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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974
한자 吳維鵬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토평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찬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3년연표보기 - 오유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4년 5월 - 오유붕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다 검거됨
성격 항일 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일제의 식민지 정책 반대 운동

[정의]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서귀포 출신의 항일 학생 운동가.

[가계]

본관은 군위. 1923년 당시 서귀면 토평리 2250번지에서 오성태의 아들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오유붕(吳維鵬)은 일찍이 서귀보통학교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거주하며 낮에는 동맹통신사 창고계에 근무하고 밤에는 와세다실업학교 야간부에 다녔다. 같은 학교의 김신형[일명 김굉가]의 지도로 일본인의 민족적 차별 정책에 저항하여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조선 유학생들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1941년 직장에서 받는 노임이 일본인과 현격한 차이가 나는 것에 격분하여 직장의 조선인 동지 4명과 함께 독립의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1942년 8월 중순경 도쿄에 사는 동포를 목표로 해서 동지를 물색하던 중 세 명을 영입하여 여러 차례 김신형의 숙소에 모여 회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일본 정부의 착취적인 식민지 정책 폭로, 한국 동포의 고등 교육 정책 반대, 한국인 지원병 제도에 대한 반격, ‘미국의 소리’ 방송 청취를 통해 미국의 한국 독립 협조 고무 등을 거론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1944년 5월 발각되어 일본경시청은 이들을 검거하여 같은 해 9월 검찰국으로 이송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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