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리 토박이 양재옥 씨(70세), 그는 끝끝내 고생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후회하는 빛은 전연 없다. 그저 담담하게 말한다. 수안보초등학교를 다녀야 했는데 너무 멀어서 거의 못 다녔다. 밥을 싸고 책을 짊어지고 집을 나서지만 어린 나이에 30리 길을 걷기란 용이한 일이 아니었기에 가다가 다리 아프면 학교를 안가고 놀았다고 한다. 대부분 부모들도 알고 있어...
‘터진 데’는 다 지냈단다. 미륵리의 동제(洞祭)는 사방 미륵리로 들어오는 길목마다 다 지냈다고 했다. 밤, 대추, 밤, 백설기, 그리고 돼지머리를 준비해서 제관들이 마을 곳곳에서 지냈다고 했다. 마골점 봉수대에서 우선 지낸 다음 암말에서는 미륵사지 앞 200여m 지점의 서낭당과 당시 마을에서 약 200여m 하늘재 방향으로 올라가서 나무에 ‘검줄(금줄)’을 치고 지냈고, 점말에서는...
현 수안보면 미륵리 노인회장을 맡고 계신 양재옥 씨, 그는 과거와 현재의 미륵리 교육 환경에 대하여 별로 서운한 것 없다고 하였다. 그저 그 시절에는 으레껏 그려러니 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빌리면 미륵리에서 자란 아이들이 6·25전쟁 전에는 산길 30리를 걸어야 하는 수안보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었다. 어린 아이들은 거리가 너무 멀어서 학교를 가다말다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어른들도...