 및 주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시설을 개방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수화 교육과 종이 접기 등의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아동복지시설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제거하고 지역사회와의 일체감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동복지의 뿌리, ‘천사의 집’]

천사의 집’은 2011년 현재 70명 정원 중 67명[남 40, 여 27명]의 아동들을 보호하고 있으며, 김성숙 원장을 비롯한 20여명의 직원들이 입소 아동들에게 가정과 같은 아늑한 분위기와 환경을 제공해 주도록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이 시설은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모슬포 바다와 맞닿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시설의 입구에는 “사랑이 머무는 곳”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천사의 집’이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어 찾는 이들로 하여금 편안한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전해 준다.

제주의 사회복지 역사에서 ‘천사의 집’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1950년대 당시 한국사회는 6·25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전쟁고아들을 발생 시켰다. 이로 인해 의지할 곳 없는 아동들을 수용하고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으며, 한국은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으로 시설 보호를 선택하였다. 더구나 1·4후퇴 당시 제주도는 외부에서 피난 온 많은 전쟁 고아들이 있어,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고아원 또는 보육원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현대적 의미에서 제주도 최초의 사회사업은 4·3사건과 6·25전쟁으로 발생한 고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고아원이나 보육원 등과 같은 보호시설 설립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천사의 집’은 서귀포시 아동복지의 뿌리라고 표현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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