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561
한자 東日里支石墓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1619
시대 선사/철기,고대/초기 국가 시대
집필자 김경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10월 5일연표보기 - 동일리 지석묘군[1~4호] 제주도 기념물 제2-38~4호로 지정
소재지 동일리 지석묘군[1~동일리 지석묘 4호]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1619번지 일원지도보기지도보기지도보기지도보기
성격 지석묘
크기(높이, 지름) 동일리 지석묘 1호:길이 205㎝, 폭 155㎝, 두께 40㎝|동일리 지석묘 2호:길이 253㎝, 폭 190㎝, 두께 60㎝|동일리 지석묘 3호:길이 218㎝, 폭 195㎝, 두께 65㎝|동일리 지석묘 4호:규모는 길이 255㎝, 폭 210㎝, 두께 35~52㎝
소유자 사유
관리자 사유
문화재 지정 번호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38호, 39호, 40호, 4 동일리 지석묘 1호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일원에 위치한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 무덤 유적.

[개설]

동일리 지석묘군은 초기철기~원삼국시대의 주변 마을을 조성했던 당시 주민들이 축조한 무덤유적으로 동일리 고인돌은 서귀포시 서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1614번지, 1628번지 외 3필지[동일리 지석묘 1호], 1607번지[동일리 지석묘 2호], 1619번지[동일리 지석묘 3호], 1619번지[동일리 지석묘 4호]에 각각 축조되어 있다. 가시악(加時岳)[106.5m 오름] 하단의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동일리 지석묘군은 아직까지 정식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 동일리 지석묘 1호 고인돌은 다른 고인돌 군과 대략 200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덮개돌의 형태를 보면 한 변이 긴 오각형을 취하고 있다. 긴 쪽의 방향은 북에서 동쪽으로 약 30° 가량 기울어져 있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205㎝, 폭 155㎝, 두께 40㎝이다. 고임돌은 덮개돌 아래를 돌아가면서 낮은 돌을 9매 고여 놓았다.

동일리 지석묘 2호 고인돌은 덮개돌의 형태가 타원형에 가깝다. 긴 쪽의 방향은 북에서 서쪽으로 25° 정도 기울어져 있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253㎝, 폭 190㎝, 두께 60㎝이다. 고임돌은 전체적으로 9매가 낮게 고여 있는데 2중으로 고인 쪽과 막바로 지표에 닿은 쪽도 확인된다.

동일리 지석묘 3호는 덮개돌의 형태가 타원형에 가깝게 이루어져 있다. 긴 쪽의 방향은 북에서 동쪽으로 35° 정도 기울어져 있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218㎝, 폭 195㎝, 두께 65㎝이다. 고임돌은 모두 5매 정도가 확인된다.

동일리 지석묘 4호 고인돌은 동일리 지석묘 3호 고인돌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덮개돌은 높낮이가 다른 경계에 축조되어 있어 일부 흙에 덮여 있는 상태이다. 덮개돌의 형태는 타원형에 가깝다. 긴 쪽의 방향은 북에서 서쪽으로 45° 정도 기울어져 있다. 규모는 길이 255㎝, 폭 210㎝, 두께 35~52㎝이다. 고임돌은 3매 정도가 확인되며 잘 다듬은 고임돌은 원상에서 이탈되어 있다.

동일리 지석묘 5호는 현재 사라지고 없는 상태이다. 기존 조사에 따르면 덮개돌의 형태가 불규칙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긴 쪽의 방향은 북에서 서쪽으로 65° 정도 기울어져 있다. 규모는 길이 176㎝, 폭 140㎝, 두께 40㎝이다. 고임돌은 모두 5매 정도가 확인된다.

[현황]

동일리 지석묘군은 모두 5기가 축조되었으나 현재는 1기[5호]가 사라진 상태이다. 나머지는 동일리 지석묘 1호를 제외하고 동일리 지석묘 2·3·4호는 가까운 곳에 모여 있다. 고인돌이 축조된 지역은 현재 대부분 경작지로 활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동일리 지석묘군은 주변에 위치한 일과리 고인돌과 함께 다수가 확인되고 있다. 또한 일과리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적갈색 경질토기와 함께 다수의 수혈(竪穴)[움집터]가 확인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초기철기~원삼국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동시기 일과리동일리 일대에 대규모 마을유적이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