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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171
한자 邑城聚落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집필자 오상학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일대에 축조된 읍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취락.

[개설]

읍성은 전 근대 시기 고을의 읍치에 축조되었는데, 행정의 중심지뿐만 다양한 기능이 집중된 공간이기도 하다. 읍성은 해안의 고을처럼 외적의 방어를 목적으로 축조되기도 하지만, 고을의 중심 공간의 권위를 상징하는 차원에서 건설되기도 한다. 읍성이 축조된 취락은 조선 시대 고을의 중심지로 기능하게 되는데, 동헌을 비롯한 관청 건물과 향교·사직단·여제단·성황단 등의 제사 공간 등이 위치하게 된다. 이러한 읍성 취락은 일제 강점기에 들어 일제에 의한 식민지 지배를 위한 공간 재편에 의해 급속하게 변모하였는데, 대부분의 읍성이 훼손되고 시가지의 확장으로 원형이 거의 상실되게 되었다.

[연원/역사적 관련 사항]

조선 시대 서귀포 지역에는 정의현성대정현성이 축조되었는데, 현재도 남아 있다. 정의읍성은 1423년(세종 6)에 축조되었고 표선면 성읍1리에 위치한다. 『제주읍지(濟州邑誌)』의 기록에 의하면, 18세기 후반 당시 성 둘레는 2,986척(尺)[약 9,850m], 높이는 13척(尺)[약 4m]이었으며, 동·서·남쪽에 세 문이 있었고, 성안에는 빗물을 받아 둔 우물 두 곳이 있었다고 한다. 성곽은 각이 없는 네모의 형태이고 직경이 약 770m 정도이다. 마을 공간은 우리나라 읍성에서 많이 보이는 형태로, 동서축 도로를 따라 동문과 서문이 설치되어 있고, 이 도로를 남쪽으로 연결한 곳에 남문이 설치되어 있다. 중앙에서 북쪽으로는 주로 관청들이 들어서 있고, 남쪽에는 민가가 혼재된 모습을 띠고 있다. 동북쪽에는 수령의 집무처인 동헌, 그 남동쪽으로는 객사가 있으며, 향교는 다른 고을과 달리 읍성의 서문 안에 위치해 있다.

대정현성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1418년(태종 18) 봄 대정 현감(大靜縣監) 유신(兪信)에 의해서 축조되었는데, 대정읍 보성리안성리에 위치한다. 당시에는 동·서·남쪽 각각에 문이 있었고, 문 위에는 문루(門樓)가 설치되어 있었다. 『탐라기년(耽羅紀年)』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성의 주위는 2,800여 척(尺)[약 9,240m], 높이는 10여 척(尺)[약 3.3m]이었다. 성안에는 우물 1개소, 동·서·남쪽 삼문에는 각 네 기의 옹중석이 설치되었다.

[현황]

현재 정의읍성 주위에는 성읍 민속 마을을 비롯하여, 건축학적 및 민속학적인 가치가 뛰어난 다섯 건의 가옥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는 등 국가 지정 문화재로 여섯 곳이 지정·보호되고 있다. 한편, 대성읍성지 안에는 김정희 적거비(金正喜謫居碑)삼의사비(三義士碑)·정온 유허비(鄭蘊遺墟碑), 그리고 돌하르방 열두 기가 있다. 주위에는 민가들이 들어서 있으며 보성 초등학교가 남쪽에 위치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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