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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1712
한자 旌義縣城-
이칭/별칭 우성목,우석목,무성목,무석목,벅수머리,석상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좌동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754년(영조 30)연표보기 - 김몽규 목사가 성문앞에 세우게 함
문화재 지정 일시 1971년 8월 26일연표보기 - 정의현성 돌하르방 제주도 민속자료 제2-22호~33호로 지정
현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민속자료 제2-22호 -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965-1 외[동문 북우]지도보기
현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23호 -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동문 : 북좌지도보기
현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24호 - 제주 서귀포시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 동문 : 남우지도보기
현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25호 -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동문 : 남좌지도보기
현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26호 -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서문 : 북우지도보기
현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27호 -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서문 : 북좌지도보기
현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28호 -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서문 : 남우지도보기
현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29호 -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서문 : 남좌지도보기
현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30호 -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남문 : 동우지도보기
현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31호 -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남문 : 동좌지도보기
현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32호 -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남문 : 서우지도보기
현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33호 -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남문 : 서좌지도보기
성격 돌하르방
크기(높이)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22호[동문 북우]: 121cm|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23호: 124cm|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24호: 131cm|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25호: 159cm|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26호: 120cm|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27호: 151cm|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28호: 135cm|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29호: 134cm|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30호: 177cm|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31호: 143cm|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32호: 157cm|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33호: 150cm
소유자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관리자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문화재 지정 번호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22호~33호

[정의]

조선시대 정의현[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관아 동·서·남문 밖에 세워 성안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성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하였던 12개의 석상.

[개설]

돌하르방은 조선 시대 제주 삼읍인 제주목·정의현·대정현의 성문 입구에 세워져있던 석상(石像)으로, 성안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성을 지키는 수문장으로서 상징적인 역할을 했다. 돌하르방은 우석목·무성목·벅수머리 등으로 불리웠는데, 해방 후에 ‘돌하르방’으로 통일되었다. 돌하르방의 기능은 수호신적 기능과 주술종교적 기능, 위치표식적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돌하르방은 1754년(영조 30) 김몽규 목사가 처음 만들어 삼읍의 성문 앞에 세우게 한 것으로 알려진다. 돌하르방과 관련된 문헌 자료는, 김석익의 『탐라기년』의 조선 영조 30년(1754)의 기록에 “목사김몽규설옹중석어성문외(耽羅紀年, 牧使金夢규設翁仲石於城門外]]”라 하였고, 『담수계편』에는 “제주읍성 동서남 삼문외(淡水契編, 濟州邑城 東西南 三門外)”라 하였다. 이로 보아 돌하르방은 1754년 김몽규 목사 때에 처음 만들어져 동·서·남문 밖에 세워 위엄성을 보여주는 한편 수호신적, 주술적, 금표적(禁標的) 기능을 하게 하였으며, 정의현의 돌하르방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정의현성 동문지에 4기가 마주보고 있으며 있다. 서문에도 4기의 돌하르방이 마주 보고 있고, 남문지에도 4기의 돌하르방이 마주 보고 있다. 조선 시대 정의현인 성읍마을의 경우 남문과 서문이 복원되어 있고 돌하르방은 옛 모습대로 성문 밖에 세워져 있다. 동문은 아직 복원되지 않았지만 돌하르방은 동문지에 세워져 있다.

[형태]

정의현성 돌하르방은 테가 있는 둥근 모자를 쓰고 있다. 몸통은 평면형이고 팔은 가늘게 표현되었고 손을 주먹을 쥐고 있는 형태이다. 얼굴은 둥근 형태이고 코가 높고 눈은 타원형으로 눈초리가 살짝 올라간 모양을 하고 있다. 전체적인 모습으로 볼 때 젊은 남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몸은 원통형이며 테가 있는 모자를 쓰고 있다. 정의현성 서문, 동문의 돌하르방은 왼손을 가슴에 얹고 오른 손은 배를 감싸고 있는 반면 남문 앞에 세워진 돌하르방 중 3기는 오른 손을 위로 하여 가슴에 갖다 대고 왼손으로 배를 감싸고 있는 형태이다.

[현황]

조선 시대 정의현성이었던 성읍 마을은 일찍이 ‘성읍민속마을’로 지정되면서 민속유적들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에 돌하르방의 대한 보전이 잘 되어있다. 남문 밖에 4기의 돌하르방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서문 밖에도 4기가 마주보고 있으며 관리보존이 잘 되고 있으며, 동문지 밖에도 4기가 마주 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제주 3읍성의 돌하르방 중 정의현의 돌하르방은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어서, 역사적 사실과 민속적 자료로서의 가치를 모두 갖추고 있다. 조선 시대 정의현 지경에 속하던 공공시설물이나 이정표, 관광 안내책자 등에는 정의현의 돌하르방을 모델로 하여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