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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1385
한자 體育
분야 문화·교육/체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집필자 정구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86년 - 우리나라 최초의 체육대회 개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6년 5월 16일연표보기 - 제1회 제주도민체육대회 개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2년 - 제주대학교 사범대학에 체육교육학과 개설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신체를 단련하고 온전한 운동 능력을 기르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는 제반 관련 활동.

[개설]

제주도의 독특한 환경을 배경으로 제주는 고대 사회에서부터 다양한 신체 문화들을 발전시켜 왔다. 선인들의 삶의 과정에서 남겨진 전설·농요·설화·종교적 행위 등에서 그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기록과 전설 등에 나타난 신체 문화]

스포츠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서 그 시작점을 어느 시기부터 할 것인가와 스포츠적 속성을 함유한 신체 문화들을 포함해야 하는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논의가 이루어져 오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인류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면서 보여 주었던 모든 신체 문화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주 지방에서도 일찍부터 농사를 지었던 흔적이 있다. 제주 설화에 나오는 하늘 황제의 딸이었던 자청비가 농사에 필요한 씨앗을 전해 준 것으로 전해 온다. 따라서 척박한 제주 환경에서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졌던 각종 신체 문화들이 있다.

1. 민속 및 문헌에 나타나고 있는 신체 문화들

척박한 자연 환경과 사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있는 자연적 물리적 환경에 따라 일찍부터 항해술이 발달하여 『위서(魏書)』「동이전(東夷傳)」 한조(韓條)에 따르면, “배를 타고 다니면서 한나라와 물건을 매매한다”고 하여 탐라국(耽羅國)의 항해술은 이미 고대부터 매우 발달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배를 짓기 위해 나무를 베고 공동 작업을 했고 많은 시행 착오를 해 가며 항해와 조선술이 당시 사회에 축적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공동 작업을 하면서 다양한 교육 활동이 동반되었을 것임은 당연하다.

1) 말 타기

『남명소승(南溟小乘)』에 따르면 “백사장에서 관기들을 시켜 말을 달리고 재주를 부리게 했는데 말 타는 솜씨가 대단했었다”고 적고 있다.

일반적으로 제주 목사들은 성읍을 방문하면 표선백사장에서 기생들로 하여금 말 달리게 하여 말타고 재주를 부리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이것은 고려 중기 이후부터 당시 동북아에 걸쳐 가장 유행했던 국제 경기였던 폴로, 즉 격구(擊毬)를 말한다. 당시 장외 경기로 기생들에게 격구를 가르쳐 경기를 하게 했던 흔적들이 있는데 이것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표선 해수욕장은 지금도 승마인들이 즐겨 찾는 승마 연습장이다.

2) 듬 돌 들기[뜸 돌 들기라고도 함]

듬돌 들기는 일종의 성인식의 변형된 하나의 형태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마을 청년들이 서로 간에 힘을 겨루기 위한 방법으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공인된 돌을 들어 올려 보임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놀이였다.

주로 듬 돌의 위치는 마을 어귀나 마을 한가운데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곳에 놓아 두어서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마을 청년들의 힘을 과시하는 기능도 했다. 크기와 무게가 다양한 돌들을 바닷가나 계곡에서 옮겨다 놓고 주로 겨울철에 청소년들이 서로 간에 힘을 겨루었다.

들어 올리는 형태에 따라 두 손으로 잡아 들기, 가슴 붙여 들기, 복부에 대고 들기, 들고 허리를 펴기, 들어서 일어서기, 땅에서 바닥이 떨어지게 하기, 돌을 들고 걸어가기, 돌을 들어 멀리 던지기, 돌을 들어 올려 오래 버티기 등이 있었으며, 돌을 들어 올릴 때는 오직 맨손만을 사용해야만 했다.

2) 줄다리기

『동국세시기』 및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8월 보름날 마을에서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한곳에 모여 노래와 춤을 추며 놀다가 좌우 두 패로 나누어 줄 당기기를 했다”고 한다.

3) 물질

『탐라지』에 “여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잠수를 배운다”고 하고 있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주의 여성들이 바다에서 물질을 하며 힘든 노동을 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4) 등반

한라산은 예나 지금이나 오르고 싶어하는 산이다. 한라산 등반 기록과 관련된 사적인 기록들은 많은 편이다. 주로 존자암·영실·백록담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주로 이용되었던 것 같다.

5) 사냥

방언으로는 ‘사농’이라고 하며, 9월과 10월경에 꿩 사냥을 했고, 겨울철에는 주로 노루와 오소리, 멧돼지 사냥을 했다.

『탐라순력도』에도 당시 엄청난 규모로 베풀어 졌던 사냥 대회를 묘사했다.

6) 줄타기 및 활쏘기

『탐라순력도』에 따르면, 천연사후와 현폭사후에 대한 그림과 설명이 있는데, 천지연 폭포와 중문의 천제연폭포 계곡에서 활쏘기를 주로 했고, 화살을 수거하기 위해 폭포의 계곡 사이에 줄을 걸어 놓아 심부름하는 사람들이 밧줄을 이용하여 화살을 반대편으로 날랐다고 한다.

7) 빅 돌림

빅 돌림이란 말을 타고 경주하는 것을 의미하며 제주도 전역에서 보통 10월 15일서부터 1월 15일까지 젊은이들 사이에서 행해졌던 말달리기 경주였다.

주로 중산간의 목장 지대에서 이루어졌는데 경주 내용을 보면, 각자가 자기의 말을 타고 나와서 한쪽에 약 10여 명씩 편을 짜서 시합을 하게 되는데, 말을 타고 소리치며 춤추고 갖가지 재주를 부리며 노는 ‘노리개’를 하는데, 말에서 떨어진 사람은 집단에게 매도 맞았다고 한다.

‘노리개’가 끝나면 장애물넘기 경기가 있었다. 특정한 장애물을 넘어야 했고, 좀 더 난이도가 있는 말을 거꾸로 타고 장애물 넘기도 했다고 한다. 말을 자유자재로 다루지 않고선 할 수 없는 재주들이었다. 마지막으로 ‘빅 돌리기’로 말을 타고 장거리 달리기를 했다고 한다.

8) 제기차기[쪽기차기]

주로 추운 겨울철에 마당이나 마을의 방앗간 등에서 동네 청소년들이 모여서 내기를 하고 시합을 하기도 했다. 제기를 차올리는 방법에 따라 오른발 차기, 왼발 차기, 양발 차기, 옆발 차기, 돌려차기, 발 앞부리로 차기, 무릎차기, 이마로 받아차기 등 제기를 연속적으로 차올리는 형태에 따라 명칭도 달랐던 가장 일반적인 겨울철 스포츠였다고 할 만하다.

9) 지겟 발 걷기

나무의 원가지와 곁가지를 이용하여 가지가 뻗친 쪽에 발을 올려놓아 목발을 하여 갖가지 재주를 자랑하던 놀이. 주로 겨울철 놀이로서 청소년층에서 행해졌다.

10) 잉어놀이

잉어놀이란 추울 때 아이들이 한 줄로 서서 서로 허리를 붙들고 구부려 그 등위로 걸어가도록 하는 놀이인데, 도중에 중심을 잃고 떨어진 아이는 벌칙을 받았다. 잉어가 여울물 거슬러 오는 모양과 유사하다고 하여 ‘잉어놀이’로 불렸다고 한다.

2. 군사 작전에 이용되었던 민속놀이

1) 연 날리기

고려 말기 최영 장군이 몽골의 목호 세력들을 토벌하기 위해 제주로 원정을 왔으며 진압군에 쫒긴 목호 세력들이 서귀포 앞 범섬으로 도망친다. 이때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군사 작전의 하나로 연을 이용했는데 이것이 우리 지역에서 연을 날렸던 최초의 기록이다.

2) 배연 줄이

배연 줄이와 연관되어 범섬으로 피신한 목호 세력들을 토벌하기 위해 오늘날의 도강 작전과 비교할 수 있는 대단한 작전이 시행되었는데 제주도 전통 테우들을 이용하여 범섬까지 연결시켜 잔존 세력들을 소탕했다고 한다.

지금도 서귀포의 법환 바닷가에 ‘배연줄이’라고 불리는 지명이 남아 있다.

3) 봉수(烽燧)와 연대(煙臺)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대비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자위 수단으로서 봉수와 연대는 매우 중요했다. 제주도 전체적으로는 3성·9진·25봉수·38연대가 있었으며, 남제주군 관내에도 2개성[정의성·대정성]과 3진[수산진·서귀진·모슬진], 11개 봉수[토산·달산·남산·독자]와 11개의 연대가 있었다.

[서귀포 지역의 근대 스포츠 도입과 발전]

1. 서귀포시 체육 도입기[근대-1960]

근대 스포츠와 관한 한 1886년은 세계적으로나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중요한 해이다. 세계적으로는 1886년에 제1회 근대 올림픽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당시 외국인 학교에서 화류회라는 명칭으로 최초의 체육 대회가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학교들마다 운동회를 개최하여 근대 스포츠가 빠르고 폭넓게 전국적으로 전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시기는 외국인 선교사들, 일본 유학생들, 그리고 근대 스포츠를 이해했던 근대식 군인들이 스포츠 종목들을 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제주도에는 당시 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실상은 알 수 없으나 공교육 과정과 외국을 유학했던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개념이 스포츠가 도입되었을 것이다. 학교체육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오현단 옛터에 제주의 고등 교육기관으로 처음 문을 연 제주농업실수학교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며, 육지부나 일본 등지에서 유학했던 학생들에 의해서 소개되어졌을 것이다. 1936년에 서귀포에 개교된 제주도 공립 농업실수학교(農業實修學校)[서귀농고 전신]를 비롯한 각급 학교에서 체조·정구·육상 등을 보급하면서 근대적 개념의 스포츠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당시는 태평양전쟁 기간이었으므로 학교에서도 강제적으로 군사 훈련을 비롯한 정신력 강화와 체력을 강화를 목적으로 군국주의적 학교 체육이 이루어졌다. 이 기간에는 주로 검도·행군·총검술이나 모래주머니 나르기, 제식 훈련과 같은 것들이 학교 체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다.

광복 후에는 6·25 전쟁으로 인하여 엄청난 수의 피난민들과 1951년 모슬포에 세워진 제1훈련소를 중심으로 군인들에 의해서 배구·축구·농구·태권도·송구[핸드볼]·야구·기계 체조 등이 새롭게 활기 있게 행해졌다.

이해 5월에는 제주도 일반선수들과 주둔군인, 학생 등이 총망라하여 훈련소 내 연병장에서 군민합동체육대회가 열려 약 1천 2백 명이 넘는 선수들이 출전했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1954년에 개최된 제35회 전국체육대회에는 모슬포에 주둔했던 육군 특무대 축구팀이 제주도를 대표하여 출전해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통에 힘입어 제주도는 축구가 인기가 있었고, 전통적으로 강해질 수 있었다. 1981년 서귀포가 시로 승격되기 전까지는 모슬포와 서귀포가 산남지방의 스포츠를 리드해 나갔다. 모슬포는 주로 군인들의 영향으로 다양한 스포츠 종목들이 행해졌고, 경기력 또한 당시에는 전국적인 수준이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하여 1960년대까지는 모슬포 지역이 산남 스포츠를 이끌었다.

1955년 모슬포에서 창설된 29사단[속칭 주먹부대]에서 본격적으로 전 장병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이로 볼 때 엄밀한 의미에서 모슬포는 근대 태권도 발상지인 것이다.

1961년 남제주군 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서귀포 지역에 군청 소재지가 들어서면서 모슬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발전돼 오던 스포츠 종목들도 점차 서귀포 지역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2. 보급 및 발전기[1960~1980]

남제주군 서부 지역인 대정읍을 중심으로 근대 스포츠의 발전을 견인 해왔다. 지금 제주시청이 있는 곳에 제주도청 운동장과 현재 제주도 종합 경기장이 건설되기까지 공설 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전도 체육대회가 열렸는데 그전까지는 모슬포 소재 제1 훈련소[워커 연병장]은 당시 유일한 종합 경기장의 기능을 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제주도 스포츠 종목 특히 육상 종목이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된다. 1962년부터 시작된 제주도 일주 도로 포장 사업 완공을 기념하여 5·16 경축 도 일주 역전 마라톤 대회가 개최되었고, 일반부는 시·읍·면·동 단위와 학생부는 고등부가 분리되어 시행되었다. 도내 고등학교별로 참가하여 학교 간 경쟁을 유도하여 제주도 육상의 발전을 견인했다.

1971년 이후부터는 이 행사를 제주신문사[현 제주일보사]에서 주최하여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케 되었다. 역전 경주대회의 경우 일반부에서는 서귀포읍이 강했으며, 고등부는 성산수산고등학교가 여러 번에 걸쳐서 전도를 제패했다. 서귀포읍의 경우 1972년부터 1975년까지 3연승을 이룩하기도 했다.

1966년 5월16일 제1회 제주도민체육대회가 광양에 있는 도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되어 학교 체육대회 수준의 체육대회에서 종합 체육대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특이한 사항은 현재는 제주 삼성혈에서 성화가 채화되고 있으나 제1회 대회 때는 성산일출봉에서 성화가 개최되었다.

제주체육발전에 본격적인 계기를 이룬 것은 1972년부터 제주대학교 사범대학에 체육교육과가 개설되면서 정규 체육교육을 받은 체육교사들이 배출되면서부터 스포츠종목의 다양화와 경기력이 일취월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특정한 스포츠에 특기가 있거나 지도 능력이 있는 체육 교사가 부임한 지역들에서 특정 스포츠 종목이 짧은 기간 발전하다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 버리면 갑작스럽게 경기력도 스포츠 종목도 사라지는 등 급격한 변화의 양상을 보이게 된다.

또한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기력은 거의 모든 종목들에서 산남 지역 학교들이 탁월한 성적과 경기력을 보였다가 고등학교 때부터는 학교 간 스카우트 경쟁에서 산남 지역에 위치한 학교들은 동일한 지역 내에 있는 좋은 선수들을 제주시 내에 있는 학교들에 놓치게 되어 결국 스포츠 종목들이 지역에 따른 전통화를 이우는 데 한계가 되기도 했다.

태권도의 경우는 모슬포 지역이 당시 훈련소와 주둔해 있던 별칭 주먹부대의 영향으로 대정 지역에서 먼저 발전했으나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서귀포 지역이 학교 스포츠의 육성과 함께 강력했고 꾸준히 발전을 거듭하여 남주고등학교의 경우 전통적으로 서귀포 태권도를 견인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예를 들면 육상이나 축구의 경우 대정중학교가 상대적으로 우수한 경기력을 갖고 있었고, 씨름과 유도 그리고 농구 등은 성산포 지역, 여중부 사격은 표선중학교가 우수했으나 고등부부터는 제주시에 밀리게 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특히 1981년 이후 서귀포시가 승격되면서 서귀읍과 중문면이 분리되면서 남제주군의 경기력을 크게 위축되게 된다.

서귀포시가 분리되기 전 서귀포시민회관을 중심으로 배드민턴 동아리가 형성되어 크게 발전했고, 전도로 파급시키는 역할도 했다. 그러다 1973년도에는 산남 지역 최초로 전도 규모로 제1회 전도 배드민턴 대회가 대회를 개최했고 이를 계기로 배드민턴은 의미 있는 생활 스포츠로서 전도적으로 급격하게 확산되고 발전하게 된다. 1976년 3월에는 현재의 서귀포시민회관에서 제1회 전국 청장년 배드민턴대회가 열려 전국에서 약 20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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