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은 언제 어디에서나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제내리에서도 마을 공동으로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열성이 일찍부터 있었다. 서당 교육으로부터 강당계를 조직하고 일제강점기에는 사립학교를 운영하였으며, 광복과 더불어 문맹자를 없애겠다는 젊은이들의 열기가 가난한 농촌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선각자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교육에...
동족 마을인 제내리에서는 자녀들의 교육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서 개량 서당교육이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1858년(철종 9) 10월 16일에 마을의 30~40대의 어른들이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걱정하던 끝에 강당계를 조직하기로 협의하고 29명의 계원을 확보하여 각각 2전씩을 모아 22일 결성하였다. 그리고 둘째 아들 이하는 관례를 치른 후 본전을 납입하여야 가입이 허용된다고 하는...
일제의 식민 치하에서 민족정신의 앙양을 위해 1921년 4월 제내리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성동 평전마을에 신성학원(信成學院)을 세우고, 학생들을 모집하여 교육을 시작하였다. 이민호, 서천순 선생님이 교사로 부임하여 학생교육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이 두 분의 선생님은 모두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에 일제에 의하여 구속되면서 학교는 3년 만에 자동 폐교되었다. 신성학원이 폐교되자...
일제강점 말기에 사립학교가 문을 닫은 후 제내리를 비롯한 인근마을 학생들은 멀리 요도천을 건너 통학하여야 했기 때문에 불편했을 뿐만 아니라 취학 아동 수도 크게 늘면서 1946년 초부터 초등학교의 설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학교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후보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대상지로는 이웃한 성동의 청룡안과, 장록개 흰모루, 풍덕의 마당재가 물망에 올랐다. 각 당...
제내리에서는 농촌 마을에도 유아원이 필요함을 일찍부터 깨닫고 1945년부터 유아원 설립을 군과 협의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57년 제내리 농협의 발족을 계기로 이동식 전 주덕면의회 부의장이 유아원 설립을 다시 추진하였으나 역시 이루지 못하였다. 1960년도에 지역사회 개발 시범부락으로 선정되면서 농번기에 탁아소를 운영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유아원 설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