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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2565
한자 光山金氏
영어의미역 Gwangsan Gim Clan
이칭/별칭 광김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집필자 최일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모남리
입향시기/연도 1400년대|1700년대
성씨시조 김흥광
입향시조 김예몽|김기덕

[정의]

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예몽·김기덕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연원]

광산김씨의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신문왕의 셋째 아들로 장차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을 예견하고 무진주 서일동(현 담양군 대전면 평장동)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이후 무진주가 광산으로 개칭되면서 후손들이 광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고려 초기 삼중대광에 오른 김길(金佶)로부터 8대에 걸쳐 평장사(平章事)를 배출하여 명문으로서 기반을 이루었으며, 15세손으로 대광에 오른 김정(金鼎)의 아들 김약채(金若采)·김약항(金若恒)·김약시(金若時) 3형제 대에서 더욱 번창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왕비 1명, 재상 5명, 공신 7명, 대제학 7명, 청백리 4명, 문과 급제자 265명을 배출하였다. 대표적인 인물은 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 부자로 문묘에 배향되었다.

충주에 세거하는 광산김씨 중 대표적인 인물은 충훈도사를 지낸 김덕원(金德源), 성균관사예를 지낸 김성원(金性源), 사간원정언을 지낸 김윤문(金胤文), 홍문관수찬을 지낸 김철문(金綴文), 승정원좌승지를 지낸 김말문(金末文), 춘추관사관을 지낸 김내문(金乃文) 등이 있다.

[입향경위]

충주의 광산김씨 입향조는 김예몽(金禮蒙)과 김기덕(金己德) 두 명이다. 김예몽이 충주로 이주한 시기는 벼슬하기 전인 1400년대 초반으로 보이며, 벼슬길에 나아가 학관(學官), 예조판서를 지낸 후 1469년(예종 1) 병으로 사퇴하고 충주로 돌아와 별세한 후 후손들이 충주 일원에서 현재까지 살고 있다. 김기덕(金己德)은 1700년대 논산에서 살다가 충주가 살기 좋은 곳이라 하여 현 충주시 신니면 모남리로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후손들이 현재까지 세거하고 있다.

[현황]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0년을 기준으로 충주시에 거주하는 광산김씨는 862가구, 2,318명으로 조사되었다. 광산김씨 중 김기덕의 후손은 신니면 모남리를 중심으로 200여 가구가 살았으나 2008년 현재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현대 활동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김선길(金善吉)이 있다.

[관련유적]

김예몽 묘와 김예몽 신도비가 충주시 중앙탑면 잠병리에 있고, 김기덕의 묘는 신니면 모남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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