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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550
한자 河源洞耽羅王子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 산21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강창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9년 3월 15일연표보기 - 하원동 탐라왕자묘 발굴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9년 4월 25일연표보기 - 하원동 탐라왕자묘 발굴 완료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0년연표보기 - 하원동 탐라왕자묘 발굴 조사
문화재 지정 일시 2000년 6월 21일연표보기 - 하원동 탐자왕자묘 제주도 기념물 제54호로 지정
보수|복원 시기/일시 2001년연표보기 - 하원동 탐라왕자묘 보수
소재지 하원동탐라왕자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 산21번지 외 2필지지도보기
성격 분묘
소유자 정금선
관리자 서귀포시
문화재 지정 번호 제주도기념물 54호[2000년 6월 21일]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에 있는 고려 말~조선 초 돌덧널무덤[方形石槨墓] 떼.

[개설]

이원조의 『탐라지초본』, 『대정군읍지』와 김약익의 『심재집』 등 문헌 기록과 지역의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탐라 왕자의 무덤이라 한다. 그러나 무덤은 3기이며, 형태로 보아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제주도 지역에서 만들어진 돌덧널무덤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제주도에서는 돌덧널무덤[方形石槨墓]이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유력집단의 묘제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방형분은 모두 능선상에 입지하며 부부묘역이거나 집단묘역을 이룬다. 먼저 지형을 평평하게 깎은 뒤 판석을 사용하여 장방형으로 석곽(石槨)을 돌려 축조하고 정 중앙에 북향으로 목관을 안치하는 외석곽(外石槨) 내목관(內木棺)의 장방형 석곽목곽분 형태이다.

[위치]

하원동 탐라왕자묘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 산21번지 외 2필지에 자리한다. 묘역은 해발 224m의 나지막한 능선상에 자리하며 이 곳 지명을 ‘웃간장’이라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묘역이 있는 곳을 가래천 변의 ‘왕자묘[골]’이라 부른다. 분묘가 자리한 위치가 한눈에 보아도 풍수지리를 염두에 두었음을 알 수 있으며 맨 상단의 묘가 가장 좋은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발굴조사는 2000년 제주사정립사업추진협의회에서 탐라사(耽羅史)를 정립하려는 일환으로 학술 발굴조사로 실시되었다.

3기의 분묘가 자리한 능선을 보면 3호분이 가장 중심 지형에 있다. 그리고 1호분의 지형이 가장 가파르다. 1호분의 조성은 상당한 시간과 인력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곽의 구조와 각종 석물[비석좌대, 등잔, 문인석]과 계단시설, 축대등으로 미루어 3기의 분묘 중 가장 세력이 있을 때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2호분의 남쪽 테두리 돌담이 1호분의 북쪽 테두리돌담[曲墻]에 상부로 지나가면서 1호분의 석열을 다소 파괴하였다. 즉 1호분과 2호분의 테두리 돌담(護石)이 서로 중복되어 있다. 1호과 2호분의 피장자는 서로 강한 연관이 있다.

3호분은 능선의 균형적인 배치상태로 보아 가장 선행하는 묘제로 보인다. 3호분에서 소옥과 관정, 청동그릇편이 수습되었다. 그리고 석곽상부는 미석렬(楣石列)이 있다.

따라서 동분묘군의 서열은 3호분이 먼저 축조되고 다음으로 1호분이, 마지막으로 2호분이 축조되었다.

3호분은 유물로 보아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 해당하고 1호분과 2호분은 조선 초기로 판단된다. 『국박유리원판』[140100번] ‘가래천변 장군총 출토유물’이 확실하다면 15세기 중엽에서 16세기 초에 2호분을 축조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형태]

하원동 탐라왕자묘는 지경 100m 안에 능선을 따라 나란히 3기가 배치되어 있다. 맨 위에 축조된 묘는 단독으로, 중간과 맨 하단의 묘는 2기가 겹쳐있다. 맨 상단의 묘는 북동으로 20도 정도 틀어져 있고 그 밑에 위치한 묘 2기는 거의 같은 방향으로 축조되어 있다. 능선 맨 아래쪽의 묘를 2m 높이의 축대를 만들어, 밖에서 보면 상당히 거대한 묘역을 연상하게 한다. 특히 3단구성의 축대와 곡장형태의 돌담을 만들어 성역화하였다. 이 묘는 전체적으로 보면 계단식 석곽분이다. 3기의 위치, 묘곽 구조, 석곽 규모, 중복 관계를 통해 확인된 서열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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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 유물]

이 묘제에서 출토된 유물은 1914년과 1999년 수습 유물로 나뉜다. 먼저 1914년 출토 유물은 백자병·백자대접·백자접시·청동사발·대접·청동가위 등이다. 1999년 유물은 3호분 출토유물로 청동제사발·소형구슬·철제관정 등이다. 석물로는 1호분 전면 우측에 문인석이 마주보고 서 있으며 두부(頭部)가 소실되어 있다. 좌측의 문인석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 이전 되어 보관중이다. 1호분 전면에서 소형 비좌(碑座)와 옥개석(屋蓋石), 각 등잔 등이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 묘제는 제주시 화북동 거로마을에 위치한 화북동 거로능동산묘와 비교된다. 특히 화북동 능동산 1호 묘는 하원동 2호 묘와 축조방법이 같으며 화북동 2호 묘와 하원동 1, 3호 묘의 축조방법과 장법, 묘제의 형태가 동일하다. 1호분에서 출토된 초기백자편은 『국박유리원판』에 소개된 1914년 수습 하원동분묘 도자기 유물세트와 같은 시기유물이다. 따라서 하원동 탐라왕자묘는 고려 말~조선 초기 도내 유력집단의 묘제로 제주 돌덧널무덤[方形石槨墓]의 대표적인 자료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